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을에 큰 희망의 문을 달다

주민들이 만든 갯벌 배움터 '그레'

등록 2004.11.29 13:31수정 2004.11.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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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첫눈이 왔다. 전주에서 동군산으로 뻗은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리는 도중에 자동차 앞 유리를 사정없이 때리는 진눈깨비를 맞았다. 소설이 지나도록 겨울답지 않다고 날씨를 얕잡아 보던 인간들에게 혼 좀 나보라는 듯 날씨도 차갑고 바람도 매서웠다.


바닥을 드러낸 만경강 갯벌엔 천둥오리와 도요새 등 많은 철새들이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었다. 계화도 어민들도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 일찍 경운기에 그레를 달고 갯벌로 나갔다.

a 물이 들기 시작하는 계화도 갯벌

물이 들기 시작하는 계화도 갯벌 ⓒ 김준

a '그레' 문여는 날 경운기에 매달려 쉬고 있는 그레

'그레' 문여는 날 경운기에 매달려 쉬고 있는 그레 ⓒ 김준

작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다

여의도의 100배가 넘는 세계 최대의 매립공사, 방조제만 30여km가 넘는 간척사업이 이제 2.7km 마지막 구간을 남겨두고 있다. 새만금 갯벌이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이 작은 공간도 곧 막힐 위험에 처해있다.

그러면 동진강과 만경강을 달려온 강물은 더 이상 바다를 만나지 못하고, 봄철이면 산란을 위해 새만금 갯벌을 찾던 숭어, 꽃게, 전어, 조기 등 많은 생명들도 방조제 밖에서 서성일 것이다.

매일 경운기에 그레를 달고 갯벌로 향하던 어민들은 그레 대신 삽과 괭이를 싣고 논으로 나가거나 노동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평생을 그레질로 살아온 계화도 아주머니들. 하루 나가면 몇 만원은 손에 쥐던 그들도 호미질로 생활하거나 이곳을 떠야 할 것이다.


아마도 계화도 어민들의 마음은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심정일 것이다. 그들이 이번에 작은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지난 여름부터 준비한 작은 갯벌배움터 '그레'의 문을 열었다. 김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100여평 남짓 넓은 공장이 그 동안 계화도에 애정을 가지고 있던 일꾼들의 도움과 주민들의 힘을 모아 멋진 변신을 했다.

a 원불교 김인경교무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는 김공장을 운영한 마을 주민 김진옥씨

원불교 김인경교무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는 김공장을 운영한 마을 주민 김진옥씨 ⓒ 김준

무엇보다 '그레'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김 공장을 선뜻 내놓은 마을주민 김진옥씨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시민환경연구소, 풀꽃세상, 씨알, 전북대 풍물패, 그리고 계화도에 마음을 연 많은 사람들의 힘이 모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힘들이 하나둘 모아질 수 있었던 것은 계화도에 둥우리를 틀고 앉아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마을공동체를 지키려고 몸부림쳤던 고은식, 염정호, 김종덕 등 청년들과 이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그레질을 하는 아주머니, 청년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a 계화도 하리 부녀회장(추귀례)의 간절한 기도

계화도 하리 부녀회장(추귀례)의 간절한 기도 ⓒ 김준


a 돼지야!  새만금 갯벌에 희망을 주자

돼지야! 새만금 갯벌에 희망을 주자 ⓒ 김준


a '그레' 뒷산에 양지바른 무덤가 핀 제비꽃

'그레' 뒷산에 양지바른 무덤가 핀 제비꽃 ⓒ 김준


희망이 될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새만금에 마음의 문을 연 30여명과 마을주민 30여명 등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우연한 계기로 새만금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오영숙 수녀는 그레가 그레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새만금 갯벌이 살아야 한다며, 어민들의 손에 그레가 계속 쥐어질 수 있도록 '그레'의 역할을 기대했다.

내초도에서 8년 동안 목회활동을 하면서 갯벌의 뭇생명들과 사귀고 주민들과 친구가 되었다는 임춘희 목사. 이제 그는 친구를 다 잃었다고 한다. 갯벌을 파괴하는 기계음을 들으면 가슴이 아팠고 파괴되는 공동체를 지켜봐야 했다는 그는 계화도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a 뒷풀이에 소주병을 들고 나선 고은식씨 부부

뒷풀이에 소주병을 들고 나선 고은식씨 부부 ⓒ 김준


a 축하공연을 하고 있는 가수 손현숙씨

축하공연을 하고 있는 가수 손현숙씨 ⓒ 김준


a 가수 이성원씨의 축하공연

가수 이성원씨의 축하공연 ⓒ 김준


자칭 타칭 '계화도 추장'으로 불리는 고은식씨는 이제 계화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고 한다. 그곳 어민 염정우씨는 '그레'는 주민들의 '문화공간', 마을공동체의 생활의 장으로 꾸며갈 것이라고 한다.

김 양식으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김진옥씨. 김 가공 공장을 선뜻 내놓고 감사패를 받는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할지 모르지만 마을 젊은이들이 '욕'을 보고 있다"며 걱정스런 시선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레질 하던 아줌마들도 일찍 그레질을 마치고 새로 담근 김치를 들고 참석했다. 청년들도 뒷풀이에 참석해 이강길 감독이 만든 '새만금 핵폐기장을 낳다'는 기록영화를 보았다. 이날 '그레'에는 빗자루와 쓰레받이부터 필드스코프와 망원경에 이르기까지 많은 물품들이 도착했다.

a 1960년대 계화도를 육지로 만들었던 방조제와 계화간척지

1960년대 계화도를 육지로 만들었던 방조제와 계화간척지 ⓒ 김준

'그레'가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레질은 계화도 주민들에게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었다. 아니 새만금 사업이 추진되기 전까지는 그냥 돈벌이의 도구였다. 방조제사업이 마무리되어가면서 그레는 그들의 생활이고 삶이고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갯벌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갯벌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 그것도 그레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레는 새들의 것과 인간의 몫을 잘 구분했다. 금년에 거두어야 할 것과 내년에 거두어야 할 것을 잘 구분하는 것도 그레였다.

그레를 알아주던 갯벌이 이제 목숨이 위태롭다. 다행스럽게 그레로 살던 사람들이 '그레'를 만들었다. '그레'가 해야 할 일이 이제 생긴 것이다. 불행하게 방조제가 막히더라도 이제 그곳에는 '그레'가 그레질을 할 것이다.

아직 특별히 조직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 흔한 회칙이나 정관이나 규칙도 만들지 않았다. 언제 주민들이 갯벌을 이용할 때 규칙을 만들고 이용했던가. 오랫동안 갯벌을 드나들며 생활한 것이 규칙이었다. 그 어떤 환경보호를 위한 규칙보다 훌륭했고,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잘 지켰다. 새만금 사업이 추진되기 전에는.

이제 '그레'는 망가진 마을공동체, 마을의 생활문화를 회복해야 하고, 새만금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연 사람들에게, 더 나아가 모든 생명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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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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