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쿠리'보다 그레를 좋아하는 갯벌

[계화도 여성들의 '그레' 생활사 2]

등록 2004.11.12 11:21수정 2004.11.1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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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농민들에게 거짓말을 못하듯, 갯벌도 어민들에게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땅이야 퇴비도 주고 잘 가꾸면 땅 심이 살아나지만, 망가진 바다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그럴 때 어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파괴하지 않고, 가만히 놔두는 일이다. 그러면 대부분 회복된다. 물론 여기에는 원활한 조류 소통이 전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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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게 두 쌍의 사랑나누기(2004. 7 계화도 갯벌) ⓒ 김준

그레로 잡은 생합을 최고로 쳐 준다

계화도 사람들은 옛날부터 그레를 이용해 생합을 잡았다. 그레는 '긁게', '글갱이', '그렝'이라고도 한다. 그레는 40여 센티미터의 갯벌을 긁는 부분(긁게), 130여 센티미터의 손잡이 부분 그리고 손잡이와 긁게를 연결시켜주는 버팀목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긁게와 버팀목이 연결된 양쪽 끈을 연결해 그레를 허리춤에 묶고서 허리힘으로 그레를 끄는 것이다. 처음 그레질을 해보는 사람들이 팔 힘을 이용해서 그레를 끄는데 이는 힘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오래 버티지 못한다. 보통 계화도 어민들은 하루에 5시간 이상을 갯벌에서 그레질을 한다.

지금은 그레를 몸 앞에 두고 뒷걸음질을 하면서 그레질을 하지만 과거에는 그레의 폭이 30센티미터 정도로 좁아 등 뒤에 그레를 두고 앞으로 걸어가면서 그레를 끌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렵지만 생합이 지천이었던 시기에는 그레를 끌고 발길 닿는 대로 갯벌을 쏘다니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레가 클 필요도 없고, 갯바닥을 살피면서 그레질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이제는 생합이 있을 만한 공간을 찾아 정성껏 그레질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긁는 부분이 좀 더 큰 게 좋았을 것이다. 그레로 잡은 생합은 국을 끓여 먹어도 좋고, 날것으로 먹어도 안에서 모래가 씹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뽐뿌배'로 잡은 생합은 안에서 뻘이나 모래가 종종 발견되어 먹기 전에 바닷물이나 소금물에 충분히 담가 이물질을 뱉어내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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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그레질을 하는 어민 ⓒ 김준

깔쿠리보상과 새만금사업

그레 외에 갯벌에서 생합을 잡는 어구로 깔쿠리('갈퀴'를 현지에서는 깔쿠리라고 한다)가 있다. 깔쿠리는 15~20센티미터의 손잡이에 4개의 갈퀴를 달아서 생합을 물론, 고막(동죽), 모시조개, 생합 등을 캔다. 겨울에는 구멍 속에 들어가 겨울을 지내는 찍게를 잡기도 한다. 창북리에서 30여 마지기의 농사를 짓는 5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가실(가을걷이)을 마치고 용돈을 벌기 위해서 갯벌을 찾았다.

"이거 생활에 도움이 되나요. 왜 생합을 안 캐고 모시조개를 캐나요."
"생합이 생활에 도움은 되지만 아무나 허간요, 기술이 있어야제. 농사 질 때 농사도 지야 하고. 많이 헌 날도 있고 조금 헌 날도 있고…. 좀 하는 날은 5∼6만원 허고, 못 허는 날은 2∼3만원도 허고. 물때가 문제가 아니라 나와야 많이 혀요."

"몇 시에 나왔어요."
"오늘 아침 7시에서 나왔제. 어떻게 걸어와, 창북에서 차 타고 왔제."

"킬로그램 당 얼마나 해요?"
"요새 모시조개는 킬로그램에 4천원밖에 안 줘. 생합은 킬로그램에 4500원이고 사다 먹는 사람들은 6천원에도 사고, 7천원에도 사고, 대합은 8천원에도 사고. 잡는 사람만 손해지."

"아주 못하게 막으면 어떡해요?"
"이게 큰 힘이 되는디. 정부에서 안 막을 것이요. 잡아야 먹고 산게. 그래도 잡아야지. 그래도 벌이가 되니까 쏠쏠하제. 반지락 킬로그램으로 1500원 준다니까 누가 안 잡아. 동죽은 킬로그램 당 500원인디(동죽은 엄청나게 많이 나오고, 맛도 생합이나 모시조개에 비해서 떨어진다). 나오는 것에 비하면 비싸제. 엄청 많이 나온게. 한 달에 120∼130만원은 하제. 겨울에는 더 많이 벌제. 찍게도 잡으니까. 겨울에는 비싸거든. 땅 파고 잡아야지. 찍게 벌이가 훨씬 낫제."

이곳 여성들은 그레질을 못하면 깔쿠리를 들고 나선다. 이들은 갯벌 깊은 곳보다는 마을 앞 갯벌에서 작업을 한다. 깔쿠리로 주로 고막이라고 부르는 '동죽'이나 모시조개를 잡는다.

계화도 갯벌에는 아직도 생합은 물론 동죽, 모시조개, 죽합 등 다양한 패류가 잡히고 있기 때문에 능력, 연령, 주민과 외지인에 따라 갯벌의 생업공간이 나누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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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를 들고 갯벌에 온 외지인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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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쿠리를 들고 온 외지인 ⓒ 김준

그레질을 잘 하는 주민들은 새만금 방조제 인근까지 가서 그레질을 하지만, 그레질을 못하는 어민들은 깔쿠리를 가지고 중간지점에서 동죽과 모시조개 등을 잡는다. 반면에 외지인들은 마을 앞 갯벌에서 동죽과 모시조개, 운이 좋으면 생합도 잡는다.

여름철에는 인근 전주, 고창, 김제는 물론 멀리 광주, 서울, 대전 심지어는 부산에서도 도구를 가지고 갯벌에 들어온다고 한다. 갯벌로 진입하는 도로에 양쪽에 외지인들의 차들이 주차하는 통에 주민들이 탄 경운기가 진입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하며, 간혹 주민들과 외지인들 간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그때마다 외지인들이 하는 말이 '보상받아 먹고 왜 못 들어가게 하느냐'며 항변한다. 이럴 때마다 주민들은 할 말을 잃고 만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주민들이 정말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새만금사업을 추진하면서 정부에서 준 보상은 개인당 600여만원 정도. 최고의 그레질 꾼으로 평가받은 어민에게는 1천여 만원의 보상을 받았다.

이러한 생합 보상을 '깔쿠리 보상'이라고 불렀다. 즉, 깔쿠리 보상은 면허가 없이 갯벌에서 기대어 사는 어민들에게 이루어진 관행보상을 말한다. 깔쿠리 보상은 가족 중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갯벌에서 작업을 했다 하더라도, 한 가구에 2명 이상은 보상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하루 갯벌에 나가면 10만원은 쉽게 벌 수 있었던 어민들에게 1천 만원도 안 되는 보상은, 요즘 몇 달이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다. 게다가 이 보상금도 몇 차례에 나누어서 지급되어 주민들에게는 푼돈이 되고 말았다.

계화도는 깔쿠리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 조개를 잡기 때문에 걸어서 들어가지만 그레를 가지고 생합을 잡는 사람들은 경운기를 타고 이동한다. 물론 양지포구에서 직접 배를 타고 모래 등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경운기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 1인당 5천원의 차비를 내야 한다. 이들은 생합을 잡으려는 외지인은 절대 태우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정하고 있다. 이는 배를 이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뱃삯은 1만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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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질 한 후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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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쿠리 질을 한 후 ⓒ 김준

갯벌은 깔쿠리 보다 그레를 좋아한다

새만금 갯벌에서 조개를 잡는 도구는 그레와 깔쿠리 그리고 뽐뿌배가 있다. 뽐뿌배를 제외한 그레와 깔쿠리는 가장 원시적이며 오래된 갯벌 어업의 어구라 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깔쿠리가 등장하기 전에는 폭이 넓고 평평한 호미라는 어구가 사용되었는데 인천 지역에서 깔쿠리가 보급되었다고 한다.

외지인들 중에 그레를 가지고 갯벌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깔쿠리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깔쿠리는 작업 특성상 갯벌을 파서 뒤집어야 한다. 그리고 작업공간도 모래 등(嶝)에서 이루어진다. 그레질은 물속이나 물에 잠긴 갯벌에서도 가능하지만 깔쿠리는 모래 등에서 밖에 할 수 없다.

이러한 모래 등에는 봄과 가을철이면 작은 생합 새끼들이 자라고 있다. 이들 작은 생합들은 스스로 모래를 파고 드나듦이 쉽지 않기 때문에 깔쿠리로 갯벌을 파헤쳐 놓으면 그대로 말라 죽어버린다. 그리고 계절적으로 봄철과 여름철에는 물가에서 그레질을 하여 큰 생합을 잡지만 겨울철에는 모래 등 깊은 곳에 생합이 많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그레질을 한다. 즉 생합은 모래 등에서 자라 봄철과 여름철 그리고 간조시에도 물이 있는 갯벌로 이동해서 자란다.

이러한 생합의 생태적 특성 때문에 깔쿠리를 이용해서 갯벌을 심하게 뒤집게 되면 다음해 갯벌농사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계화도 사람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갯벌에서 생합을 잡을 수 있는 것도 그레를 이용해 갯벌에 전혀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굵은 생합만 잡아내고 작은 것들은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 외지인들이 이런 갯벌의 생태를 고려하겠는가. 여기에 언제 갯벌이 막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최근 주민들도 그레에 걸린 작은 생합들을 마구 잡아대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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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지역 한 여성의 연간 작업일수, 채취량, 소득(사진 부안21) ⓒ 김준

갯벌과 생합의 최후의 경고

전북대 함한희 교수(인류)는 최근 한 심포지움에서 계화도 한 여성의 그레질 소득은 1998년 183일 작업에 700여만원, 2000년에 238일 작업에 1800여만원, 2003년에는 261일에 2100여만원에 이른 것으로 발표하였다.

새만금 공사가 막 시작되던 무렵 계화도 여성들이 그레질로 700여만 원의 소득을 올리던 것이, 공사가 진행될수록 작업일수가 많아져 그레 소득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는 그동안 고기잡이에 전념했던 많은 남성들이 그레를 들고 갯벌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미 농업소득은 기대할 수 없고 식량으로 만족해야 하고, 고기잡이는 방조제 공사로 중단되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갯벌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계화도 사람들은 이렇게 생합이 많이 나고 소득도 올라가고 있지만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 30여 년 전 계화도 간척공사로 지금은 논으로 변한 마을 앞 갯벌에서는 생합이 엄청나게 잡혔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대량의 생합이 잡히기 시작한 어느 날 갑자기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는 갯벌과 생합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자, 인간의 탐욕에 대한 최후의 경고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재 새만금 갯벌은 계화도 앞 가력도, 신시도, 야미도 구간에서 2.7km의 작은 숨구멍으로 가쁘게 숨을 쉬고 있다. 이미 내초도는 어업기능을 상실했고, 심포도 갯벌이 높아져 계화도에 비해서 1시간 먼저 바다에 나가야 하고, 2시간 나중에 배를 타고 들어오고 있다.

이는 갯벌이 높아지면서 공사 이전 보다 먼저 갯바닥을 드러내고, 들어올 때도 방조제 공사 이전 보다 늦게 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민들은 그레질을 하기 위해 배 위에서 두세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게다가 조류마저 바뀌어 어민들의 일생생활은 종잡을 수 없이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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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포구의 아침 ⓒ 김준

문제는 방조제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닌 듯싶다. 그동안 많은 낚시꾼들이 몰렸던 위도 인근의 갯바위 낚시도 입질이 예년만 못하다고 한다. 다이버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바닥에 그 많던 수초들이 모두 뻘에 묻혀 고기들을 보기도 어렵다고 한다. 심지어 격포에 흔하던 전어도 어획량이 1/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장사꾼들의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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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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