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일에 끼어들지 마!"

남의 일이라고 팔짱만 끼고 있어선 안 되는 일

등록 2004.11.10 17:21수정 2004.11.1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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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다른 사람, 더 나아가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적절치 못한 사회현상에 대해 입을 다무는 것이 능수인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다루면서 만나게 되는 기업주나 업체 관계자, 혹은 정부 관계자들이 '툭'하고 던지는 "당신 뭐야!" "당신 뭔데 남의 일에 상관이야!"라는 질문에 답하다 보면 내심 '이 일에 굳이 내가 나서야 될 게 뭔가? 모른척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하는 의문 가운데 생기는 질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스스로의 질문에 대해 언제나, 결코 쉽게 '예'라고 답하기 어려웠다. 우리 사회에서 숱하게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을 보면서, 저게 과연 나랑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고 그냥 넘어가 버린다면, 그 사회적 무관심이 나를 편하게 해 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면 대답은 한결같이 '아니다'였다.

좀더 직접적으로 얘기하자면 '못 본 척하고 넘어가기엔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 때문에 나는 '예'라고 답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땅에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입을 대변하고자 하는 나의 알량한 '양심의 선택'이 스스로 남의 일에 끼어드는 사람 취급을 받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양심적 판단에 따라 살고자 하는 삶의 태도가 가끔씩 제3자가 지나치게 나서는 모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실컷 부려먹고 신분적 약점을 빌미로 돈 안주고 내쫓는 업주들에게 달려들어 밀린 월급 지불하라고 요구할 때마다, "넌 끼어들지 마!"하는 식의 답변을 듣는 일은 맘 편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 혼자 편하게 살려고 무관심하다면, 남의 등쳐먹고 사는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남의 등을 쳐먹고 살 수 있도록 밀어주는 사회 체제의 유지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 아닐까?


분명 사회적 무관심은 내가 속해 있는 체제와 사회 구조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래, 또 그렇게 해! 눈감아 줄게'하고 나팔 불면서 '열심히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도록' 부추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간혹 안면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게 좋은 거지, 어지간히 하고 그냥 넘어가지'라는 소리를 들을 때면, 서로 얼키설키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혼자 튀는 게 아닌지를 가늠해 보기도 하지만, 사회 체계가 '관계'라는 압력을 이용해 무관심을 조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런 압력을 받으며 일을 진행하더라도 끝내놓고 나면, 업주나 외국인 이주노동자 양측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인도네시아인 자에날(Jaenal Fanani) 사건의 경우가 그런 경우였다.

자에날은 프레스공장에서 일을 하다 2003년 6월 초 오른손 손가락 전체를 절단 당하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했던 자에날은 치료가 끝나면 귀국할 때 여비를 보태준다는 말은 듣고 있었지만, 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있는 회사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자에날은 같은 회사에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네 명이나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산재보상을 요구할 경우 친구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할 정도로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런 형편을 잘 아는 친구인 꿀리스(Kulis)가 도움을 요청해 와 상담을 진행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우선 자에날이 입원 중인 병원 원무과에 확인해 본 결과, 향후 한두 달 가량 입원 치료가 필요하고, 재수술할 수도 있다는 의견과 함께 업체 대표가 산재처리를 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이어 업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산재처리를 요청했으나, 일언지하에 양자간의 일이니 상관하지 말라는 대답을 들었다. 전화를 통해 산재처리를 할 의향이 전혀 없음을 확인했지만, 다시 방문하여 업체 대표를 만나 설득을 시도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돌아오는 말은 언제나 "남의 일에 제발 끼어들지 마시오!" "어지간히 알아서 할 테니 신경 끄소?"였다.

3주 가까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자,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 진정과 산재 신청을 동시에 했다.

한 달 후, 병원에 입원 중이던 자에날에게서 연락이 왔다. 회사측에서 치료비 일체와 장애보상금을 전부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업체측에서 불법체류자 고용으로 출입국관리법에 의한 처벌 경험이 있어 산재처리를 거부했다가,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 사고가 보고되자 부랴부랴 합의를 시도한 것이었다.

피해자인 자에날이 심신의 스트레스와 직장 동료들(인니인)로 인해 자신의 권리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지 않아, 상담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업체측에서 산재 처리 절차에 대해 수긍하고 합의를 해 줘서 그나마 수월하게 종결지을 수 있었다.

자에날은 귀국에 앞서 "사고를 당하기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고 후 처리에 대해 사장님이 합법적인 틀 안에서 보상해 주기를 원했지만, 그렇지 않아 섭섭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줬다고 생각한다.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업체 대표 역시 "공장에서 사고가 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없다. 특별히 불법체류자를 쓰는 사장들은 더욱 그렇다. 불법체류자라도 산재처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괜한 마음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모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처음에는 사고를 당한 사람이나 업체나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사건이 해결되었을 때, 양측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남의 일이라고 무관심하게 넘어갔더라면 사고를 당한 사람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해 평생을 원망하며 살았을지 모르고, 업체 대표 역시 죄책감에 시달렸을지 모를 일이 원만하게 해결된 것이다.

세상은 남의 일이라고 팔짱만 끼고 있어선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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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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