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는 개펄, 높아지는 근심

[르포] 김제 심포항 어민들의 팍팍한 삶

등록 2004.11.19 08:50수정 2005.07.2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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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의 가을은 짧다. 갯일을 하는 어민들에게 더욱 그렇다. 여름철에는 햇볕을 가리기 위해서 얼굴을 포함한 모든 노출부위를 감싸지만, 가을철에는 일찍 찾아오는 추위도 막아야한다. 물때에 맞춰 이른 새벽에 나가야하는 때라면 어민들에게 가을은 없는 셈이다.


그래도 새만금 어민들에게는 차라리 겨울이 더 나을 것 같다. 여름철 내내 성가실 정도로 새만금 개펄을 찾아와 쑤셔대던 외지인들이 뜸하기 때문이다. 개펄을 이용하는데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질서가 있다.

계절에 따라, 물때에 따라 번갈아가면서 그레질을 해야 하고, 산란철에는 그들의 보금자리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작은 생합을 잡아가지고 나오는 날이면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이 있기 때문에 서로 조심하는 '공동체의 규제'가 개펄에 있었다. 외지인들은 주민들이 지켜온 이런 오래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a 거전개펄의 모습

거전개펄의 모습 ⓒ 김준


a 개펄로 간 트랙터

개펄로 간 트랙터 ⓒ 김준

개펄로 들어가는 트랙터

새만금의 개펄은 해창개펄, 계화도개펄, 광활개펄, 거전과 심포개펄, 내초개펄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새만금 개펄의 가장 큰 특징은 만경강과 동진강이 만들어낸 하구개펄이라는 것이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개펄에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좋은 생태환경이 형성돼 인간이 기대어 생활하기 적합하다.

남쪽의 순천, 고흥, 장흥 지역의 뻘밭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뻘배를 타고 이동하지만 새만금 어민들은 개펄이 바닥을 드러나기 전에 배를 타고 이동하거나, 물이 빠지고 나서 걸어서 이동한다. 해창과 계화도 개펄은 경운기를 타거나 걸어서 들어간다.


거전개펄에는 트랙터 7대가 개펄을 드나들고 있다. 40여 명이 탈 수 있도록 개조해서 만든 트랙터는 경운기가 드나들기 힘든 개펄을 이동하는데 매우 편리하다. 거전마을 개펄이 처음부터 트랙터를 이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4공구가 막히기 전까지 이곳 개펄도 계화도 개펄처럼 걸어서 들어가거나 경운기를 이용해서 개펄을 드나들었다.

2-3년 사이에 놀라볼 만큼 개펄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경운기를 대신해서 트랙터가 등장했다. 트랙터는 생합을 캐는 마을 주민들의 이동수단이었다. 그러던 것이 2년 전부터 외지인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이제 외지인들을 개펄로 이동시키는 운송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많은 외지인들이 거전개펄을 찾고 있다.


금년 여름에도 트랙터 한 대당 외지인 40명이 타고 이동했다고 한다. 이렇게 외지인들이 트랙터를 이용할 경우 '차비'로 1만원을 트랙터 주인에게 지불한다. 외지인들이 생합을 캐는 도구를 가지고 오지 않는 경우 도구를 제공하기도 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한다면 트랙터 일곱 대에 외지인들이 가득 개펄로 들어간다면 300명 넘게 거전개펄에서 생합을 캐는 셈이다. 여기에 주민들까지 합한다면 400여 명이 개펄을 파는 것이다. 외지인들은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개펄에 들어오고 봄, 가을철에는 그 숫자가 대폭 줄어든다. 하지만 주말이면 여전히 적지 않은 외지인들이 개펄에 들어오고 있다.

개펄에 들어오는 외지인을 주민들이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들을 개펄에 집어넣어주고 차비를 받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트랙터까지 개조해서 사람을 실어 나르다니….

계화도의 경우 생합을 캐기 위해서 들어온 외지인을 경운기나 배로 태우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기'시 하고 있다. 그렇다고 태우는 것을 제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민들 사이에 내부 합의사항이다.

한때 개펄 입구에서 외지인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도 했다. 실랑이가 벌어져 몸싸움이 벌어지고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있었지만, 경찰들도 사정을 이해하는 탓에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한다.

a 망둥이를 잡기 위한 투망질

망둥이를 잡기 위한 투망질 ⓒ 김준


a 망둥이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이들은 심포항에서 산 대하를 구워 소주 곁들여 먹었다.

망둥이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이들은 심포항에서 산 대하를 구워 소주 곁들여 먹었다. ⓒ 김준

개펄을 지키는 여성들

지난 11월 6일 오후 11시. 거전개펄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 찍게를 잡기 위해 개펄에 묻은 플라스틱 통이 뻘을 뒤덮고, 개펄에 오뚝 솟아 있는 섬 두 곳(대민가사섬과 소민가사섬)과 거전마을 앞에는 제법 큰 갯골이 흐르고 있다.

거전개펄에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전주에서 망둥이를 잡기 위해 투망을 들고 온 일곱 남자들이었다. 생합을 캘 목적이 아니라 심심해서 투망질이나 해보려고 왔다는 이들은 소주와 도시락까지 챙겨가지고 개펄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레를 든 주민들 몇 명이 개펄로 들어섰고,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서는 주민들도 나타났다. 조금이라 물때가 좋지 않기 때문에 개펄에 들어오는 주민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잠시 후 땅을 뒤흔드는 소리를 내며 모퉁이에서 트랙터가 나타났다.

말로만 듣던 트랙터가 주민 10여 명을 태우고 개펄로 들었다. 이 날 하루 개펄로 들어간 트랙터는 모두 4대였다. 주민 10여 명이 탄 것을 고려한다면 대략 40여 명이 들어간 셈이다. 망둥이를 잡기 위해 들어간 전주에서 온 사내들 그리고 배낭을 메고 생합을 캐기 위해 들어온 부부까지 모두 50명 정도가 개펄에 들어갔다.

a 그레를 맨 그들은 개펄을 지키는 전사였다.

그레를 맨 그들은 개펄을 지키는 전사였다. ⓒ 김준


a 그레질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는 여성

그레질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는 여성 ⓒ 김준

이들 중 가장 눈에 띈 사람들은 그레를 어깨에서 허리로 가로 질러 맨 여성들이었다. 흡사 중원에 전투를 위해 나서는 검객처럼. 사실 그레는 이곳 어민들에게 생활이요, 삶이요, 무기인 셈이다. 그들에게 그레를 빼앗는 것은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이들은 트랙터가 지나는 길을 돌아보지도 않고 큰 갯골을 가로 질러 대민가섬으로 아득하게 멀어졌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길이 있다. 개펄에서 성큼 성큼 걷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잘못 디딜 경우 무릎깊이로 빠지기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한 줄로 발을 맞춰 걷는 그들은 간식거리로 가져 온 고구마를 까먹으며 사뿐사뿐 걸어간다. 방조제가 생기기 전에 어민들은 대부분 그런 모습으로 개펄을 지켰을 것이다.

쌓이는 개펄, 높아지는 근심

거전개펄을 돌아서면 바로 안하와 심포 어민들의 생활공간인 심포항으로 연결된다. 심포항 맞은 편에 군산의 하제, 옥구, 어은리가 마주하고 있다. 심포항은 일찍부터 횟집타운이 형성되어 많은 외지인들이 찾고 있다. 특히 김제시에서 지평선 축제의 하나로 심포항 개펄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면서 찾는 사람이 더욱 늘고 있다.

a 이른 새벽에 생합을 잡기 위해 출발하는 어민

이른 새벽에 생합을 잡기 위해 출발하는 어민 ⓒ 김준


a 그레질을 마치고 포구로 돌아오는 어민

그레질을 마치고 포구로 돌아오는 어민 ⓒ 김준

심포항을 찾는 사람은 이렇게 느는데 횟집을 운영하는 업자들은 울상이다.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다. 방조제 4공구가 막히면서 해수유통이 원활하지 않아 뻘이 쌓이고 수면에 얇은 기름막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계화도 어민들이 하나 둘 개펄에 나가기 위해 그레를 챙기는 시간. 심포와 안하 주민들은 늦을세라 빠져나가는 물길을 좇아 선외기를 몰아댔다. 예전 같으면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와도 되련만 4공구가 막히면서 개펄이 쌓여 이제 그 시간이면 배들이 개펄에 누워 잠을 자고 만다. 그래서 예전보다 많게는 두 시간, 적게는 한 시간 먼저 나와 생합을 캘 개펄로 이동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일찍 개펄에서 그레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레질을 하는 시간은 예전과 다를 바 없다. 즉 배에 앉아서 물이 빠지기를 일찍 나온 만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시간은 반대로 한두 시간 늦게 돌아와야 한다. 마을 앞 포구가 높아져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 더디기 때문에 배를 타고 들어오기 위해서는 그만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조류마저 변해서 물길이 예상치 않는 곳으로 흐르기도 한다.

a 잡아온 생합은 즉석에서 외지인에게 거래되기도 한다.

잡아온 생합은 즉석에서 외지인에게 거래되기도 한다. ⓒ 김준


a 심포항 빈터 곳곳에서 즉석 생합구이 잔치가 벌어졌다.

심포항 빈터 곳곳에서 즉석 생합구이 잔치가 벌어졌다. ⓒ 김준

만경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생활하수들이 방조제가 막히면서 심포항에 축적되고 있다는 것이 어민들의 이야기다. 따라서 포구 인근 바다에 들어오면 고깃배들은 바다와 통하는 입구를 막고 산소를 공급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싱싱한 활어를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자 일부 횟집에서는 양식활어를 내놓기도 한 모양이다. 그동안 바닷가에서 싱싱한 자연산 회를 맛보기 위해 심포항을 찾던 사람들의 입맛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바다 구경을 오는 사람은 많지만 횟집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야외에서 번개탄에 생합을 구워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예 횟집보다 앞 공터에 번개탄과 구이용 망을 놓고 장사하는 것을 더 쉽게 볼 수 있다.

외지인들이 무시로 드나드는 심포항. 이제 그곳에 개펄의 주인은 없다. 새만금 어디나 그렇지만 거전과 심포 개펄과 바닷가에서는 지인들이 먹고 마시고 버리고 간 쓰레기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어디 감히 생각할 수 있던 일인가. 포구에 낚시질마저 어민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지 않던가. 이젠 선착장에서 낚시질 하는 외지인들이 자꾸 배가 드나들어 낚시에 방해된다고 눈을 흘기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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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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