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이는 살아도 '그레' 없이는 못살아

[계화도 여성들의 '그레' 생활사 1]

등록 2004.11.10 16:45수정 2005.08.0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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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방조제 바로 옆 계화도 갯벌에는 얼추 80여 명의 어민들이 열심히 그레질을 하고 있고, 장금마을 앞 갯벌에서는 두세 명씩 모여 깔쿠리질을 하고 있다.

장금마을과 살금마을 앞에 펼쳐진 갯벌은 군산, 김제, 부안에 대표적인 갯벌로 꼽히는 계화도 갯벌이다. 이곳은 계화도 장금, 살금, 하제, 중리, 상리, 그리고 섬진강댐 공사로 1970년대 이주해 온 사람들이 기반이 되어 형성된 3개 마을을 포함, 8개 마을 주민 500가구 2000여 명의 생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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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도 갯벌에서 그레질 하는 여성 ⓒ 김준

그들의 생명 '그레'

계화도 아줌마들은 남편 없이는 살아도 '그레' 없이는 못 산다. 갯벌과 그레는 계화도 여성들에게 물과 공기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언제 우리가 공기가 귀하다고, 물이 소중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생합이 돈이 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계화도 간척공사를 기억하는 노인들은 지금은 논으로 변한 간척지 일대에 생합이 지글지글 해서 갯벌을 밟고 걸어 다니면 생합이 튀어나왔다고 말한다.

당시 생합은 주민들에게 큰 소득원이 아니었다. 오히려 골골이 그물을 매어 고기를 잡아 돈지어판장(지금의 돈지 ‘만성횟집’ 뒤편)에 팔아 생활을 했었다. 계화도 간척공사 이전에는 말 그대로 섬이었다. 그때만 해도 바로 인근에서 죽방렴으로 조기를 줄줄이 잡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조개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겨우 반찬거리로나 생각했겠지.

지금처럼 생업을 위한 수단으로 그레를 가지고 계화도 여성들이 생합을 잡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라고 추측된다. 간척공사로 육지가 된 계화도에 외지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하고, 교통편이 편리해 쉽게 유통이 원활해지면 갯벌에서 생합 등 조개류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무렵 생합이 일본에 전량 수출되기 시작하면서 마을 내부에 수집상이 생기고 외부 상인들과 연결되는 새로운 유통질서가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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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를 매단 경운기 ⓒ 김준

요즘 계화도 아줌마들이 그레질을 해 하루에 버는 수입은 보통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 3년 전만 해도 생합이 나오지 않아서 5만원 벌이도 하기 힘들었지만, 지난해부터 생합이 다시 많이 나기 시작하고 있다. 몇 년 전 생합이 나오지 않자 외지인들의 출입을 막기도 했다. 외지인들이 들어오면 작은 생합까지 모두 잡아 갈 뿐만 아니라 작은 생합의 서식 공간을 마구 파헤쳐 다음해에 잡아야 할 생합을 어렸을 때 몰살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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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이용해 갯벌에 들어온 어민 ⓒ 김준

갯살림과 여성 그리고 환경

새만금 갯벌이 오늘까지 버텨온 것은 모두 여성들의 힘이다. 집안살림보다 갯살림에 더 익숙한 그들은 갯바닥을 손바닥 보듯 읽고 있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 작업 지시를 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매일매일, 계절 따라 그레질을 해야 할 곳과 하지 말아야 할 곳을 구분한다.

수십 년 동안 갯살림을 해온 그들이기에 갯벌과 이야기를 나누듯 조심스레 그레를 끌어온 것이다. 마을 앞에서 시작했던 그레질은 새만금사업이 시작되면서 점점 깊이 들어가 이제는 방조제 부근까지 가서 그레질을 해야 좋은 생합을 얻을 수 있다.

최근 외지인들이 들어와 주민들을 따라가면 좋은 생합을 잡을 수 있다며 그레질하는 옆에까지 들어오고 있다. 그레질 도중에 튀어 나오는 동죽이며 모시조개 등을 주워 담기 위해서이다. 사실 주민들은 생합 외에는 큰 관심이 없다. 생합도 작은 것은 다시 밟아서 묻어주기도 한다.

생합이 깊이 들어가 누워버리는 겨울철에는 그레를 7∼10센티미터 깊이로 넣어서 그레질을 해야 한다. 반면에 봄철이나 가을철에는 생합이 서 있기 때문에 2∼3센티미터 깊이로 그레질을 해야 한다. 물에 잠긴 갯벌, 오랫동안 햇볕에 노출된 갯벌, 흐르는 물가에 있는 갯벌 등 갯벌의 환경에 따라 생합의 크기가 다르고, 잡아야 하는 철이 다르다.

이러한 갯벌환경은 여성들이 가장 민감하다. 새만금사업이 추진되면서 갯벌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도 갯살림을 하는 여성들이었다. 새만금사업에 가장 분노한 것도 여성들이었다. 보상금을 받았기 때문에 머뭇거리던 남자들을 끌어낸 것도 여성들이었다.

그들이 특별한 조직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매일 갯벌에서 만나서 그레질하고 오다가다 마주치면 서로 얼마나 많이 잡았는지 경쟁하는 그런 사이였다. 하지만 이제 갯벌은 그들에게 생활공동체이다. 새만금사업이 가져다 준 '공동체의 발견'이다.

갯벌을 만들던 해창산이 송두리째 방조제 물막이 공사로 내던져질 때 온몸으로 막아섰던 이들도 아줌마들이었다. 서울 집회에, 촛불 집회에 아이들 손을 잡고 나섰던 이들도 아줌마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생명을 이야기하고, 전쟁반대를 이야기 한다. 단순하게 생합을 더 잡기 위해 갯벌을 살리는 일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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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창산위령제(2003)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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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생명들에 머리숙인 '계화도 사람들'(해창산위령제) ⓒ 김준

늘어가는 남성 그레꾼

새만금사업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생업활동은 성별로 분화되어 있었다. 남자들은 고깃배를 타고가 통발이나 자망 그물을 놓아 꽃게나 활어를 잡거나 계화도 간척지에서 농사를 짓는 일을 주로 담당하였다. 여자들은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그레를 끌어 생합을 잡고, 시간이 나면 텃밭에서 고추 등 밭일을 해왔다.

사실 새만금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남자들이 그레를 가지고 갯벌에 들어가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갯벌일은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흔히 어촌에서 볼 수 있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편견을 흔들기 시작한 것이 양식어업이었다.

이 무렵 들어오기 시작한 부안의 바지락양식과 김양식은 주민들에게 갯벌은 주는 대로 그레질만 하는 곳이 아니라 '기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여기에 일찍 눈을 뜬 외지 양식업자들이 바지락 양식에 참여하면서 갯벌을 주민들, 여성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아무런 규제없이 자본에 노출시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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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질 하는 남성 ⓒ 김준

사실 새만금사업이 진행되면서 갯벌과 여성들의 관계는 더욱 밀착되어 갔다. 외지 양식업자들이 빠져 나간 뒤 3∼4년 동안 갯벌은 여성들만의 그레질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갯벌의 변화를 본격적으로 여성들이 느끼지 시작했고, 그 후 1∼2년만에 남성들이 김양식, 고기잡이에서 손을 놓기 시작했다.

방조제가 막아지면서 더 이상 방조제 안에서 고기를 잡는 것이 어려워졌다. 멀리 나가서 고기를 잡기에는 가지고 있는 배가 너무 작은 탓이었다. 또 선박과 배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해야 하지만 새만금사업으로 전망이 불투명한 어업에 목돈을 투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작은 배를 가지고 나간다 하더라도 고기가 잡히지 않아 기름 값과 이런 저런 비용을 제하고 나면 배를 움직일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이 주민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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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 김준

이런 이유로 그동안 불구경하듯 여성들이 잡아온 생합만을 쳐다보던 남성들이 하나 둘 갯벌에 나타나기 시작해, 최근에는 그레를 든 남자들이 계화도 갯벌에 그레질 하는 어민들의 1/3에 이른다. 새만금사업으로 어민들은 많은 것을 잃고 있었고, 갯벌은 질식하기 직전에 놓여 있다. 하지만 갯살림하는 여성들의 작은 생활공동체의 가능성과 갯벌을 보는 시선은 많이 변화된 것 같다. 얻은 것에 비해 너무 큰 비용을 치르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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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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