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북평 영전에 도로변에 위치한 '영전백화점'.김준
개도 물고 다녔던 오천 원짜리
구멍가게가 가장 번성했던 시절은 김농사(김양식)가 돈이 되었던 1970년대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인근 남전마을까지 포함해 영전일대는 170여 호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300호가 훨씬 넘었다. 이렇게 번성하자 가게도 조그만 시골에 16개나 있었지만 지금은 4개에 불과하다.
당시에는 모두 간단한 생필품에 막걸리를 파는 가게였다. 지주식 김발로 현금을 자주 만지는 탓에 돈을 모을 줄 모르고 생기는 대로 소비하였으며, 마을에 개들도 오천원짜리를 물고 다닐 정도로 돈이 흔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탓에 아이들이 없고, 과자소비도 줄어들었다. 노령화되면서 술소비도 줄어들었다. 김농사가 잘 되던 시절에는 곧잘 술을 먹던 사람들도 대부분 술을 끊은 지 오래이다. 당시 바람이 불거나 물때가 맞지 않아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주민들은 가게에서 술과 화투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물론 외상으로.
이렇게 해서 얼마간 모든 돈으로 광주에 집을 샀다. 전남대학교 정문 인근에 1980년에 집을 샀는데 당시 '광주사태'로 군인들이 집 앞으로 오가고 대학생들이 데모가 끊이질 않아 다시 화정동으로 집을 옮기기도 했다. 이렇게 집을 마련한 것은 모두 자식들 교육때문이기도 했지만 김씨가 시골을 뜨기 위한 준비 과정이기도 했다.
당시 논이 4천여평에 밭이 3천여 평으로 인근에서는 땅을 꽤 가지고 있는 축에 들었던 김씨 부모님은 김씨가 도시로 나가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50대에 귀하게 본 아들을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탓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