결국 나는 무엇을 가르치게 될까?

5년만에 다시 교단에 섰습니다

등록 2004.09.16 12:34수정 2004.09.1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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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에는 당진군 합덕읍을 간다. 합덕여자교등학교에 가서 1시간씩 1학년과 2학년 22명의 학생들에게 문예강의를 한다. 오늘은 세 번째 날인데, 전국 고등학교 모의고사 관계로 출강을 쉬기로 했다. 그 대신 출강 준비를 하는 오전 시간에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시행하고 있는 '전업문인 객원문예교사제'라는 이름의 사업에 기꺼이 참여한 까닭이다. 전업작가들이 이 문학 사업에 호응한 인근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가서 15시간의 문예강좌를 하는 일이다. 전업작가의 생활도 좀 돕고, 문예교육 환경이 나날이 위축되어 가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질 좋은 문예교육의 장을 마련해 주자는 뜻이기도 하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이 사업에 동참한 학교는 그리 많지 않다. 충남의 경우는 중·고를 합해 6개 학교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모든 비용을 대주는 이런 행사에도 중·고등학교들이 대체로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별로 필요 가치를 못 느끼는 것인지, 귀찮은 일로 치부해서인지,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내가 살고 있는 태안군의 8개 중학교와 4개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인접 지역인 서산시와 홍성군의 모든 학교들이 이 행사를 외면했다. 다행히 당진군의 합덕여고가 호응을 해주어서 나도 이 뜻 있는 일에 참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합덕여고에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태안에서 합덕읍까지는 50분 정도 걸린다. 서산을 거쳐가는 그 길이 별로 고생스럽지는 않다. 1999년에도 일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후에 합덕여고를 다니며 문예강좌를 했던 추억이 있어서 그 길은 정답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그 50분 거리를 가고 오면서 섭섭한 마음도 갖는다. 태안이나 서산의 좀더 가까운 학교를 다니는 것이 여러 가지로 쉬울 터이기에 갖는 아쉬움이지만, 내 지역과 인근 지역의 모든 중·고등학교들이 이 행사를 외면해버린 것은 정말로 섭섭한 일이다. 이상한 허전함과 삭막함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나와 잠시 동안이나마 인연을 맺게 된 합덕여고 22명의 학생들은 스스로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이라고 한다. 담당 선생님이 강사 소개를 잘해주어서인지 출강 전부터 내 홈페이지에 찾아와 미리 인사를 한 학생들도 있었다.


목요일 오후 2시 30부터 3시 40분까지 클럽활동 시간과 청소시간을 이용하는 내 문예강좌에 학생들은 호기심과 기대가 큰 것 같다. 지난 두 번의 강좌에 학생들은 대체로 진지한 표정이었고, 적이 재미있어 했다.

둘째 날에는 내가 미리 출판사에 부탁하여 확보해 놓았던 2002년 출간 장편소설 <죄와 사랑>을 한 보따리 싸 가지고 가서 일일이 사인을 해서 나누어주기도 했다.


나는 잠시 1999년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때는 25명이 일년 동안 내 강의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과는 달리 학생들이 써내는 글의 양이 점점 많아져서 급기야는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오후의 나른함과 피곤함을 무릅쓰고 열심히 내 문학강의를 들어주는 학생들이 고맙고 미안하기도 해서, 여러 번 빵이나 과자를 사다가 나누어주기도 했다. 교실에서 내가 나누어준 빵이나 과자를 먹으며 즐겁게 조잘거리는 학생들을 보는 재미가 무척 색달랐다.

그 해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창과에 출강할 때도 나는 종종 그런 색다른 재미를 맛보곤 했다. 태안에서 막걸리와 오징어, 쭈꾸미 따위를 차에 싣고 가져와, 학생들을 강의실 밖 잔디밭이나 나무 그늘이나 정자로 모이게 한 다음 파티를 벌이곤 했다. 때로는 강의 후에 집으로 가지 않고 공주의 처가에다 차를 놓고 자취생활을 하는 학생들을 이놈저놈 불러내서 술집을 부산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우선 학생들에게 술 마시는 법부터 가르치고 싶었다. 문학을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할 수 있는 품성의 기초를 닦아주고 싶었다. 호기와 낭만과 인간 품성의 실체를 스스로 체득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나는 5년만에 다시 합덕여고 학생들과 만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다섯 번 정도 학생들을 대면하게 되었다. 15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시간일 수도 있다. 짧은 15시간이 그들 모두에게 참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또 기도하는 마음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매사에 의문을 많이 갖는 학생들이 되기를 부탁했다. 또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하기를 요구했다. 내가 만물박사는 아니지만 '생각주머니'와 관계되는 사항들에 대해서는 충실히 답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질문거리를 찾아내고 용감히 의문을 던지는 일, 그런 슬기와 적극성이 자기 발전의 요체라는 말도 했다.

되도록 글도 많이 써내기를 부탁했다. 학생들이 써내는 글이 나에게는 좋은 교재가 될 수도 있다. 학생들이 써낸 글을 교재 삼아 그 글의 모양새와 내용을 가지고 얘기를 하다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줄 수도 있다. 어린 학생들의 글에도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사항들이 두루 결부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단어 하나를 가지고도, 또는 표현 방법 한가지를 놓고도 한 시간 강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나는 짧은 15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게 될까? 글 쓰는 요령일 수도 있고, 생각의 날개를 키워주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 같다. 아직은 막연하다. 어떤 목표를 세운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기도 할 터이다.

하지만 나는 '감동'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있다. 학생들이 바쁜 학과공부 시간에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 그들의 글 속에 담겨 있는 사항들과 연관지어 들려주다 보면 그들은 어떤 간접 경험이나 충격도 얻게 되고, 그리하여 어느 순간 '감동'의 문턱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짧은 15시간 속에서도 그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고 싶다. 대단히 추상적이고 막연하긴 하지만 그 감동을 내 문예강좌의 목표로 삼고 싶다. 그 감동의 요체는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내 '가슴'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임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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