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라일락꽃 그늘 아래 - 11회(2부 : 그녀를 향한 이카로스)

- 첫사랑은 아픈 거예요

등록 2004.12.21 08:28수정 2004.12.2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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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여러분이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오늘의 주인공 등장입니다. 짠짜라 잔‥‥‥!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국어국문학과 1학년 A반에 재학 중인 김철민!’이라고 합니다.

너무 요란스럽게 소개했나요. 어때요? 저라는 것을 익히 아셨나요? 아니면 오늘에서야 아셨나요? 그동안 편지공세를 퍼붓던 주인공의 얼굴이 백일하에 드러나니, 기대가 됩니까? 아니면 실망스러우십니까?


오늘은 계속 물음표 투성이군요. 정말 그렇습니다. 초희씨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언제쯤이면 저의 이 목마름이 해갈될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초희씨 얼굴을 뵙고 싶습니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는 토요일 오후 2시 어떻습니까? '차와 음악이 있는 풍경'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러면 그 날 거기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84년 4월 22일

초희씨만을 별처럼 바라보고 있는 남자 철민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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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만 보는 사랑

당신은 나의 밤에 초롱한 눈빛으로 반짝이는 별입니다
나의 호수 안에서 사알짝 목욕하고 가는 선녀입니다
소년의 소나기 속에 영롱하게 살아있는 보랏빛 소녀입니다
풋풋한 목동의 가슴에 싱그런 불을 지핀 스테파네트 아가씨입니다
벙어리 삼룡에게 참사랑과 행복을 맛보게 한 주인 아씨입니다
당신은 나의 영원한 샛별이기에
이렇게 부푼 풍선으로 언제까지나 바라만 봅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별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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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토요일. 드디어 그녀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전날 온 시내를 쏘다니며 그녀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무엇이 좋을까 고민 고민하다가 시계와 연필꽂이를 겸한 예쁜 팬시용품으로 골랐다.

늘 그녀의 책상 앞을 지키고 있으라고. 그리고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기에 밤잠 설쳐가며 완성한 종이학도 유리 상자에 담아 예쁘게 포장했다.


며칠 전부터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마음이 설레어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도 피곤한 줄 모르고 그녀를 만난다는 생각에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 날은 특별히 일어나자마자 온천에 가서 목욕재계를 하고 왔다.

1시쯤 집에서 나서 꽃집에 들러 장미꽃 스무 송이와 그리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싱싱한 행운목 한 그루를 산 다음 떨리는 가슴으로 '차와 음악이 있는 풍경'으로 들어섰다.

토요일은 대부분 수업이 없어서 모두들 원정을 간 걸까. 늘 대학생들로 붐비던 찻집 안이 오늘은 의외로 한산했다. 비교적 전망이 좋은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스피커에서는 팝송 'Beautiful Life'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You can do what you want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Just seize the day (오늘을 놓치지 말아요)
What you're doing (무얼 하고 있는 건가요)
Tomorrow's gonna come your way (내일이 그대를 향해 올 텐데)
Don't you ever consider giving up (포기할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You'll find it's a beautiful Life (그댄 알게 될 거예요 멋진 인생이라는 걸)
I just wanna be here beside you (나 여기 그대 곁에 있고 싶어요)
And stay until the break of dawn (새벽이 올 때까지)
Take a walk in the park when you feel down (마음이 울적하면 공원을 거닐어요)
There're so many things there (그대 기분을 풀어 줄 일들이)
That's gonna lift you up (아주 많을 테니까 움트는 자연을)
See the nature in bloom, a laughing child (보세요 방긋 웃는 어린 아이들도)
Such a dream. It's a beautiful Life (정말 꿈만 같아요 멋진 인생이에요)
You're looking for somewhere to belong (그대 자신을 맡길 곳을 찾고 있지요)
You're standing all alone for someone (그대 혼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지요)
To guide you on your way now and forever (지금, 그리고 언제까지나 영원히)
It's a beautiful Life (그대 갈 길로 이끌어 줄 사람을 찾고 있지요 멋진 인생이에요)
I just wanna be anybody (난 아무라도 되고 싶어요)
We're living in different way (우린 다른 식으로 살고 있어요)
It's a beautiful Life (멋진 인생이지요)
I'm gonna take you to the place (난 그대를 데리고 갈 거예요)
I've never been before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It's a beautiful Life (멋진 인생이에요)
I'm gonna take you in my arms (그대를 내 두 팔에 안고)
And fly away with you tonight (오늘 밤 그대와 함께 멀리 날아갈 거예요)
It's a beautiful Life (멋진 인생이에요)

노랫말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노래가 좋아서일까?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고 있었다. 친구들과 가끔 오는 찻집인데, 클래식음악, 팝송, 대중가요, 심지어 국악까지 DJ의 선곡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시계를 보니 초침이 막 12를 가리켜 오후 2시임을 알리고 있었다. 숨이 멎는 듯 했다. 물컵 안의 물을 연거푸 마셔보았지만 점점 심장의 박동소리가 커질 뿐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종업원에게 차가운 물을 좀 더 갖다달라고 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이번에는 내 두 눈이 출입문 쪽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여자 손님이 들어서면 혹시 그녀가 아닌가 싶어 몸이 저절로 움찔 하는 것이었다. 30분쯤 지나자 그녀를 만난다는 기대감의 난류가 서서히 불안감의 한류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꼭 나올 거야. 조금만 기다리자.' 1시간이 지났다. 조금씩 허탈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을 억누르면서 '그렇지 않아, 그녀는 꼭 올 거야.' 오기와 깡으로 기다리며 버텼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났다. 정말 맥을 못 출 정도로 갑자기 몸이 무거워졌다. '어떻게 된 걸까? 그녀가 왜 나오지 않았을까?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니면 나오지 못할 사정이라도 생긴 걸까? 도대체 무엇일까?' 내 마음 속에는 온통 물음표로 범벅이 되고 있었다.

5시가 넘자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가 올 때까지 밤새도록 기다리고 싶었으나 괜히 종업원의 눈치가 보여 더 이상은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일단은 찻집을 나왔다. 그리고는 찻집 앞에서 다시 2시간 정도를 더 기다렸다. 어느새 어둠이 가라앉고 있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역시 내가 헛짓을 했구나. 그녀는 역시 나와 인연이 아닌가 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철썩 같이 그녀가 나오리라 믿었는데, 보기 좋게 바람을 맞았으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들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하나님, 저는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여자를 사귀면 안 됩니까? 안 된다면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제발 말씀 좀 해주세요?' 짓누르는 고통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나도 모르게 그만
"아아----."
하고 괴성을 지르고 말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모두들 나를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 미칠 수 있다면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었다. 술, 담배를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이럴 때 술, 담배라도 할 줄 알았다면 알코올이나 니코틴에 마음껏 취할 수 있을 텐데.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목에 차마 그러지를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녀를 위해 준비했던 장미 스무 송이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이번에는 그녀에게 줄 선물을 버리려고 손을 드는 순간,
"철민아! 너 철민이 아니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친구 노진이었다.

"너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냥 내버려 둬. 그럴 일이 좀 있어."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너답지 않게?"
"그래, 너답지 않게!"
"나다운 게 뭔데? 나다운 게 뭔데?"
"야, 일단 가자. 가면서 얘기하자.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잖아."

노진의 팔에 이끌려 간신히 자취방까지 왔다. 아무리 친한 친구지만 나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상 친구한테 나의 추하고 망가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그러나 그에게 모든 것을 들켜 버렸으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할 수 없이 체면 불구하고 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대충 내 사연을 들은 노진은 대뜸
"그랬구나. 술 한 잔 사줄까? 이럴 때는 무조건 술을 먹고 코가 비뚤어지도록 취하는 것이 약인데."
"그럴래?"
"너 정말이냐? 야 오늘 역사적인 날이 되겠는 걸. 목사지망생이 술을 다 먹고."

"됐다! 술은‥‥‥, 그런다고 해결 되겠어 괜히 속만 더 아프지. 그래도 마침 너를 만나 이렇게 털어놓고 나니까 그런 대로 견딜만하다."
"녀석, 싱겁기는‥‥‥."
"야! 너, 이젠 그만 가봐야잖아. 바쁜 것 아니었어?
"아무리 바빠도 친구를 외면할 수 있나. 정말 안심하고 나 가 봐도 되겠냐?"

"무슨 소리야?"
"아니 나는 네가‥‥‥."
"뭐야 인마! 이만 일에 설마 내가 목이라도 맬까봐?"
"야, 너 아까 같아서는 그보다 더한 짓도 하겠던 걸"
"뭐야! 이 녀석이 사람을 놀리고 있어. 야, 빨리 가. 참 가면서 저것 좀 갖다 버려라."

"뭔데?"
"그녀를 만나면 주려고 했던 선물‥‥‥."
"그런데 왜 버려?"
"이젠 필요 없게 됐잖아."
"버리긴 너무 아까운 걸."

"그럼 너 갖든지?"
"정말?"
"그래."
"야, 철민아, 그러지 말고 이거 그녀에게 전해 줘. 별일 없는 이상 다음 주면 어쨌든 학교에서 볼 거야냐. 어차피 그녀에게 주기로 했던 거니까 이미 이 물건의 주인의 그녀야. 그녀의 소유라고."
"그럴까?"

노진이가 가고 나서 생각하니 그도 그럴 것 같았다. '그래 그녀와 인연이 아닌 걸 확인한 이상, 이거나 전해주고 깨끗하게 끝내자. 남자답게 물러서는 거야. 큰소리를 땅땅 치면서 주자.

제깟 것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기에 감히 나를 바람을 맞혀. 그 잘난 얼굴이나 한번 보자. 못나오면 못나온다고 연락이나 줄 것이지. 기다리는 줄 뻔히 알면서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나? 내가 콩깍지가 씌어서 사람을 잘못 본 게 틀림없어. 어떻게 사람을 하루 종일 기다리게 하냔 말이야.'

* 12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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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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