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80

두 개의 천뢰탄 (8)

등록 2004.10.13 12:53수정 2004.10.1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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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밝히지 않았다. 이런 경우 접견은 허락되지 않는 법이다.

첫째, 상대가 진정한 신분을 밝히기 않았는데 섣불리 접견을 허락할 수 없는 노릇이다. 또 일파의 장문인이라면 스스로 권위를 지켜야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암살 위험도 있으니 안전을 위해서라도 함부로 외부인을 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접견 요청을 한 사람이 묘령의 여인이기 때문이다.

팔래문은 전통적으로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심한 곳이다. 따라서 문주 체면에 일개 여인을 접견하는 것이 자칫 체면을 깎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 정중히 거절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여인은 밀지 하나를 보냈다. 그것을 본 아라파는 대경실색하며 접견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금 밀지를 잊으셨습니까? '

접견실에 나타난 묘령의 여인은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답답한 실내보다는 밖이 좋겠다면서 나가자고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암살 위협 때문에 극도로 외출을 꺼리던 아라파로서는 마뜩치 않았으나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황금 밀지 때문이다.

얼마 전, 아라파는 자신의 집무실 탁자 위에서 황금빛 밀지 하나를 발견한 바 있다. 황금을 얇게 펴서 만든 그것에는 글자 모양으로 구멍이 송송 뚫려있었다. 당시는 암살 위협이 없던 때인지라 별 생각 없이 그것을 펼쳐든 아라파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밀지에 쓰인 글귀 때문이다.


' 유대문이 눈엣가시처럼 밉습니까?

그렇다면 지붕에 붉은 깃발을 내거십시오. 그들을 제압할 막강한 위력을 지닌 병장기를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

유대문 응징이야말로 팔래문의 오랜 숙원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병장기의 열세 때문에 늘 당하기만 하는 것이 원통했었다.

그렇기에 밀지에 쓰인 대로 붉은 깃발을 내걸었다. 설사 장난이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손해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탁자 위에는 또 다른 밀지가 놓여 있었다.

'좋습니다. 병장기를 준비하겠습니다. 다만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 상태에서 운반하여야 하기에 제법 시일이 걸릴 것이외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시길! 그전에 귀문에서 반드시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

밀지의 말미에는 아주 복잡한 구조를 가진 땅굴을 파놓으라는 요구가 있었다.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도해(圖解)도 있었다.

제법 깊이가 깊었고, 길이도 길면서 몹시 복잡한 구조였지만 다행히 팔래문 인근 지역은 땅굴을 파기 쉬운 사암(砂巖)으로 이루어져있으니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라 쓰여 있었다.

이일을 행함에 있어 반드시 극소수만이 참여하는 극도의 보안 속에서 이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주의사항도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아라파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저 은신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난히도 이목 영민한 유대문을 따돌리고 무엇인가를 획책하는 데에는 땅굴만한 것이 없다 판단했던 것이다.

얼마 후, 팔래문 문도들은 일제히 땅굴을 파기 시작하였다. 유대문의 공격이 있을 때 은신할 곳을 준비하라는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안에 자신이 없던 수뇌부들이 어떻게 하면 적의 관심을 따돌릴 것인가를 생각한 끝에 취한 조치였다.

우여곡절 끝에 밀지에서 요구했던 땅굴은 완성되었으나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하여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다시 황금 밀지를 언급하였기에 즉각 접견을 허락한 것이다.

여인은 너무도 짜기에 죽음의 바다라 불리는 사망해(死亡海)가 보이되 사방이 탁 트인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조건을 달길 가급적 수림(樹林)은 물론 수풀조차 없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이에 아라파는 이유도 묻지 않고 그녀가 요구하던 곳으로 향하였다. 개활지(開豁地)라면 자신에 대한 암살 위험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최 측근은 물론 호위마저 떼어놓고 단 둘이 있게 된 곳은 사망해의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황량한 언덕 위였다.

말라비틀어진 고목 하나만이 존재하는 그곳은 생명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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