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청와대보다 더 '높은' 데 있는 까닭

[정치 톺아보기 80] 오정희 비서관의 감사원 사무총장 내정 논란

등록 2005.02.13 11:41수정 2005.02.14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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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잡은 감사원 일대 지도.


대한민국 감사원(監査院)의 주소지는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25-23'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에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직속 하에 감사원을 둔다"라고 감사원을 헌법기관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헌법기관이면서도 행정부에도 입법부에도 사법부에도 속하지 않은 이 독특한 독립기관의 위상과 그 상징성은 위의 주소지에서 잘 드러난다.

국가기관 중에서 유일하게 청와대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감사원

대한민국의 모든 중앙 국가기관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보다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대통령궁'(청와대)의 존엄과 권위를 고려해 국가기관 건물을 처음부터 그렇게 배치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곧 대통령'임을 내세우는 참여정부의 시각으로 보면 '구시대'적 발상이지만, 외국에도 이런 배치 사례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다. 청와대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감사원이다.

감사원의 전신은 심계원(審計院)이다. 감사원은 1948년 정부 수립과 더불어 설립된 정부의 예산결산 보고 및 회계검사를 맡는 '심계원'과 공무원에 대한 감찰 업무를 맡은 '감찰위원회'가 지난 63년 통합된 것이다.

그러다가 70년대 초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보다 '높은' 현재의 자리에 감사원 건물이 들어섰다. 공무원 채용규정에 '감사직'이 신설되어 해마다 '감사원 7급 공채' 시험으로 15명씩을 선발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감사원은 법률상으로는 청와대를 포함한 모든 공직자에 대한 '직무감찰'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청와대보다 '높은' 곳에 자리잡는다고 해서 안될 일도 없다. 그러나 국가정보원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직속기관'이면서도 국정원과 달리 헌법기관으로서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감사원의 위상을 고려한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가 작용한 덕분이었다.

정부기관에 대한 '회계감사'와 공직자에 대한 '직무감찰'을 양대 축으로 하는 감사원의 뿌리는 문헌상 7세기 중엽의 신라 태종무열왕 때 설치한 '사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앙관부의 하나로 설치된 사정부에서는 백관의 기강 등을 규찰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사헌부나 사간원의 벼슬을 통칭하는 '대간'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는 바, 특히 대간은 법령 공포 및 문무백관 임명시에 서명하는 '서경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감사원 '특별조사국' 감사관은 '암행어사 박문수의 후예'들

조선시대에는 사헌부 소속의 '대관'과 사간원 소속 '간관'의 임무가 분화되어 군주니 대신들의 '부당'과 '부정'을 지적해 이를 시정케 함으로써 권력남용을 견제하였다. 따라서 대간은 공정과 청빈을 기본정신으로 삼았고, 훌륭한 가문의 출신으로서 강직·과감하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 중에서 엄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조선시대의 감사제도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16세기 초에 생긴 '암행어사' 제도이다. 조선시대 군주는 이른바 권설직(임시직)인 어사를 지방에 수시로 파견하여 지방행정 및 민심의 실태 등을 파악하고 지방관의 부정과 횡포를 규찰·탄핵케 했던 것이다.

현재의 감사원 조직 중에서 '특별조사국'이 바로 '암행어사의 후예'들이다.

감사원의 본령이 정부기관에 대한 '회계감사'와 공직자에 대한 '직무감찰'이듯이 감사원의 '양끗발' 부서는 기관에 대한 회계감사를 담당하는 재정·금융 감사국과 공직자에 대한 암행직무감찰을 담당하는 특별조사국이다.

이 가운데서도 이른바 '감사원 5국'으로 더 유명한 특별조사국은 일반인에게는 낯설지만 공무원들이라면 누구나 다 대면하기를 꺼리는 실세기관이다(5국은 '숫자'로 익명화된 기관명을 한글 이름으로 바꾸면서 특별조사국으로 바뀌었다). 5국 감사관들은 투서와 진정 등 자체적으로 입수한 비위정보를 토대로 전국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암행감찰을 한다.

그러니 5국에서 사람이 나왔다거나, 5국에서 부른다면 공무원들이라면 누구나 가슴 뜨끔할 일이다. 그래서 감사원 5국장(2급 이사관)은 감사관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그 자리에 앉고 싶어하는 '감사원의 꽃'이다. 언론매체에서 이른바 '대한민국 00대 요직'을 얘기할 때 꼭 끼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나 앉고 싶다고 해서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비위정보'가 모이고 종종 '대통령 하명' 사안을 다루기 때문에 이 자리에는 과거부터 감사원장이나 대통령의 '직계' 인사나 '코드'가 통하는 인사가 가곤 했다.

오정희씨는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후배이자 최도술 전 비서관의 동기

최근 감사원 사무총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는 오정희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도 청와대에 파견되기 직전에 2달여 동안 특별조사국장(2003년 12월∼2004년 2월)을 지냈다.

오 비서관의 경력을 보면, 지난 73년 감사직 7급 공채(2기)로 감사원에 들어가 감사교육원 감사교육과장(97.1 - 98.7), 감사원 심사1담당관(98.7 - 2000.4), 감사원 제2국 1과장(00.4 - 00.12), 감사원 대전사무소장(01.1 - 01.12), 국방대학원 파견 부이사관(01.12 - 02.12) 등 비교적 '한직'을 전전하다가 노무현 후보의 당선과 더불어 요직인 공보관(02.12 - 03.12)에 기용되어 이사관으로 승진하고 그 뒤에 핵심요직인 특조국장에 발탁되었다.

그래서 이미 이때부터 감사원 내부에서는 오 비서관과 부산상고 동기인 최도술 총무비서관이 인사에 영향을 미쳤거나, 아니면 오 비서관의 부산상고 1년 선배인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려는 감사원 고위층이 '알아서 긴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돌았었다.

그런데 특조국장(2급 이사관) 2달여만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04.2 - 05. 2 현재)으로 자리를 옮긴 오 비서관이 이번에는 감사원 사무총장(차관급)으로 2계급 승진해 '친정으로 복귀'한다는 소식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고속승진'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사무총장 적임자'냐는 점이다.

오 비서관은 지난해 2월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들어간 후 최소연한인 6개월만에 1급으로 승진했다. 따라서 이번에 감사원 사무총장직을 맡게 되면 감사원에 아직도 상당수 건재하는 '감사직 1기' 선배들을 한꺼번에 '물'을 먹이는 '고속승진'을 하게 된다.

한나라당 논평 "3급이 차관급 되는데 1년 반도 안 걸리다니"

한나라당이 11일 일개 비서관의 인사 내정 논란에 대해 이례적으로 '3급이 차관급 되는데 1년 반도 안 걸리다니' 제목의 대변인단 논평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논평에서 "오정희 청와대 비서관의 감사원 사무총장 내정은 전형적인 정실인사이자 동문인사다"고 전제하고 "참여정부 출범 당시에 3급 공무원이 불과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에 2급, 1급을 거쳐 차관급까지 초특급 승진을 한 것은 대통령 동문 챙기기 밖에는 달리 설명이 안된다"면서 "이런 무원칙한 인사는 감사원뿐만 아니라 모든 공직자들의 사기를 꺾는 부도덕한 일로 당장 취소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감사원 내부에서도 오 비서관의 사무총장 승진 복귀 내정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기류가 적지 않은 것 같다. 감사교육원장 등 현재의 감사원 체제가 정비된 72년부터 시작된 7급 공채 1, 2기 고참 국장 선배들이 수두룩한데 그가 차관급에 기용되는 것은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감사원 조직을 흔들고 사기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연막작전'에도 불구하고 현재 감사원 내부에서는 지난 1월부터 오 비서관의 사무총장 승진 복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감사원 직원들은 드러내 놓고 말은 못하지만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즉, 감사원 내부에서는 오는 7월에 임기 만료되는 J감사위원이 새학기에 모대학 학장으로 가게 돼 사표를 내기로 되어 있어, 현재의 김종신 사무총장이 3월1일자로 공석이 된 감사위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 자리에 오 비서관이 기용된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이미 전윤철 감사원장이 노 대통령에게 오 비서관을 사무총장으로 임명 제청을 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감사원에 주문하는 '정부혁신 코드'에 비추어보면, 오 비서관이 원장을 보좌해 감사원의 감사운용 방향을 이끌어가는 사무총장에 적임자인지는 의문이다.

감사원 내부에서는 청와대의 '인사코드'와는 별개로 과연 오 비서관이 청와대가 감사원에 주문하는 '정부 혁신 코드'와 맞는지를 의심한다. 오 비서관의 경륜이나 나이(57)는 원만하지만, 생각은 '옛날 분'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청와대와 '코드'를 맞춘 대통령 비서관이 공직 사정기관인 감사원의 사무총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면서도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감사원이 30여년 전에 대통령궁(청와대)보다 더 '높은' 현재의 자리에 들어서게 된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감사원 사무총장이 노 대통령의 고교 1년 후배라는 사실 때문에 감사원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폄하되는 것은 감사원은 물론 대통령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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