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라일락꽃 그늘 아래 - 39회(7부 : 타는 목마름으로)

첫사랑은 아픈 거예요

등록 2005.03.16 14:37수정 2005.03.1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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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기 화백 제공

다시 4.19혁명 기념행사를 계기로 대학가는 군사정권 타도를 외치는 집회와 시위로 몸살을 앓기 시작하였다.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거의 시위의 연속이었다. 첫 단추를 한번 잘못 끼워 고역을 치르는 것처럼 현 정권은 그 태동부터 쿠데타로 집권을 했기 때문에 정당성이 없었다.

따라서 계속되는 폭압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니, 더 이상은 침묵만 하고 있을 민중도 아니었다. 밟아도 밟아도 다시 땅을 뚫고 나오는 잡초처럼 대학생들과 일부 의식 있는 지식인 계층에서 서서히 현정권에 대해서 등을 돌린 채 정권 퇴진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다니던 대학도 총학생회 차원에서 수업과 중간고사를 거부하면서 투쟁의 열기를 더해갔다. 그러나 수업 복귀 여부와 중간고사 응시 여부는 개별학과의 몫이었기 때문에 학과별로 뜨거운 찬반토론이 진행되었다. 우리 학과도 예외가 아니었다. 몇몇 어용 교수들과 학과장까지 나와 우리의 수업복귀와 중간고사 응시를 집요하게 설득하였다.

"여러분 신분이 무엇입니까? 학생 아닙니까? 여러분 여기에 왜 와있습니까? 공부 하려고 오지 않았습니까? 학생이면 학생답게 당연히 수업에 들어와서 강의도 듣고 또한 시험에도 응해야지 이게 뭡니까? 데모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습니까? 정치는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맡기세요.

여러분들이 정치인입니까? 배 놔라 사과 놔라 하게. 여러분이 이런다고 그 사람들이 눈 하나 깜짝 할 줄 아세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괜히 여러분들의 몸만 다칩니다. 부모님을 생각해야지요. 제발 부모 형제를 생각해서라도 이성을 되찾으십시오.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전당을 과연 이렇게 변질시키고 훼손시켜도 된다는 말입니까? "

몇몇 어용교수의 침에 발린 발언에 이어 학과장으로 있는 조모 교수가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자 조금씩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특히 여학생들이 사이에서 맞아, 맞아 하면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읽은 조 교수의 만면에 웃음이 흘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도 일어나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러다가 우리 학과가 제일 먼저 수업에 복귀하고 시험에 응시하는 첫 학과가 되게 생겼다. 안 되겠다싶어 내가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교수들의 논지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서 일장 연설을 시작하였다.


"여러분, 조금만 조용히 해주십시오. 제가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금 장황한 얘기가 될지 모르나 끝까지 경청하시면 분명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고는 함석헌 선생과 몇몇 민주인사들의 생각을 골조로 나의 살을 덧붙여 견해를 피력해갔다.


"여러분 가만히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들은 대개 외국의 것에 비해 작습니다. 과일도 그렇고 채소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습니다. 좁은 국토에서 아웅다웅하며 살아온 결과입니다. 콩나물시루에서 자라는 콩과 밭에서 자라 는 콩을 비교하면 금방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몸이 작은 것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슴이 작은 것이, 마음이 작은 것이, 통이 작은 것이, 스케일이 작은 것이, 시야가 좁은 것이, 생각이 짧은 것이, 근시안적인 것이 문제지요. 우리가 처음부터 이렇게 작고 적은 민족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고구려 광개토왕 때를 상고해보십시오. 적어도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관계가 아니었습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중국보다 더 강성한 제국이었습니다. 그 고구려의 가슴 한 복판은 어디였습니까? 바로 만주벌판과 요동반도가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애석하게도 신라가 통일을 하는 바람에 우리 민족은 수렁으로 내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광활한 만주벌판과 요동반도를 잃어버리고 한반도에 국한되다 보니 생각도 작아지고 시야도 좁아졌습니다. 역사에는 만일이라는 것이 없다지만 그래도 고구려가 통일을 했더라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민족의 장자격인 고구려를 제치고 막내격인 신라가 그것도 자력이 아닌, 외세의 힘을 빌려 이룩한 통일이었기 때문에 미래는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통일 신라 이후에 얼마나 우리가 중국화의 길을 걸었는지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거의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하다시피 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배달민족이 말입니다. 신라의 죄악은 하나 더 있습니다. 발해와 힘을 합치지 않은 것이 그것입니다.

발해는 분명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였습니다. 외세의 힘을 빌린 신라에 맞서 고구려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이 시기를 가리켜 '통일신라 시대'가 아닌 '남북국 시대'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신라가 발해를 오랑캐 취급을 하지 않고, 같은 한 겨레로 생각하여 힘을 합쳤다면 다시 한번 고구려의 위용을 되찾을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좀 다른 얘기긴 합니다만, 우리가 신라를 이렇게 후세에 와서 지탄하는 것처럼 나중에 우리 후손들은 지금의 남북한 대치 상황을 무어라 말할까요?

생각할수록 참으로 두렵고 떨리기까지 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신라가 쇠약하자, 후삼국시대라는 과도기를 거쳐 고려가 건국되었습니다. 왜 하필 고려라는 국명을 썼겠습니까? 고구려의 재건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분명 고려시대에는 우리 민족의 가슴인 만주벌판과 요동반도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묘청의 서경 천도는 그러한 일념에서 나온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대주의자 김부식에 의해서 그 포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려 말 최영 장군도 시도해 보려 하다가 그만 이성계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조선시대로 넘어가면 더욱 암울해지지요. 물론 세종 때 김종서 장군에 의해 약간의 노력이 있었지요.

또한 효종이 오랑캐로부터 당한 치욕을 씻고자 북벌계획을 세웠었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효종이 요절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일부에서는 독살되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중국을 하늘처럼 받들고 그 우산 아래에서 만족하며 살려던 사대주의 조선은 그러나 끝내 섬나라 일본에게 먹히고 말았습니다.

부끄럽게도 중국의 주변 국가 중에서 우리만 유일하게 한번도 중원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오랑캐 취급하는 몽고족은 원나라를, 만주족은 청나라를 건설하여 중원의 주인노릇을 하며 천하를 호령했는데 우리는 그들보다 무엇이 부족했기에 그러지 못했을까요? 여러 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중국을 섬기고 따르기만 하면 상국인 중국이 최소한 안전은 보장해 주겠지 하고 믿었던 조선을 과연 중국이 지켜주었습니까? 오히려 중국만 믿고 안일하게 있다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우리 민족의 가슴이 만주벌판과 요동반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그 곳을 진격하여 땅을 되찾자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으로라도 고구려의 용감무쌍한 기상을 되찾자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저 드넓은 만주벌판과 요동반도를 말을 타고 달리던 고구려인의 후손답게 넓은 가슴으로 사회를 보고 국가를 보고 민족을 보고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의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민족의 장래가 밝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민족을 들어 쓰십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여 쓰셨고 유럽 국가들을 두루 들어 쓰시다가 19세기 대영제국을 분수령으로 20세기에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들어 쓰셨습니다. 지금은 일본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곧 우리 민족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작금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유럽의 나라들이 나치의 고리를 끊듯 친일파를 확실히 제거한 다음 시작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출발하는 바람에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구 선생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만 되었더라면 적어도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은 초래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어쨌든 이승만 초대 대통령, 외교에는 귀신이라는 호평을 받습니다만 인재 등용에는 등신이었다는 악평을 받습니다.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신문이 특별 제작되었다지요 아마. 이렇게 사람을 잘못 쓰다보니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되고 독재화의 길을 걷게 되었고 끝내는 장기집권을 꾀하다가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것 아닙니까? 4.19혁명으로 민주화의 꽃이 피나 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나와 민주화의 싹을 군화발로 짓밟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40회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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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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