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은 스스로 지키는 것입니다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94) 올 봄 교단에 서신 새내기 선생님에게

등록 2005.03.24 12:51수정 2005.03.2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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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란 어린 영혼을 물들이는 사람

안녕하세요, 새내기 선생님!

먼저 교단에 서신 것 축하드립니다. 특히 요즘은 ‘교사고시’라고 할 만큼 교단에 서기가 어렵다는데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교단에 서셨으니 참으로 대견하십니다.

이미 첫 봉급도 받아서 부모님이나 친지 어른에게 속옷도 사드리고 선물도 하면서 그동안 베풀어준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셨겠지요.

새내기 선생님에게 철쭉 꽃다발을 한아름 드립니다
새내기 선생님에게 철쭉 꽃다발을 한아름 드립니다박도
대학을 갓 나온 새내기 총각 선생님이나 처녀 선생님은 긴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버들강아지처럼 귀엽고 풋풋하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하였습니다.

새내기 선생님이 갓 입학한 병아리 같은 어린 영혼들을 가르치는 모습은 더 없이 거룩합니다. 그래서 많은 어린이들의 첫 장래 희망은 학교 선생님이라고 말하지요.

저도 초등학교 시절에 만난 새내기 선생님에게 반한 나머지 그때의 소망 탓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옆도 돌아보지 않고 교단에 서서 꼭 32년 8개월을 지내다가 지난해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교단에 서 있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막상 그곳을 떠나오니 학교 선생님이 이 사회에 미치는 힘이 무척 크고, 또 학교 선생님은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더욱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사’란 여느 직업과 달라서 바로 어린 영혼을 물들이는 사람이요, 교사의 가르침은 바로 장차 사회의 도덕성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아온 체험에 따르면, 사람은 사상, 이념 제도보다 더 중요하고, 앞으로의 세상도 사람만이 유일한 대안이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육 현장은 갈 데까지 가버린 난장판으로 추락 직전입니다.

참담한 교육 현장


어제 저녁의 한 TV 뉴스에서는 학교 현장의 비리를 보도하는데, 이례적으로 학교 이름까지 그대로 밝혔습니다. 아마도 언론사로서 확신할 수 있는 사건이기에, 다른 학교를 보호하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아래에 보도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학교 이름은 00고 처리).

"00고, 교사들이 시험문제 미리 가르쳐 주었다."

MBC가 확보한 서울 00고 비리사건의 검찰 수사기록에는 참고인 조사를 받은 한 교사는 당시 00고에 '특별과외'가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른바 '특별과외'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직전,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출제된 시험문제를 미리 가르쳐 주는 것 입니다.

검찰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교사들은 대가로 학부모들로부터 돈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비리에 교장과 교감, 교무부장 등 학교 최고위층이 직접 나섰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직접 과목 담당교사를 만나 '특별과외'를 부탁했고 과외를 받은 학생들의 부모는 육성회 임원과 재력 있는 이른바 유력 인사들인 것으로 돼 있습니다.

당시 교장인 윤 모씨는 이런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조사를 받은 다른 교사는 동료인 고 모 교사가 작년 1학기 중간고사 직전 자신이 출제한 시험문제를 받아갔다고 확인했습니다.

시험문제까지 빼내 유력 학부모들의 자제를 가르쳤다는 특별과외 의혹이 제기되면서 00고 비리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습니다.

검찰, 00고 '특별과외' 은폐 의혹

검찰이 특별과외가 이뤄졌다는 참고인들의 진술을 확보해 놓고도 수사를 하지 않아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검찰은 지난 1월 25일과 31일 두 명의 교사로부터 특별과외가 이뤄지고 있다는 진술을 확보해 놓고도 관련 교사들에 대해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 동부지검은 특별과외에 대해선 뚜렷한 물증이 없어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양심과 도덕성이 엄청 무딘 사회

이 보도를 접한 일반인도 참담한 심경이었는데, 그 학교 재학생이나 졸업생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 학교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학교로 대통령까지 배출한 이른바 명문 사학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비슷한 부정과 비리가 그 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또, 이른바 교육계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이와 비슷하다는 게 오늘 우리 교육계의 크나큰 비극입니다.

이런 일이 이번에 보도된 ‘00고’만의 문제라면 문제 해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 학교의 문제된 사람들을 교단에서 추방하면 되겠지요. 하지만 현재 우리 교육계을 뒤덮고 있는 공기가 치유하기 힘들 정도로 몹시 오염되었다는 사실과, 이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의 양심과 도덕성은 엄청 무디다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습니다.

지난번 총리 인준 파동이나 교육부총리 임명과정에서도 이런 단면이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이 분들도 얼음산의 한 모서리처럼 아주 재수 없게 드러난 것뿐입니다.

사실 이런 사건이 보도되어도 대부분 사람들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아니다”라고, “나는 아니다”라고 자기 최면에 걸려 있는 게 문제입니다. 사회 전체에 걸려 있는 이 도덕 불감증, 양심 불감증을 깨트리지 않고는 교육계의 부정과 비리, 나아가서 우리 사회 전체의 부정과 비리는 두고두고 고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린 새싹들은 우리의 희망

몇 년 전, 어느 고등학교에서 일입니다. 학년말 방학을 이용하여 전교직원이 해외연수를 떠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비용은 떳떳치 못한 돈이었습니다. 한 교사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시의원이나 구의원들이 예산을 전용해서 해외연수를 가면 게거품을 물며 비난하면서 왜 우리 선생님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느냐”고.

그 교사는 그 돈으로 도서관 도서구입비나 학생들의 정수시설에 쓰자고 절차를 밟아 교장에게 말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들은 교장의 답은 “선생님들이 해외연수를 하여 견문을 넓히는 것도 학생들을 위한 교육적인 일”이라는 궤변이었습니다.

대부분 교사들은 해외연수를 다녀왔습니다. 6개월 후 같은 중학교 교직원들이 같은 코스로 해외연수를 추진하다가 이를 알게 된 한 학부모가 참다못해 청와대, 검찰청, 언론사에 고발하려다가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차마 고발할 수 없어서 재단이사장에게 진정서를 보냈습니다.

재단으로부터 진정서를 건네받은 교장은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기는커녕 임시교직원회를 통하여 그 진정서를 자랑스럽게 낭독하는 해프닝을 벌이고는, 이는 내부 교사가 그 학부모에게 정보를 흘렸기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일장 훈계를 했습니다.

몇 해 뒤 그 교사는 조용히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가 깊이 깨달은 사실은 우리 사회의 양심이 무척 무뎌졌다는 것과 도덕불감증이 매우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의 말에 그래도 많은 동료 교사들이 동조해 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은 이런 일을 잘 주선하는 사람들이 나라로부터 훈장을 받으며 정년퇴직한다는 사실과 계속 이 나라 교육계의 지도자로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새내기 선생님, 첫 편지에 불쾌한 이야기만 늘어놓아서 부끄럽습니다. 제가 새내기 선생님에게 이런 글을 공개적으로 드리는 것은 아직은 기존 교육계의 풍토에 물들지 않는 분으로 오염된 교육계에 새바람을 일으킬 희망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새내기 선생님, 지금 우리 교육계는 천민자본주의가 아주 깊은 곳에 암세포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부 사학에서는 교사와 교수 채용에 학교발전기금을 받고 있으니 그렇게 채용된 교사나 교수는 본전을 뽑고자 비리를 저지르겠지요.

결국 그런 부패 고리는 부메랑처럼 더 큰 쇠뭉치로 이 사회를 두드려서 우리 교육을 황폐화시켰습니다. 그러자, 보다 못한 일부 능력 있는 학부모는 어려서부터 아이를 해외로 내보내는 기현상으로 ‘기러기 아빠’라는 새로운 낱말을 만들면서 또 다른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새내기 선생님, 교육이 살아야 나라의 장래가 밝습니다. 어린 새싹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들이 건강하게 자라야 나라가 튼튼합니다. 당신은 어린 새싹을 건강하게 키우는 위대한 교육자입니다.

제는 이 글을 올리기 전까지 무척 망설였습니다. 아무튼 저도 지난 30여 년간 교육현장에 있었으니 왜 흠이 없겠습니까?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일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새내기 선생님에게 진실을 말해 줘야 이 사회는 한 걸음 한 걸음 진보해 나간다는 소명감으로 감히 이 글을 올립니다.

한 원로 선배 작가(남정현 선생)가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작가가 양심을 말하지 않으면 누가 하느냐”고. 그래서 용기를 얻어서 이 글을 썼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미루어 짐작하시리라 믿고, 한 말씀만 남기면서 제 글 마무리 합니다.

“교권은 스스로 지키는 것입니다.”

당신은 선배보다 나은 교사가 되리라 믿습니다. 그래야 이 사회가 발전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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