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는 반죽이 제일 중요하다. 조금 되직한 것이 좋다.박철
요리 학원에도 다녔다고 해서 음식을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번도 김치를 담가본 적이 없고, 변변한 음식을 만들어 본 적도 없는 풋내기 새댁이었습니다.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지만 신부에게 화를 낼 수는 없어 "조금 싱거운데… 조금 짠 것 같은데…"하고 타박을 했지요. 나중에는 아내가 해 준 음식이 맞지 않아 치열하게 다툰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아내가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하기에 기껏해야 저녁 한 끼 얻어먹는 것인데 아내가 차려준 밥상은 번번이 너무 싱겁거나 짜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내 잔소리가 계속되자 아내는 음식에 전혀 간을 안 하고 밥상 위에 소금을 따로 놔두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때부터 내가 음식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더러 처갓집에서 반찬을 얻어다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내가 저녁상을 차렸지요.
아내의 평에 따르면 내 음식솜씨가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그런 칭찬에 고무되어 나의 촉각은 언제나 음식 만드는 일에 가 있었습니다.
어딘가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눈과 혀끝으로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아두고, 심지어는 조리법에 대해서도 주방장에게 물어보고 수첩에 메모를 해, 집에 와서 똑같이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에 손님이 오면 음식 만드는 것은 내 차지였습니다. 그 때마다 난 음식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10여 년 전, 어느 치과의사가 의사생활을 그만두고 강원도 원주에 식당을 차렸는데 그 분은 의사생활보다 식당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일이 훨씬 더 적성에 맞고 즐겁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목회를 그만 두면 작은 식당이나 하나 차려볼까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로 음식을 만드는 일에 대단히 애착이 갔습니다.
아내도 늙었는지 요즘 들어 밥하는 걸 귀찮아하고 부쩍 외식하자는 말을 자주 합니다. 아내와 결혼해서 20년을 함께 살면서 아내의 음식 솜씨도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아내는 주로 찌개 종류를 잘 만듭니다. 요즘은 가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농담을 던집니다.
"우리 교회 앞에 김치찌개 식당 하나 차립시다. 요즘 경제도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도 많으니 밥값도 적게 받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면 잘 될 것 같은데…."
아내는 지금도 내가 만들어 준 음식을 제일 좋아하고, 그 다음으로 외식을 좋아합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점심을 나가서 먹자고 졸라댑니다. 내가 외식할 돈이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생활비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아직도 아내에게는 처녀시절의 치기가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