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내복은 이 색깔에 가까웠는데 더 잿빛이었죠.김규환
흡혈귀, 이와 벼룩이 준동하던 시절 아이들이 호롱불 밝힌 까닭
스멀스멀 기어가는 이와 타다닥 튀는 벼룩은 흡혈귀다. 보리쌀만한 이놈들이 옷과 살갗 사이에 약간 틈만 있어도 비집고 들어와서는 살을 물어뜯으니 곳곳마다 내 몸에는 빨간 피가 엉겨 꺼멓게 굳어 있었다. 목욕이랬자 섣달 그믐날 물 한번 데워 플라스틱 통에서 한번 했으니 오죽하겠는가.
겉옷을 벗자 "싸르르~" "짜르르~" 정전기가 튄다. 한 꺼풀 두 꺼풀 홀라당 벗었다. 외풍이 심했다.
"으휴, 추워!"
동생 포대기를 둘러썼다. 그도 모자라 이불까지 두르고 일단 호롱불 앞에 바짝 다가가 보니 속옷 러닝셔츠 바느질 땀 결을 따라 새하얗게 낀 서캐가 덩캐덩캐 붙어 있다. 어찌나 단단히 엉겨 있는지 손으로 떼려고 해봤자 허사다. '써까리'라 했던 서캐는 움직이지 못하므로 잠시 젖혀두고 맨 먼저 후두둑 방 끝까지 튀어가는 까만 벼룩을 누르는 게 급선무다.
"어? 저기!"
"어디?"
"폴새 쩔로 튀어불었구만요."
"또 쩌기!"
"눌렀다."
"쩌기!"
손바닥, 방 빗자루, 걸레 등 닥치는 대로 누른다. 그래놓고 나서 손톱으로 쿡 눌러서 죽여야 한다. 방심했다간 또 다시 위로, 저 멀리 날아가는 벼룩은 참말로 재빠르다. 두 번 나눠서 눌러주니 내 까만 피가 톡 하고 방바닥에 흘렀다.
잠시 동안 일어난 사건치고 대여섯 마리 중 두 마리를 놓치고 네 마리를 잡았으니 괜찮은 성과였지만 그 두 놈이 나대고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이윽고 자잘한 발이 노처럼 나 있는 이라는 놈 차례다. 바늘땀 접힌 부분에 숨어 있던 이는 보통 것은 보리쌀만 했지만 큰놈은 탱탱 불은 보리밥만 했다. 젖빛인 이는 내장이 투명하다. 어찌나 빨아댔는지 속은 까맣게 피로 가득 차 있다.
"여깄다."
헌 공책 한 장을 뜯어 그 위에 "한나, 둘, 셋, 네엣, 다섯…" 세 가며 손톱으로 쿡 누른다.
"톡!"
"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