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는 우리 전통 잔치문화다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77] 2년여 애지중지 키워온 홍어클럽 두 돌을 맞아

등록 2004.11.23 12:23수정 2004.11.2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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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빛깔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홍어 빛깔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김규환
전통과 잔치 문화의 대명사 홍어


홍어는 문화다. 홍어는 전통이다. 홍어는 전통문화다. 홍어는 축제다. 홍어는 잔치다. 홍어는 파닥파닥 꿈틀거리는 삶의 현장이다. 홍어는 고무줄놀이보다 즐겁다. 홍어는 남도의 그윽한 향이다. 밋밋한 맛이라곤 찾아볼 길 없다. "화~"하다고 하는 게 바로 이거다.

어떤 생선에서 이런 진한 향이 날까. 가오리냐? 아니로다. 간재미도 아니고 갱개미도 아니로세. 누가 이 맛을 따를까. 사람들이 '썩어야 맛이 난다'고 하는 이 홍어는 발효의 백미다. 홍어는 두고두고 먹어도 좋다. 홍어는 썩지 않는다. 입 안에서도 쫄깃쫄깃 삭혀지며 오래된 허물을 벗겨낸다. 그 무엇을 먹은들 살아있는 제 살마저 같이 씹을까.

홍어는 사람과 사람을 10분도 안되어 친하게 하는 다리다. 인터넷 바람을 타고 부산에서 대구에서 강원도에서 몰려든다. 바다가 하나도 없는 충청북도에서 찾아와 함께 먹자고 조른다. 홍어 한 마리로 10명 아니 100명이 먹고도 남는다. 비싸다고 하는 건 과장이다.

예전 늙은 홍어는 죽었다. 요즘 홍어는 나이 지위를 가리지 않고 새롭게 태어나 뭇사람들에게 술잔을 권한다. 권주가가 필요 없다. 길고 구성지게 육자배기 부르는 멋이 있다. 여기에 뒤섞인 팔도(八道) 사람들 고향이야기로 밤을 지새운다. 세상살이 다 끄집어내 요리조리 뒤집는다.

홍어 전도 드시면 숨이 막힙니다.
홍어 전도 드시면 숨이 막힙니다.김규환

홍어는 서해 음식

날개살만 홍어가 아니다. 코면 코, 내장이면 내장, 만만한 것 또한 버리지 않으며 꼬리도 요긴하다. 회도 좋다. 삶이 팍팍하거나 찜찜하면 찜을 드시라. 확실히 살맛 나게 한다. 탕에 빠지면 날던 파리도 녹는다. 홍어 한 점, 돼지고기 하나, 묵은 김치 세 가지 모으고 탁주를 탁 곁들이면 홍탁삼합(洪濁三合)이니 여자들이 더 좋아하더라.


황량한 들에 보리 파릇파릇 싹 나면 앳국철이니 메생이가 안 부럽다. 홍어집엔 아구찜이 어울리지 않는다. 아구딱지 큰 아귀는 남해 음식이다. 홍어는 서해 그 잔잔한 뻘을 사리살짝 연잎으로 부채질하며 산다. 튀김옷을 입혀 지져 넣으면 "헉!" 바튼 기침이 난다. 잠시 숨을 돌리고 오물오물하면 바스러져 형체를 잃으니 식기 전에 한 접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코팅라면을 아는가. 평소보다 매큼하게 끓이다가 홍어 서너 점 넣는다. 간편하다. 철철 흘러넘쳐 게워내니 잠시만 참아 곁에 붙어 있으면 야들야들 면발 스르륵 스르륵 쭙! 쭙! 쩝! 목 넘김이 일품이며 국물 맛 시원하다. 속 풀이는 이걸로 족하다. 한 봉지가 아쉽다. 헛배부르지 않고 한 끼 간편하다.


얼마 전 신문에 나온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요즘은 홍어클럽이 언론과 함께 움직입니다. 독특해서 그럴까요?
얼마 전 신문에 나온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요즘은 홍어클럽이 언론과 함께 움직입니다. 독특해서 그럴까요?김규환

홍어 찾아 헤매다 보면 옆 사람도 빠져들어

홍어는 진하다. 징살맞게 찐하다. 홍어 맛 본 사람은 두 번 세 번 열 번 빠지다가 한 달에 세 번, 일주일에 두 번 젖어 들어간다. 그래서 기둥뿌리 뽑힌 줄 모르는 사람 허다하다. 신묘(神妙)한 내음에 끌려 정처 없이 원정길에 오르면 "바람났냐?" 한 말 들을까 두렵다. 손잡아 끌어 아내나 남편에게 먹여보면 둘 다 꾼이 되어 집안 살림 거덜나고 홍어 냄새 집안 곳곳에 스민다.

홍어는 음식의 종착역이다. 홍어는 부산역이나 서울역, 목포역이다. 세상 온갖 사람 잡탕찌개처럼 뒤섞여 놀아도 결코 따로 놀지 않는다. 곧 부대낀다. 다 씹기도 전에 코를 열고 목구녕을 타고 내려가 오장을 주물럭주물럭거리다가 싫은 것만 밖으로 빼낸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음식인가.

항아리홍어 집 주인장이 홍어 내장을 꺼내고 손질하고 있다.
항아리홍어 집 주인장이 홍어 내장을 꺼내고 손질하고 있다.김규환

홍어에 대한 선입견을 털고 위상 재정립 필요

우리는 이제 홍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위상을 재정립할 때다. 한중일(韓中日) 3국이 겨루는 된장, 고추장, 간장, 김치 신세가 되기 전에 우린 홍어를 확실히 한국 고유의 전통음식이며 한국인의 잔치 문화의 대표적 모습이었다는 걸 세계만방에 고할 때다.

이 냄새나는 것이 건강엔 특효라는 점 부각시키면서 뉴욕, 도쿄, 파리, 베이징 유명 호텔과 병원에서 먹도록 대사 부인을 초청하여 시식기회를 줘야 한다. 마지막 남은 우리의 자존심으로 승부하면 요원한 일도 아니다. 기호식품을 넘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고 밝은 대로로 나오도록 하자.

당장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선입견을 털어버리는 것이다. 홍어와 홍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 또는 고정관념을 바꿔야 한다. 막연히 생각했던 알맹이 없는 거부감이 생사람을 잡을 테니까. 우리 스스로가 홍어를 무슨 쓰레기 취급하거나 먹을 수 없는 것, 썩은 것 또는 썩힌 것으로 간주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흑산도홍어 맛보기 쉽지 않지만 3~4kg 짜리는 두셋이면 먹어볼만 하다. 택배로 직접 받아서.
흑산도홍어 맛보기 쉽지 않지만 3~4kg 짜리는 두셋이면 먹어볼만 하다. 택배로 직접 받아서.김규환

전혀 혐오음식이 아닌데 오랫동안 자꾸 골목 끝으로 밀어붙였다. 궁색하고 침울한 대폿집에서만 맛 볼 수 있던 홍어였다. 먹는 사람들마저 쉬쉬하고 먹었다.

이제 떳떳이 먹자. 먹고 나서 택시도 타고 지하철로 집으로 돌아가면 뭐가 문젠가. 트림하지 않았는데도 불콰한 냄새는 어떤 걸 먹어도 마찬가지다. 예의를 지키는 건 다른 사안이다. 제 발 저리듯 숨어먹는다면 이 귀한 존재가 다시 파묻힐 수도 있다. 다시 우리에게 다가온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기엔 아깝지 않은가.

홍어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아구찜과 견주면 화를 낸다. 비교할 수 없는 오묘한 맛과 효과 때문이다. 그게 홍어다. 홍어 자체를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자주 접하다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먹어볼 만한 식품이다. 다만 어떻게 삭혀서 어떤 환경에 홍어를 보관하느냐는 대단히 중요하다.

떳떳하게 먹지 못한 이유가 냄새 때문이라면 모르겠지만 홍어가 천대받았던 건 정치가 개입되었고, 경제가 발목을 잡았고, 국제적 힘이 작용했다. 정치란 그걸 먹는 사람들에 대한 홀대와 감정이며 경제는 하루 벌어 먹고사는 사람들이 홍어집 하나 차릴 수 없는 빈곤이다. 게다가 중국어선의 남획에 그 이유가 있다. 환경문제로 돌리면 영산강 하구를 틀어막음으로써 영산포 뱃길이 죽었기 때문이다.

10월 말 흑산도-홍도 홍어 수학여행을 실패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홍도 유람중에 회원들과 함께
10월 말 흑산도-홍도 홍어 수학여행을 실패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홍도 유람중에 회원들과 함께김규환

불황기에 홍어가 더 뜨는 건 중독성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백두대간 서쪽사람들만 먹을 줄 알게 해서 홍어가 영영 사라질 위기를 모면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 그 장벽이 깨지고 있다. 벌써 추풍령, 문경새재를 넘고 있다. 너도나도 먹어보겠다고 한다. 이곳저곳에서 잘 하는 홍어집 없느냐고 한다. 언론에도 끊이질 않고 나온다.

불황인 이 시대에 속속 등장하는 홍어집을 보라. 결코 싸지도 않은 음식인데 왜 이리도 많이 생긴단 말인가. 보쌈집이 늘고 족발집이 동네마다 몇 곳씩 있는 것처럼 홍어도 심심찮게 보인다. 대형 간판이 보인다. 홍어 촌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왜 일까. 만만하지 않은 가격일진대 불황을 모르고 생겨나는 건 뭘까.

강렬함 때문인가? 소주와 막걸리 소비량과 연관이 있는 걸까. 중독성 때문이기도 하겠다. 어려운 이 때 고향생각이 간절한 것도 작용했으리라. 대충 몇 입 먹고 헤어지는 다른 음식과 달리 사람에 취하고 세상사 잊는 데 탁월하다. 서너 명만 모여도 잔치판 흥겨움이 있다. 홍어 한 접시에 이 술 저 술 아무 거나 먹어도 어울리며 다음날 숙취가 사라지니 맘 놓고 먹을 수 있다.

지난 주 토요일 계룡산 MT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회원들
지난 주 토요일 계룡산 MT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회원들김규환

나누고 거들고 먹여주는 대동의 장이 펼쳐지다

홍어는 70년대 초반이었다. 산업화 물결에 너도나도 고향을 등지고 온 지 어언 30년 세월이다. 바삐 살아가며 우리가 잊고 지냈던 과거를 되살려 놓은 게 홍어다. 도시를 배회하던 무리에게 다시금 그 시절 어려움을 함께 했던 기억을 되살리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부모 형제, 고향 사람, 멍석과 잔치마당 꼬막껍데기가 나뒹구는 그리움이다.

홍어 옆에 소금만 있어도 좋다. 된장에 먹어도 어울리고 맨 고추장에 찍어도 그만이다. 잘 익은 배추김치 하나에 싸보라. 뱀탕이 그렇듯 홍어에 미나리만 있어도 간이 맞다. 그냥 먹어도 찰떡인가 인절미인가 모를 은혜로운 선물이다.

홍어는 나누는 미학, 거드는 즐거움, 대동의 장이 펼쳐진다. 즐거울 때나 슬플 때 홍어 한 접시 앞에 두고 같이 기뻐하고 슬픔을 사람 수로 나눠가는 데 이만한 매개체가 있을까. 제몫 챙기기 바쁜 시절에 "아~ 입 쩍 벌려봐"하며 먹여주는 음식이 홍어다.

정에 굶주린 도시인은 그래서 홍어에 빠져든다. 어렵고 없을 때일수록 지난날을 생각한다. 미니스커트가 다시 바람을 일으키는 이 험한 세상에 홍어라도 없었으면 어찌 지낼까?

계룡산에서 차린 음식의 일부. 너무 많이 차려 아까웠습니다. 적당히 차릴 줄 아는 것도 미덕입니다. 하여튼 잘 먹었습니다.
계룡산에서 차린 음식의 일부. 너무 많이 차려 아까웠습니다. 적당히 차릴 줄 아는 것도 미덕입니다. 하여튼 잘 먹었습니다.김규환

알다가도 모를 홍어 얼음장 밑에 물처럼 정이 물씬 흘러

참으로도 모를 것 같기도 하다가 알 만하면 또 모르겠다. 홍어의 이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계룡산에 모여 한판 흥겨운 잔치를 열었다. 삼남지방과 경인지역 50여명이 모여 대회를 열었다. 세상 시름 놓고 홍어에만 빠져 밤을 지새웠다. 그래도 뭐가 아쉬운 건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홍어! 끈끈한 액체 질질 흐르고 비릿할 것 같은 생선이다. 묵히고 삭힌 홍어야말로 우리네 정서 밑바닥에 쉬지 않고 흐르는 핏줄이다. 사람들마다 얼음장처럼 차가워 보이지만 얼음 밑엔 얼지 않은 맑은 물이 도도히 흐르는 것처럼 살아 꿈틀거리는 게 홍어다.

한정된 음식으로 만나는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 숫자가 이렇게 많아진 데는 <오마이뉴스> 공이 첫째다. 그 다음은 열성회원들이며 여타 언론의 구실은 미미했다. 이 자리를 빌어 2년 가까이 매달 어김없이 나와 주신 회원들과 신입회원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다. 홍어 산업 부흥에 함께 해준 모든 분들께 영광이 있길 빈다.

모닥불을 피우고 밤을 지새쉈던 계룡산 대회가 무사히 잘 치러졌습니다.
모닥불을 피우고 밤을 지새쉈던 계룡산 대회가 무사히 잘 치러졌습니다.김규환

작년 12월 19일 첫 돌 잔치 모습. 떡을 썰고 있는 운영위원과 필자. 누구나 모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회비는 없고 그 때 그 때 참가비를 걷습니다.
작년 12월 19일 첫 돌 잔치 모습. 떡을 썰고 있는 운영위원과 필자. 누구나 모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회비는 없고 그 때 그 때 참가비를 걷습니다.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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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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