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진이'를 개장수에게 보내던 날

개를 팔 수밖에 없는 못난 아빠가 되고 말았습니다

등록 2004.10.29 11:59수정 2004.10.29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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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폭설로 개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자유를 만킥했던 돌진이 ⓒ 송성영

우리 집에는 개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진돗개 '갑돌이'와 진돗개와 풍산개 사이에서 태어난 '돌진이'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돌진이를 개장수에게 팔았습니다.

돌진이가 개장수에게 팔려가던 그 날,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습니다.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녘에 찾아오마 했던 개장수가 오질 않자 아내가 독촉 전화를 걸었습니다.

"벌써 일곱시잖아요! 개 언제 데려갈 거예요. 오늘 우리 식구들이 모두 외출하거든요. 아홉시까지는 꼭 오셔야 돼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엄마! 혹시 갑돌이 팔려구 그러는 거 아녀?"

귀가 밝은 큰 아이 인효 녀석이 엄마가 개장수와 전화 통화 내용을 듣고 말았습니다.

"갑돌이 말구, 돌진이…."
"뭐? 돌진이!"
"아니, 그게 아니고…."

아내는 아차 싶었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사이에 팔려고 했는데, 눈치 빠른 큰 아이에게 들키고 만 것입니다.

"아니긴 뭐가 아녀 엄마, 인상아! 일루 와봐. 엄마가 돌진이 팔려구 그려!"

인효는 동생 인상이까지 불러놓고 아침부터 난리를 쳐댔습니다. 아이들에게 돌진이를 팔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돌진이를 개장수에게 팔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동네 사람들이 돌진이를 두려워 하기 때문입니다. 동네 개들 중에 송곳니는 물론이고 덩치가 제일 큰 돌진이. 어쩌다 개 목줄이 풀려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은 대문 밖 출입을 꺼려했습니다.

우리 식구에게 돌진이는 둘도 없는 충견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인 것입니다. 돌진이는 주인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꼬리를 치지 않습니다. 고기 덩어리를 코앞에 들이밀어도 통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집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옆집 할머니네 식구들에게도 적대감을 갖고 끊임없이 짖어댔습니다. 그냥 의무적으로 짖어대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개들보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바싹 세우고 "으르렁" 거렸습니다. 가끔씩 쇠줄까지 끊고 동네방네 휘젓고 다녀 마을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돌진이는 지난 3년 동안 단 한 번도 사람을 물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돌진이는 강아지 시절부터 갇혀 있거나 묶여 있는 것을 죽어라 싫어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돌진이의 별명은 '빠삐용'이었습니다.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처럼 녀석은 틈만 나면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강아지 시절에는 풀어놓고 길렀고, 중개가 될 무렵부터는 목줄 없이 너른 닭장에 있게 했는데, 아무리 닭장 문단속을 잘해도 돌진이는 어떻게든 개구멍을 만들어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성견이 다 되어서는 닭장을 병아리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곤 대나무 숲 한 옆에 허름한 집을 짓고 쇠줄에 묶어 놓았는데, 그 단단한 쇠줄을 끊고 뛰쳐나오기 일쑤였습니다.

빠삐용처럼 용케 탈출해 나오면 지가 무슨 귀신도 잡는다는 해병대 전우회원이라고 위풍당당하게 동네 순찰을 돌았습니다. 돌진이 놈의 순찰에 뭐 특별한 것이 있겠습니까? 동네 개들에게 겁 한 번씩 주고, 주변 전봇대마다 뒷다리 들어 오줌을 깔겨 놓는 게 전부였지요.

본래 개를 기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아내는 돌진이가 탈출을 감행할 때마다 팔 궁리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 눔의 개새끼 좀 어떻게 해 보라'는 동네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적당한 핑계거리를 찾아내고 말았습니다.

방송을 통해 어느 집 풍산개가 주인을 물어 죽였다는 끔직한 소식을 접했던 것입니다. 그 날 이후 아내는 틈만 나면 돌진이를 팔자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이들이나 동네 사람들을 물게 되면 그걸 누가 책임지겠어?"
"돌진이 놈이 사납게 짖어대기는 하지만 사람은 절대로 물지 않어, 목줄 끊고 동네방네 싸돌아다닐 때 사람들을 위협한 적은 없잖아, 사람들이 공연히 돌진이를 무서워할 뿐이라구, 사람은 절대로 물지 않을 놈이니께 걱정 붙들어 메라구..."

"그걸 어떻게 보장할 수 있어?"
"아무튼, 돌진이는 사람은 물지 않아"
"또 개 사료 값도 만만치 않고, 우리 집 형편에 개 두 마리를 키우는 것은 무리잖아…."

돌진이가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닭장에 갇혀 지내고 또 쇠줄에 묶이고 부터 입니다. 강아지 적부터 산이고 들이고 돌진하듯 내달렸던 돌진이. 그래서 이름 또한 돌진이로 지었는데, 그런 놈을 가둬놓고 묶어 놨으니 오죽했겠습니까?

만약 녀석이 내 어린 시절인 60∼7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묶이지 않고 온 동네를 돌진하며 다녔을 것입니다. 그래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요. 그 무렵에는 다들 그렇게 풀어놓고 길렀습니다. 하지만 요즘 시골 풍경은 예전과 사뭇 다릅니다. 잠시 잠깐이라도 누구네 집 개가 풀려 싸돌아다니면 온 동네가 난리가 납니다. 개가 밭을 밟는다고 난리들입니다. 밭작물은 곧 돈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비해 턱없이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에는 밭작물들이 지금처럼 단지 돈으로만 환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먹을거리였을 뿐이었습니다. 이웃과 나눠 먹는, 먹을 거리였습니다. 개새끼들이 휘젓고 다니면 휘젓고 다니는 대로 크게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개가 밟은 만큼 적게 먹으면 그만이었습니다. 개 때문에 밭농사 망친다고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집 개가 우리 집 밭에 들어와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 개 또한 언제든지 다른 집 밭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릅니다. 그 시절 보다 훨씬 더 좋은 집에 좋은 물건에 배불리 잘 먹고 잘 사는 요즘 시대에는 개가 밭에 들어가면 이웃 간에 한바탕 전쟁이 벌어집니다. 어느 집이든 자신들의 밭에 개가 들어오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 만큼 절대로 풀어놓고 기르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에 '시대를 잘못 태어난' 돌진이는 늘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쇠줄에 묶이고 부터 녀석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눈빛이 고약해 지고 송곳니 또한 고약하게 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풍산개와 비슷한 개가 사람을 해쳤다는 방송이 나온 그 무렵, 돌진이 녀석이 또다시 쇠줄을 끊고 온 동네를 휘젖고 다녔습니다. 그 날도 역시 동네 사람들의 원망에 찬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나는 돌진이에 대해 굳게 믿고 있던 그 어떤 끈을 놓고 말았습니다.

"그래 팔자, 기운이 펄펄 나는 놈이 대나무 숲 구탱이서 꽁꽁 묶여 있는 것도 괴로울 것이고… 다 지 놈 팔자지 워쩌겠어…."
"잘 생각했어, 좋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면 되지 뭐."

그렇게 팔겠다고 결심을 굳혔지만 사실 몇 개월이 지나도록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 식구가 지리산 여행을 가기로 하던 날, 고심을 거듭하다가 개장수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입니다.

지리산 여행을 떠나면 며칠 동안 집을 비워둬야 하는데 돌진이 녀석이 또다시 뛰쳐나가면 대책이 없었습니다. 주말을 이용해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와 동네를 활보하고 다니는 도시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자칫 하면 돌진이에게 물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절대로 사람을 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던 나 또한 결국은 돌진이를 믿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보다 환경이 좋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하고 싶었지만 오로지 주인만 알아먹는 녀석을 떠맡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개장수를 택할 수밖에요. 산행을 하면 언제나 내 옆댕이에 착하니 붙어 다니며 제 깜냥껏 지킴이 역할을 다 해왔던 돌진이. 뱀이 나올 만한 풀숲을 지나게 되면 앞장서서 '주인님 행차하신다. 다들 물렀거라!'는 말대신, 이를 행동으로 보여준 돌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나는 무너지는 가슴을 곧추세웠습니다. 늘 개줄에 묶여 빠져날 궁리에 고통스러워하는 돌진이를 떠올렸습니다. 지 놈 팔자대로 살다가는 것이지 자위하며, 또 다른 이별 연습으로 아픔을 꾹꾹 눌러 버리면 그만이었는데 아이들이 문제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눈치가 빠른 큰 아이 인효 녀석은 정든 개를 팔 수밖에 없는 가난한 아빠를 개 팔아먹는 상습범으로 몰아 붙일 게 뻔했습니다. 녀석은 몇 년 전, 아빠가 잡종견이었던 '멍멍이'를 개장수에게 팔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때 그 멍멍이처럼 사람들이 돌진이 잡아 먹을 거지.”
“그냥, 사람들이 기를 거여. 그리구 너, 돌진이가 계속 괴롭게 묶여 있는 게 좋아? 아니면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게 좋아?”
“거봐, 사람들이 잡아먹을 거면서 에이 씨…."
“이눔 자식이, 자꾸 그러면 아빠 화낸다. 아빠도 괴로우니까 고만 울어."

나의 궁색한 변명이 통하지 않자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끼어 들었습니다.

"잡아먹긴 누가 잡아먹어, 그 아저씨가 잘 길러 준다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우리가 보고 싶을 때 보러 갈 수 있어?"
"어? 어, 어! 갈 수 있지."

그렇게 잔꾀를 부려 "팔지마!" "팔지마!" 엉엉 울어대는 큰 아이를 겨우 진정 시킬 수 있었습니다. 헌데 돌진이를 그토록 좋아했던 작은 아이 인상이는 울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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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 인상이와 가깝게 지냈던 돌진이 ⓒ 송성영

큰 아이를 진정시켜 놓고 이번에는 인상이를 달래려고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보았는데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찾다보니 집 옆 편에 자리한 돌진이 집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팔려갈 자신의 운명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돌진이를 하염없이 쓰다듬어 주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그렇게 불렀는데 대답도 안 하고 거기서 뭐혀?"

인상이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홉 살 어린 나이에 비해 속 깊은 인상이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소리 없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인상이 녀석의 이별 장면을 떠올리면서 사랑방에 들어와 식구들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사이 손에 올가미를 잔뜩 움켜 쥔 개장수가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아내의 엄포에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방구석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돌진이를 팔지 말자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돌진이의 목줄은 개장수의 손에 쥐어져 있었습니다. 이미 돈을 받아 챙긴 아내는 내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에이, 인효 아빠! 인효 아빠가 그러면 어떻게 해. 내가 처리할 테니까 인효 아빠는 집안에 들어가 있어."

내가 뒷걸음질을 치고 있을 때 돌진이는 개장수의 철장에 갇혀 트럭에 실렸습니다. 개장수의 트럭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돌진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질끈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두 마리의 개를 키울 만큼 넉넉지 못한 아버지였습니다.

나는 어릴 적 정든 개를 팔았던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아버지를 원망했던 어린 나를 떠올렸습니다. 가난한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이미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 내 아버지는 그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어리석고 어리석게도 나는 눈앞에 빤히 보이는 고통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는 슬픈 이별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이별을 해야 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이별연습을 해야 합니다. 나 또한 죽어 이생을 마칠 때까지 수없이 많은 이별연습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고작 아이들을 위해 운명론을 떠올렸을 뿐이었습니다.

돌진이를 팔고 지리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평소의 표정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돌진이를 팔아먹은 엄마 아빠에 대한 원망을 접어둔 듯 보였습니다. 헌데 작은 아이 인상이가 불쑥 물어왔습니다.

"아빠 돌진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보러 갈 수 있어?"
"어? 어…."
"우리 지리산 갔다와서 돌진이 보러 가자!"

그렇게 말해놓고 차장 밖으로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인상이는 돌진이를 개장수에게 팔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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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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