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80

조왕신의 불기둥 4

등록 2004.10.02 23:06수정 2004.10.0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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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신이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 난 잘 모르겠구나. 저기 적힌 것은, 그냥 그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런 것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의 사람들이 어떠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도 같이 기록돼 있어.”


바리는 말없이 그 불기둥을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때 백호가 가지고 있던 측간신의 선물이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습니다. 백호도 바리도 아무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리가 지금까지 백호와 일을 잘 해오던 것은 바로 아무도 가지지 못했던 꿈과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지. 아까 그 불꾼은 바리의 마지막 소망을 담아서 저기에 기록해 둔 거란다. 그런데, 바리가 지금 여기서 그냥 주저앉고 집으로 가버리면 그 꿈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져. 바리의 아빠와 엄마가 집에 오셨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바리가 그 꿈과 소망만 굳게 가지고 지금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행동하면, 엄마 아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바리 곁에 금방 와 계실거야. 엄마 아빠도 그 꿈을 가지고 계시니까…”
“그래도 전….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바리가 우물쭈물 하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백호가 다가서서 말했습니다.

“바리야. 우물선녀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천주떡을 먹고 네가 한 일은 너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야. 모르겠어? 그 능력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야. 지금까지 네가 가지고 있던 그런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다구. 백두산 산신님이 말한 것처럼, 그 소망만 지니고 산다면, 햇빛을 받은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그리고 그 징그러울 것만 같은 애벌레가 자라서 나비가 되는 것처럼 네가 가야할 곳엔 언젠간 이르게 되는 것이거든. 네게 그런 소망이 없었다면, 넌 지금 이곳에 오지도 못했을거야. 인간계에 사는 사람들은 그 호랑이들 때문에 가지고 있던 소망을 다 잃었다구. 그 사람들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호랑이로 살도록 되었단 말이야. 그건 누구도 원하는 일이 아니야. 호랑이가 된 사람들은 지금 소망을 가지고자 해도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가 없어. 지금 세상을 옛날처럼 되돌리려고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너 밖에 없단다.”
“그리고 넌 무척 용감한 애야.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함부로 바라보지 못했던 호랑이들의 눈을 넌 똑바로 바라보았잖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리과 백호는 전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바로 측간신이 길고 검은 옷을 입고 조왕신의 집에 와 있었습니다. 측간신은 바리와 백호를 향해 팔을 뻗었습니다.


“측간신님.”

바리는 이름을 부르며 측간신님의 품에 안겨 말했습니다.


“측간신님의 선물 덕분에 전 맑은 샘물을 구해서 호종단을 만날 수 있었어요,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고개를 들어서 측간신님을 보고는 말했습니다.

“왜 머리를 예쁘게 안 묶으셨어요? 요즘엔 바쁘게 그 자리에 앉아계시지 않아도 되잖아요.”

측간신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젖히며 한참 웃더니 대답하셨습니다.

”그래, 바리야, 나중에 우리집에 놀러올 때는 머리 손질 할 수 있는 예쁜 빗도 좀 가져다오. 그리고 난 이렇게 긴 생머리가 더 좋구나.”

그리고는 조왕신에게 다가가서는 손을 내밀어 잡았습니다. 하지만 조왕신이 측간신을 보는 눈빛은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측간신이 말했습니다.

“저 왔어요, 수 천년만에 조왕부인을 만나러 왔어요.”

조왕신이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몇 천년만인지 기억이 안 나네요.”

바리에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측간신 집에서 쫓겨나 팔선녀들과 이야기할 당시 백호가 해준 말이었습니다. 측간신과 조왕신이 가지고 있던 이전의 인연 때문에 그 두 사람은 영원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두 사람이 만나서 손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측간신이 계속 이야기 했습니다.

“용서를 구한다고 이야기 하지는 않겠어요, 그것은 아주 옛날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지 않겠어요?”
“요즘은 부엌과 측간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죠. 그래서 요즘 소식은 많이 들었답니다. 우리 불꾼들이 간혹 소식을 가져오긴 하죠.”
“그렇군요. 가끔씩 부엌에 들어가서 불꾼들한테 소식을 물어보곤 했었어요. 바리 저 아이가 다녀간 후 많이 바뀌었거든요. 정말 요즘 사람들은 이전처럼 화장실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더군요.”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벽을 밝히고 있던 불기둥이 파랗게 변했습니다. 바리와 백호는 아주놀랐지만, 조왕신과 불꾼들은 아주 차분하기만 했습니다. 측간신이 말했습니다.

“가야할 시간이에요. 이제 얼른 상제님께 올라가 보세요. 저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가지구요. 저 많은 사람들의 소원과 고민이 올해에는 완전히 성취될 수 있기를 저도 간절히 바란답니다.”

불기둥이 파랗게 변한 것은 이제 조왕신이 하늘에 올라갈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기둥을 통해서 바쁘게 오가던 불꾼들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벽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불기둥이 파랗게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백호는 조왕신에게 나아가 말했습니다.

“이제 저희에게 기를 불어넣어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는 바로 일월궁전으로 올라가겠습니다.”

그리고는 조왕신에게 여의주를 주었습니다. 여의주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게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조왕신이 두 손 가득히 받아들고 있는 그 여의주는 바리의 눈 앞에서 파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여의주 안에는 지금까지 만난 가신들이 전부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삼신할머니도 보였고, 터주신과 업장군과 성주님, 지리천문신장님 등 지금까지 바리가 만나왔던 모든 분들의 얼굴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측간신님은 조왕신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바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조왕신의 긴 옷이 펄럭였습니다. 그리고 조왕신님이 입고 있던 그 긴옷이 거대한 불덩이가 된 것처럼 타오르더니 조왕신의 팔을 타고 그 여의주 안으로 모두 들어가 버렸습니다. 여의주는 더 신비스러운 색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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