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내가 끓인 토란탕이 더 맛있대요

토란탕에 허우적거리고 싶은 계절

등록 2004.12.03 09:00수정 2004.12.0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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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형이 재배한 토란이 동이 났답니다. 10t가량 생산했답니다.
시골 형이 재배한 토란이 동이 났답니다. 10t가량 생산했답니다.김규환
바람이 싸늘하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피부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뜨끈한 국물이 그립다. 땅 기운을 머금고 싶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후후 불어가며 먹는 집 밥 생각이 간절하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요즘 색다른 별식으로 애 어른 할 것 없이 즐길만한 탕 하나 없을까? 걸쭉한 국 한 그릇이면 좋겠는데 마땅한 재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저렴하면서도 정성만 조금 보탠다면 굳이 외식(外食)이 부럽지 않는 그런 음식….

캐려고 토란대를 잘라놓은 모습
캐려고 토란대를 잘라놓은 모습김규환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 음식이다. 모처럼 아내를 위해 솜씨를 발휘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집에 돌아올 때 닭고기 좋은 걸로 하나 사오라고 부탁했다.

예전엔 이 음식을 추석에 주로 끓여 먹어 명절 음식으로 통했다. 이 음식은 태생이 전라남북도와 경남지역에 한정되고 손이 많이 가서 주부들이 꺼리는 걸로 유명하다.

토란을 캐고 있는 필자. 농사만 잘 지으면 한 줄기에 40개까지 나온답니다.
토란을 캐고 있는 필자. 농사만 잘 지으면 한 줄기에 40개까지 나온답니다.김규환
우리 집에선 제사 때도 올라왔고 왕겨에 잘만 보관한다면 설과 정월대보름까지 오르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번 한 해 동안 시골에 있는 형이 수확한 양이 10t에 육박했다. 작년엔 콩 농사로 재미를 보더니 올핸 오늘 내가 만들 음식의 주인공으로 나를 질리게 한다.

잎은 대보름 때 간장에 데쳐서 쌈 싸먹는다. 소금물에 담가 불려서 삶아 내면 먹어보지 않고는 그 맛을 논하지 못할 맛있는 쌈거리다. 섬유소는 또 얼마나 많은가.


줄기는 불려서 보신탕, 염소탕, 육개장 재료로 쓰고 들깨국물에 멸치 넣고 자글자글 끓여 나물로 먹는다. 물컹하면서도 씹을수록 쫄깃한 맛에 한 번 입을 대고서는 쉬 포기하지 못 한다.

옛날에는 우산이 없을 때 이 잎을 따서 쓰고 다녔다. 이쯤이면 대충 감을 잡았으리라.


바로 토란국이다(토란탕이라 해도 좋다).

마침 시장에 가면 오산토란(전남 곡성군 오산면이 주산지다. 다른 지역 토란보다 값이 두세 배 나가는 게 흠이지만 꽝이나 무광이 없어 달걀보다 보드랍게 사르르 녹고 차질다)이 바닥에 뒹군다. 마트나 공판장에 가면 껍질을 벗겨서 판다.

들깨를 씻어 건지고 있습니다.
들깨를 씻어 건지고 있습니다.김규환
이것이 바로 땅에 묻힌 알토란(土卵)이다. 흙에서 나는 타원형 알토란은 생김새가 정말 알 같다. 날짐승 닭이 낳은 완전식품인 달걀을 계란(鷄卵)이라 하는데 흔히 '알토란같다'고 하는 말도 여기서 왔다고 한다.

잎과 줄기, 뿌리 어느 한 부분도 버릴 데 없는 알짜배기 토란탕 한번 끓여볼까.

가까운 시장에 가서 토란 한 봉지를 산다. 손이 여린 사람은 가능하면 껍질 벗겨둔 것을 사야 한다. 그래야 벗기면서 이리저리 만지다가 알레르기 일으킬 일이 없다.

고르는 요령은 우선 토란 뿌리는 봄에 심었던 무강(1년을 묵은 것으로 아무리 삶아도 단단해 먹기에 불편하고 독이 강한 것)을 제외하고, 1년 산 보드라운 놈을 추려서 껍질을 벗기고 소금에 너덧 시간 절여서 독을 빼야 한다.

소금물과 쌀뜨물 섞은 물에 담가 놓으면 쉽다. 절인 뒤 물을 버리고 솥에 넣고 맹물로 한소끔 끓여 물을 따라 독을 완전히 제거해야 준비 완료다. 손이 아리면 따뜻한 물에 비누로 깨끗이 씻는다.

체로 바치면 이런 맑은 국물이 생깁니다. 껍질은 가라앉도록 놔두고 맑은 물만 살짝 따라도 됩니다.
체로 바치면 이런 맑은 국물이 생깁니다. 껍질은 가라앉도록 놔두고 맑은 물만 살짝 따라도 됩니다.김규환
닭을 잘게 토막 내 참기름, 생강, 마늘을 찧어 조선간장으로 버무려 양념이 배도록 재워둔다. 들깨를 갈아 겉껍질을 분리하고 맑은 우윳빛 국물만 체에 따로 받쳐놓는다. 들깨가 부족하면 쌀을 갈아서 써도 되지만 들깨가루를 넣는 건 피하길 바란다. 육수와 토란을 넣고 푹 끓여 토란 알맹이가 익었다 싶으면 간을 맞추고 마련한 고기를 몇 국자 넣으면 된다.

고기는 꿩이 으뜸이지만 쉬 구하기 힘들 뿐 아니라 값도 비싸므로 닭을 이용한다. 쇠고기를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다. 대신 여러 번 나눠서 쓸 수 있으므로 될 수 있으면 닭은 큰 것을 산다.

볶아 뒀다가 쓰는 게 제 맛인데 그래야 국물이 토란 알맹이와 함께 부드럽게 목구멍을 넘어간다. 몰랑몰랑 포근포근한 알이 사르르 녹는다. 숟가락으로 잘라서도 먹고 통째 넣어도 찰떡처럼 씹히다가 이내 넘어간다.

토란을 까서 소금과 쌀뜨물에 몇 시간 담가 놓으면 알알한 맛이 빠집니다. 다시 한번 물에 끓여서 그 물을 버리고 끓이면 됩니다.
토란을 까서 소금과 쌀뜨물에 몇 시간 담가 놓으면 알알한 맛이 빠집니다. 다시 한번 물에 끓여서 그 물을 버리고 끓이면 됩니다.김규환
내 동생은 닭고기 한 마리를 통째로 살이 쭉쭉 찢어지도록 오래 삶아 더 걸쭉하게 끓인다. 한두 번 먹기는 이게 더 나을지 모른다. 국물이 너무 진하면 타기도 하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먹을 때는 큰 대접에 퍼서 담고 밥을 조금만 말아야 한다. 괜히 많이 말았다가 되직해지면 떠먹기가 사납다.

아내가 "당신이 끓인 토란탕이 더 깔끔하고 담백해요. 목구멍도 간지럽지 않아서 좋고요"라면서 시식평을 한다. "예전엔 묵은 토란까지 넣어서 칼칼하게 얼마나 간지러웠는데요."

해강이 솔강이도 거든다.

"아빠, 이게 뭐야?"
"응, 큰아빠가 보내주신 토란이지, 토란탕이란다. 맛있지?"
"예."
"흙 속에 있는 달걀이야."
"정말 맛있어요. 더 큰 것 주세요."
"여기 있다. 하나씩 더 먹어라."

약간 색깔이 짙어진 건 간장으로 간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소금보다 담백한 맛이 있습니다. 절대 양조간장이나 화학조미료를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약간 색깔이 짙어진 건 간장으로 간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소금보다 담백한 맛이 있습니다. 절대 양조간장이나 화학조미료를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김규환
남녀를 떠나서 집에 있거나 일찍 들어오는 사람이 짬을 내서 낮에 미리 준비하는 게 관건이다. 저녁 시간에 맞춰 토란국, 토란탕 한 그릇 내놓으면 진한 국물에 한번, 포근포근한 알에 또 한번, 쫄깃한 닭고기에 빠져 두 그릇 먹고도 다시 먹고 싶어진다.

이미 나와 아이들은 닭을 볶기 전에 넉넉히 얻어 온 닭똥집과 일부 살점을 도려내 몇 점 나눠 먹었다. 술은 남편인 내가 네 잔, 아내가 두 잔을 마셨다. 며칠 동안 잃은 인심을 회복하는 소중한 계기기도 했다.

계절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에 민감하고 입맛을 잃은 가족들을 위해 아빠들이 한번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요즘이 제철이기도 하거니와 토란 재배 과정을 살펴보면 밭작물 중에서 몇 안 되는 안전식품이다. 잎이 나기가 무섭게 그늘을 만들어 잡초를 고사시키기 때문에 제초제를 덜 쓰고 살균제, 살충제를 쓰지 않아도 물기만 적당히 스며있는 땅이면 잘 자라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무, 도라지, 연근, 마, 버섯, 더덕, 당근 따위 뿌리식물이 맛있을 때다.

토란탕에 밥을 말아보세요. 너무 많이 말지 말고 서너 숟갈만 말아 얼른 떠드세요.
토란탕에 밥을 말아보세요. 너무 많이 말지 말고 서너 숟갈만 말아 얼른 떠드세요.김규환

토란국, 토란탕 맛있게 끓이는 방법
준비물과 가격

토란국, 토란탕 끓이는 방법

1. 토란을 물에 담가 껍질을 벗기고 알이 너무 큰 것은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2. 껍질을 벗겨서 쌀뜨물, 소금물에 5~6시간 담가서 아린 맛을 뺀다.
3. 닭을 잘게 토막 내 참기름, 생강, 마늘을 찧어 조선간장으로 버무려 양념이 고루 배도록 뒀다가 달달 볶는다.
4. 통 들깨를 갈아 채로 받쳐 국물을 준비한다. 쌀뜨물을 섞어도 좋다.
5. 토란에 맹물에 넣고 한소끔 끓으면 물을 따라버린다.
6. 토란과 들깨국물을 넣고 끓이다가 볶아둔 닭고기를 몇 국자 넣어 팔팔 끓인다.
7. 국그릇에 퍼서 밥을 조금 말아 뜨거울 때 먹는다.

가격과 준비물

1. 토란: 300g 3천원 선
2. 닭고기: 1마리 6천원
3. 들깨: 200g
4, 마늘: 6쪽마늘 한통
5, 생강: 30g
6. 참기름: 두 큰 숟갈
7. 조선간장: 두세 숟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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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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