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84

숨겨진 비밀 (2)

등록 2004.10.23 02:04수정 2004.10.2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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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지(十五志)라고도 불리는 순오지(旬五志)에 나오는 속담에 기마(騎馬)면 욕솔노(欲率奴)라는 구절이 있다. 말 타면 견마(牽馬) 잡히고 싶다는 뜻으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이다.

사람의 속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것은 이회옥이라 하여 예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은 안 그런 듯 보여지지만 막상 권력이 주어지고 나면 분수도 모르고 기어오를 수도 있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땅굴을 핑계로 온갖 모진 고문을 가해 기를 꺾은 것이다.

그러는 동안 아무리 고문을 가해도 호기심 때문이었다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기에 그것이 진실이라 생각되었다. 하여 이쯤해서 그만 두려던 차에 빙화가 들이닥친 것이다.

철기린과 그 일행이 자리를 비우자 빙화는 피투성이가 된 채 혼절한 이회옥을 들쳐업고 무천의방으로 줄달음질쳤다.

혼수상태가 되어 신음조차 내지 못하는 이회옥을 본 장일정은 침음을 터뜨렸다. 남궁혜로부터 보고를 받아 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때문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날카로운 칼로 수없이 난자당한 것처럼 보였다. 모든 상처가 심했지만 어떤 상처는 너무 깊어 뼈가 드러났고, 또 다른 어떤 상처에서는 선혈이 뭉글뭉글 솟고 있었다.


속이 어떻지 모르지만 일단 외상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어떤 것을 먼저 시료해야할지 망설여질 정도로 모두가 급한 상처였다. 하지만 마냥 망설이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하여 황급히 의료용구를 꺼내들고는 손닿는 대로 지혈을 하면서 상처를 꿰매기 시작하였다.

과연 장일정은 운이 좋아 무천의방의 방주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손이 스치는 듯하면 상처가 아문 것처럼 지혈되었고, 벌려졌던 상처는 입을 다문 것처럼 봉해졌다.

시료를 하는 내내 장일정은 내내 침음을 토했고, 혀를 찼다. 어찌 사람이 이 지경이 되도록 고문하나 싶었던 것이다.

이회옥이 국문 당하는 동안 장일정은 촉각을 세워 군화원의 동정을 살핀 바 있다. 이회옥이 고문을 못 이겨 이실직고하면 모친과 외숙모가 비명횡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녀들을 구하려 방법을 모색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주변에 철기린의 일에 관여할만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급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 졸이던 장일정은 내원에서 작은 소동이 빚어졌다는 보고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군화원의 두 원주와 무언화라 불리던 여인이 사라졌다 하였기 때문이다.

장일정은 타는 속을 달래려고 수없이 냉수를 들이켰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군화원은 철기린만을 위한 곳으로 출입이 제한된 곳이다.

따라서 사내는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출입금지이지만 여인의 경우에는 엄격한 자격 요건만 통과하면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나갈 때에는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곳이다. 그것은 원주들에게도 해당되는 규칙이다.

군화원 밖으로 쫓겨나는 출원이나 외출은 반드시 철기린의 재가를 얻어야 한다. 그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여인이 사라졌으니 소란이 빚어지지 않는다면 이상할 것이다.

장일정은 하루종일 마른침을 삼키며 초조해하였다. 그러던 차에 이회옥이 빙화의 등에 업혀 온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어찌된 일인지를 묻고 싶었으나 빙화가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어찌되었건 시료가 지속되는 동안 빙화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엔 회생 불능으로 보였던 것이다.

형당 집무실에 있던 그녀에게 이회옥의 근황을 알려준 사람은 철기린의 아우인 무언공자 구호광이었다. 생전 형당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않던 그를 맞이한 빙화는 평소에 없던 애교를 부렸다.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싸늘한 그녀였지만 무언공자만은 예외였다. 워낙 말이 없어 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공자라는 외호에 맞지 않게 형당의 이모저모를 묻던 그는 지나가는 말처럼 철마당주가 기린각에 끌려가 죽을 지경이 되도록 고문당한다 하였다. 그러면서 말하길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 면서 어찌 가만히 있느냐고 물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무슨 연유로 그런 꼴이 되었는지도 묻지 않고 한 달음에 기린각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빙화는 모든 시료가 마쳐질 때까지도 이회옥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병든 지아비를 돌보는 지어미처럼 초조해하던 그녀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당에서 급히 처리해야 할 공무가 있다는 전갈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무언공자가 행차한 것은 삼경이 다된 깊은 밤이었다.

이때까지도 이회옥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전신을 붕대로 휘감아 마치 목내이(木乃伊 : 미이라)처럼 보이는 그를 본 무언공자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나직이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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