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산 멧새들의 푸념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95) 야생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세상

등록 2005.03.30 14:51수정 2005.03.3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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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아침


멧새들의 노랫소리에 잠이 깨어 뜰로 나왔다. 더 없이 맑고 기분 좋은 아침이다. 그새 해는 동산 위에 솟아올랐다. 매화산 멧새들이 마을로 내려와 내 집 뒤꼍 배나무 고목 위에 앉아서 아침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박도 아저씨.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지요?

안녕, 멧새들아. 너희들도 그동안 잘 있었니? 엊그제 병원에서 깁스를 풀고 너희들과 안흥 산천이 보고 싶어서 어제 저물녘에 내려왔단다.

야생동물의 보금자리, 매화산 계곡
야생동물의 보금자리, 매화산 계곡박도
박도 아저씨, 고맙고 반가워요. 앞으로는 매사에 더욱 조심하시고 근신하셔요. 그동안 저희들은 아저씨가 없어서 매우 적적했다고요. 저희들이 노래를 열심히 불러도 들어주는 이가 없을 때는 무척 따분하지요.

그랬니? 너희들이 나를 동무로 여겨주니까 그지없이 고맙구나. '매사에 조심하고 근신하라'는 충고의 말, 가슴 깊이 새겨두겠다. 그래, 맞아. 구경꾼이 없는 노래자랑대회는 맥 빠지기 일쑤지.


그럼요. 노래도 이야기도 구경꾼이 열심히 들어주고 박수를 쳐 줄 때 신명이 더 나요. 어머, 그런데 박도 아저씨는 아직도 절름거리네요?

응, 의사 선생님이 두 주일은 더 지나야 풀 수 있다는 걸 내가 칭얼거리자 미리 풀어주더군. 집에서 꼼짝 말고 지내라고 하였는데 아내가 안흥으로 내려온다고 하기에 떼를 쓰며 따라 왔단다.


에구머니, 박도 아저씨는 정말 못 말려. 병도 회복기가 더 중요한데 무리를 해서 이곳까지 오시다니. 그 나이에 꼭 어린애처럼 의사 선생님에게, 부인에게 떼 쓰는 모습을 상상하니까 웃음이 나오네요. 저희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런 천진난만한 사람을 좋아해요.

고맙다. 좋게 봐 줘서. 막상 이번에 내가 다쳐보니까 엄청 아프고 불편하더구나. 이런 건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도 마찬가지일 테지.

그럼요, 저희들은 더 하지요. 참 좋은 말씀하셨어요. 이 세상에 태어나서 팔다리를 비롯한 신체의 각 부위가 제 기능을 다 발휘하지 못할 때는 무척 불편하지요. 하지만 저희들은 다쳐도 사람들처럼 병원에 가서 고칠 수도 없어요. 이 참에 박도 아저씨에게 저희들의 하소연을 좀 하겠어요.

그래 하려무나. 내가 들어줄게. 그동안 나도 너희들의 재잘거림과 푸념이 무척 듣고 싶었단다.

사람이 가장 무서워요

사람들이 야생동물을 너무 천대해요. 박도 아저씨는 글을 쓰는 분이니까 저희들 말 한 마디도 빠트리지 말고 그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주세요.

그래. 잘 알았다. 어서 해 보렴.

하늘은 만물을 이 세상에 살게 하면서 평화롭게 저마다의 삶을 누리도록 하셨을 터인데, 사람들은 그런 하늘의 뜻을 저버리고, 왜 그토록 포악하고 잔인한지 모르겠어요. 숲 속에 사는 저희 멧새뿐 아니라, 고라니 청솔무 멧돼지 노루 아저씨들이 만나기만 하면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어쨌든 사람을 피해 사는 게 하루라도 목숨을 연장한다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만 가요.

그런데 눈이 오는 겨울철에는 먹을 게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내려올 수밖에 없지요. 사람들은 그런 걸 용케도 알고서 길목에다가 올무나 덫을 놓고는 목이나 다리를 옭아매거나 다치게 하여 사로잡지요. 산속의 짐승들이 먹이를 찾다가 그만 올무나 덫에 걸려서 울부짖는 걸 보면 너무나 안타깝지만 저희들이 도와줄 수가 없어요.

게다가 요즘은 사람들이 '지방도'다 '국도'다 '고속도로'다 하여, 산이나 들을 가리지 않고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도로를 만들고는 자동차를 타고 싱싱 달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자는 한밤중에 먹이를 구하러 다니다가 자동차에 치어 죽는 야생 짐승들도 엄청 많아요.


맞아. 나도 차를 타고 다니면서 그런 참혹한 장면을 여러 번 봤단다.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겉 그림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겉 그림지식산업사
사람들이 자기네들만 편케 살겠다고 도로를 놓는 것까지야 저희네 야생동물이 막을 수는 없지만, 제발 저희 짐승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라도 조금 내주면 안 될까요? 이 사실만은 꼭 알아두셔야 해요. 야생동물이 없고 사람만 사는 세상은 마침내 사람도 살 수 없는 세상이 된답니다.

잘 알았다, 멧새들아. 사람들이 몇이나 내 말을 귀담아 듣겠냐마는 너희들의 말을 그대로 전하겠다.

고마워요, 박도 아저씨. 한두 사람이 전해 듣고 고개를 끄덕여도 좋아요. 차차로 그 말씀이 옳다면 들불처럼 옮겨지겠지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많지만 말이 너무 많으면 값어치가 떨어지니까 다음에 할게요. 이번에 올라가면 꼭 완치하고 내려오세요. 저희들도 아저씨가 하루 빨리 완쾌되기를 빌겠어요.

고맙다 멧새들아. 곧 다시 만나자구나. 안녕!

안녕히 다녀오세요. 박도 아저씨. 안녕!!!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연재해 오던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도서출판 지식산업사에서 단행본으로 막 펴냈습니다. 
 
- 책이름 :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 쪽수 : 295 쪽 (일부 칼러)
- 책값 : 9,500원

덧붙이는 글 그동안 연재해 오던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도서출판 지식산업사에서 단행본으로 막 펴냈습니다. 
 
- 책이름 :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 쪽수 : 295 쪽 (일부 칼러)
- 책값 :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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