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열일곱 마리랑 함께 삽니다

우리 교회 '좋은나무학교' 아이들

등록 2005.03.10 19:01수정 2005.03.1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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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는 좋은나무학교 멋쟁이들이랍니다. 병아리와 함께 찰칵!

우리는 좋은나무학교 멋쟁이들이랍니다. 병아리와 함께 찰칵! ⓒ 박철

오늘 오전에 볼 일이 있어 아내와 외출을 하고 돌아왔더니 우리 교회 1층 좋은나무학교(공부방)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삐약 삐약!" 병아리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결손 가정 아이들을 중심으로 작년부터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부방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아이들이 종이 박스를 가운데 놓고 무엇엔가 몰두하고 있습니다. 노오란 병아리 두 마리였습니다. 부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털이 보송보송하게 자란 햇병아리였습니다.

병아리


삐약 삐약 노오란 병아리
노랗고 작은 몸을 이리 저리
흔들면서 작은 박스 안을 뛰어 다닌다

유치원 아이들처럼
쫑알쫑알 아장아장
귀여운 병아리

작은 날개를 펄럭이면서
세상을 향하 힘차게 나아간다

/ 이란정(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에게 병아리를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더니 학교 앞 문방구에서 돈을 주고 샀다고 합니다. 병아리 값이 한 마리에 300원이랍니다. 아이들은 종이 박스 안에 들어 있는 병아리에게 서로 시선을 끌려고 머리를 맞대고 떠드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애들아, 병아리를 보니 어떤 마음이 드니?"
"예쁘고 귀여워요."
"병아리 값이 엄청 싸요. 양념 통닭은 한 마리에 만원인데 병아리도 크면 닭이 될 텐데 값이 너무 싼 것 같아요."
"병아리가 조금 불쌍해요. 엄마와 떨어져서요. 그리고요, 아까 똥에 밥(사료)이 떨어졌는데 병아리가 그걸 막 먹는 거예요."

"이 병아리 어떻게 하려고 돈을 주고 샀니?"
"제 방에서 키울 거예요. 밥도 주고 물도 주고 한 3년 쯤 키우면 닭이 되겠지요."


올해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성빈이가 의젓하게 대답을 합니다. 그렇게 한참 병아리와 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아이들 모두가 병아리같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운영하는 좋은나무학교에는 17명 어린이가 있습니다. IMF 이후 엄마 아빠가 헤어져서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도 있고, 엄마 아빠가 직장에 나가는데 학원 보낼 형편은 못 되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a 우리는 좋은나무학교 사총사랍니다.

우리는 좋은나무학교 사총사랍니다. ⓒ 박철

그래도 아이들이 밝고 명랑하고 공부도 잘 합니다. 어른들을 보면 공손하게 인사도 잘 합니다. 좋은나무학교 총무인 김재련 선생님께 아이들 소개를 부탁드렸습니다. 김재련 선생님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아이들을 맡아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봉사를 하고 계십니다.

"일단 좋은나무학교 어린이들은예, 공통점이 착해요. 너무 너무 착해요. 그게 제일 큰 자랑이에요. 그럼 하나하나 소개해 볼까요? 란정이는 침착하고 자기 일을 척척 잘 해요. 난실이는 리더십이 있어요. 지음이는 웃는 모습이 뿅 갈 정도로 예뻐요. 주완이는 남자애답지 않게 누나들과 잘 어울리지요.

은빈이는 호기심이 많고 말을 잘 해요. 승환이는 동생들을 잘 챙겨주고요. 지원이는 애기 같으면서도 조숙한 편이예요. 다솜이는 여자아이인데도 씩씩하고요. 성빈이는 욕심이 없고 순진해요. 성혜는 멋쟁이에요. 준호는 미남이구요. 미정이는 운동도 잘 하고 개그맨 저리가라 할 정도로 웃겨요… 더 소개 할까요?"



김재련 선생님은 조금도 막힘이 없이 아이들 특징을 줄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래요. 우리 교회엔 꿈 많고 예쁘고 착한 17명의 병아리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삐약 삐약!" 병아리 소리보다 더 크게 웃고 떠드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올 가을엔 '17마리 병아리와 함께 하는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모두가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성혜가 병아리를 자기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말합니다.

a 아이들이 병아리를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병아리를 잘 키울 수 있을까요? ⓒ 박철

"목사님, 병아리 털이 부드럽고 간지러워요. 병아리 발톱이 뾰족해서 손바닥이 조금 따끔따끔해요."
"애들아, 그럼 지금부터 다같이 '병아리'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보자."


아이들이 저마다 종이를 받아들고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시를 짓습니다. 아이들 손에서 놓여진 병아리는 심심한지 더 큰 소리로 "삐약 삐약"거립니다. 봄은 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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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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