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뜰에 활짝 핀 수양벚나무박도
다행히 구기동 동네 이발소는 옛날 분위기 그대로라서 좋았다. 워낙 오랜만에 찾은 탓인지 서로 몰라보았다.
이발이 시작되자 이발사는 내 발 다친 얘기를 꺼내면서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잠시 후 한 손님이 들어오자 그는 단골인 양, 그의 이야기로 옮아갔다.
식물인간의 생명 연장 논란
그는 간밤에 친구 아버지 빈소에서 날을 새우고 피로를 풀고자 찾아왔다고 한다. 그의 말을 기회로 자연스럽게 '죽음'이 화제의 초점이 되었다.
고인은 그저께 밤에 편히 잠들었는데 부인이 새벽녘에 흔들어보니 그새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잠자듯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다.
그러자 이발사도 나도 고인은 오복 중에 가장 큰 복을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며 부러워했다. 유언 한 마디 없는 게 아쉽다고 다른 손님 한 분이 이의를 제기했으나, 이발사는 평소 하던 말이 유언이지 뭐 별다른 게 있었겠냐고, 아무튼 편히 눈을 감은 것에 그것은 '옥의 티'도 아니라고 했다.
'오복(五福)'이란 첫째 장수를 원하는 수(壽), 둘째 부유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富), 셋째 일생동안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강녕(康寧), 넷째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자는 유호덕(攸好德), 다섯째 모든 소망과 봉사를 이룬 뒤 자기 집에서 일생을 편안히 마치기를 바라는 고종명(考終命)이다. - <서경> 홍범편
오복에 대한 정의는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그 풀이가 다르겠지만 삶을 마감하는 죽음의 복만은 나도 꼭 그 속에 넣고 싶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동서고금이 없나 보다.
간밤 뉴스에 미국 플로리다 주에 사는 테리 시아보라는 한 부인이 15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목숨을 이어왔는데 지켜보던 남편이 지친 나머지 주 법원에 안락사를 허용하라고 소송을 냈고 법원은 영양분을 공급하는 튜브 제거를 허용한다고 결정했다.
그러자 그동안 튜브 제거를 원했던 남편 마이클과 이를 반대했던 테리 시아보 친부모 사이에 법정 공방이 이어졌고 미 연방법원과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생명을 연장케 하는 등 이 문제가 온 미국을 들끓게 하는 모양이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람 있게 사느냐
이런 일은 결코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생활수준 향상과 의술의 발달로 사람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꼭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계속 경제 활동을 하면 그리 큰 문제가 없겠으나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내 언저리에도 한 분이 7년 동안 고칠 수 없는 병으로 고생하다가 끝내 돌아가셨다. 그동안 본인의 고생도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가족들의 수발과 경제적 손실은 엄청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