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예쁘지 않아도 속내가 예쁜 '오이풀'

내게로 다가온 꽃들(86)

등록 2004.09.22 17:39수정 2004.09.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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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오이풀은 장미목 장미과의 여러해살이 풀로서 잎을 뜯어서 코에 대보면 진짜 오이보다도 더 진한 오이 냄새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파리를 따서 손바닥에 몇 번 '탁탁!'치면서 냄새를 맡아보면 상큼한 수박이나 참외 냄새가 나는 듯한 풀입니다.

아마 수박의 향기가 더 깊었으면 '수박풀'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것이고, 참외의 향기가 더 깊었으면 '참외풀'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실재로 오이풀의 다른 이름 중에는 '수박풀'이라는 이름이 있고 '외나물, 외풀'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외'는 '참외'를 가리키는 말이고 '물외'는 '오이'를 가리키는 말이니 맨 처음 이름을 붙여 준 분에게는 '오이'의 향이 각별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시절 오이풀 이파리를 따서 친구들과 아래와 같은 노래를 부르며 손바닥에 대여섯 번 '탁탁!'친 후에 냄새를 맡으면 영락없이 그 냄새가 났습니다.

오이 냄새나라 오이 냄새나라
수박 냄새나라 수박 냄새나라
참외 냄새나라 참외 냄새나라


참 신기한 풀입니다. 오이도 아닌 것이 오이보다도 더 진한 오이의 향을 품고 있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냄새가 나는 것도 신기합니다. 또한 많은 약효를 가지고 있는 것도 고마운 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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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오이풀의 특징은 꽃같이 생기지 않았다는 점이고, 대체로 꽃은 아래서부터 피기 마련인데 위에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한 송이 같은 그 작은 곳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꽃들이 피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꽃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오이풀을 그리 많이 보았고, 그 이파리를 많이 가지고 놀았고, 연한 이파리를 나물로 먹었으면서도 그렇게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피어난다는 것은 꽃에 푹 빠져 지내면서 알았습니다.


게다가 하나 둘 오이풀에 대한 자료들을 읽어보니 그야말로 이건 만병통치약입니다.

한방에서는 오이풀을 '지유(地楡)'라 하는데 오이보다도 미네랄을 50배 이상 더 간직하고 있으며, 화상치료, 위와 장의 염증치료, 장기능개선, 무좀, 습진 등의 피부병에도 특효약이라고 합니다.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들을 치유할 수 있는 약효가 야생초에 가득 들어있는데 우리들이 무심해서 그냥 그렇게 지나쳐 버리는 것이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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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오이풀의 꽃말은 '존경' 또는 '당신을 사모합니다'라는 예쁜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꽃말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드러내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애처로운 소녀를 닮은 꽃이라 붙여진 것이라고도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이것도 꽃이냐?'고 반문할 정도로 못 생긴(?) 꽃이고, 그게 꽃인 줄 알았더니 진짜 꽃은 따로 있는 꽃이니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예쁜 꽃들에 비하면 별 볼일 없는 꽃처럼 보이기도 하니 자기 스스로도 볼품 없다 생각하고 늘 짝사랑만 하는 애처로운 소녀 같은 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 치장도 하지 않는 긴 줄기에 타다만 솜뭉치 같은 것을 담고 있는 꾸밈없는 꽃, 그러나 그 마음에 품고 있는 것들을 보면 순수미인이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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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꽃들을 만드실 때의 일이란다. 갖가지 꽃들을 만드는 재미가 얼마나 좋았는지 하나님도 꽃에 푹 빠지고 말았어.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피는 꽃들을 하나 둘 만들다 보니 시간도 만만치 않게 걸렸지만 여러 가지 재료들도 수없이 많이 필요했단다.

꽃을 만들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실 때에는 무지개의 도움을 청했지. 무지개는 자기의 일곱 가지 색깔을 이용해서 갖가지 아름다운 색깔을 꽃들에게 나눠주었단다.

그런데 그만 하나님이 이른봄부터 만들기 시작했던 꽃이 하나 있었는데 그만 깜빡 이파리만 만들어 놓고는 다른 꽃들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네.

가을이 시작되는 어느 날 풀숲에서 기다란 줄기가 올라오는데 가만히 보니 이파리만 만들어 놓았던 그 꽃이 그 풍성하던 이파리들을 다 줄여가며 줄기를 만들어 하늘로 향하고 있었던 거야.

하나님도 체면이 있지. 얼른 손에 쥐고 있던 흙을 동그랗게 만들어 줄기에 '꾹'붙여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어.

"얘, 너는 꽃보다도 이파리에 많은 것을 주었는데 그걸 몰랐구나?"

그리고는 얼른 이파리에 다른 것들을 만들 때 넣어주려던 갖은 향기를 넣어주셨단다. 그것이 오이향, 참외향, 수박향이었다나?

"예? 제 이파리에요?"
"그래, 네 이파리에는 여러 가지 향기들을 가득 넣어주었단다."
"향기는 꽃에서 나는 거잖아요. 제게도 꽃을 달아 주세요."
"네 이파리에는 오이, 수박, 참외 등 각종 채소의 냄새들이 있단다."
"그래도 꽃을 달아주세요."

하나님은 깜빡 잊은 것이 미안했어. 그래서 한 송이만으로는 안되겠다 싶어 가을 날 하루를 온전히 동그랗게 줄기에 '꾹' 눌러준 그 작은 곳에 꽃을 하나하나 새겨 넣기 시작했단다.

아무래도 아래서부터 꽃을 새겨 넣다보면 가을이 다 갈지도 모를 것 같아서 윗 부분에 먼저 꽃을 새겨주고는 가을하늘을 맘껏 바라보게 했단다. 오이풀은 너무 신이 나서 가을 바람에 덩실덩실 춤을 추었지.

그래서 지금도 가을 바람만 불면 들판에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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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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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어쩌면 오이풀은 자세히 보는 것 보다 그들의 형체만 보는 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그냥 멀리서 보아도 '오이풀'이구나 알 수 있거든요.

다른 어떤 풀들보다도 높게 자라 가을바람에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아니면 피곤한 듯 다른 풀들에 기대어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참 그 삶의 모습들이 서로 다르면서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이풀은 이파리뿐만 아니라 뿌리도 식량 대신 먹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 먹을 것이 모자랄 때에는 오이풀뿌리가 중요한 구황식물의 하나이기도 했답니다. 뿌리를 잘게 썰거나 잘라서 밥을 지을 때 넣어먹기도 하고 밀가루나 콩가루 등을 섞어서 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오이풀에는 인간의 몸에 유익한 좋은 성분들이 가득합니다. 이런 것들을 배고플 때 몸에 모신 조상들이 건강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겉모습은 예쁘지 않아도 이렇게 속내가 아름다운 오이풀같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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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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