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하든 꼬부라지든 삐틀어지든"

목공예 체험학습장을 운영하는 2급장애인 임병주, 박미경부부

등록 2005.04.18 14:43수정 2005.04.1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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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에 솟대가 높이 솟아있다. 2급 장애인 임병주, 박미경 부부가 운영하는 목공예 체험장 안내판이다. ⓒ 서정일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여기 서로 사랑하면서 그리고 남에게 사랑을 나눠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낙안읍성 목공예 방을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2급 지체장애자 임병주, 박미경 부부. 파란하늘을 가르며 하늘높이 서 있는 솟대 그리고 제각각 표정을 갖고 삶을 얘기하는 장승들의 해학적인 풍경은 그들의 마음을 보는 듯하다.

임병주씨, 조각도와 함께 평생을 살았다. 한때는 서울에서 자개농 만드는 일에 전념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장승과 솟대 등 전통공예품들을 만들기 시작한 게 벌써 10년. 강산이 변하면서 각종 상장도 늘어나고 신지식인으로까지 선정되는 영광을 안는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곧바로 작업장에 나와 조각도를 만졌으니 외길인생을 산 셈이다. 주위 사람들은 타고난 손 재주꾼이라 말들을 하지만 숨은 노력이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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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예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는 부부가 모두 2급 장애인이기에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 돕고 있는 박승호씨, 장승하나를 가리키며 나무의 생김새가 다르다고 버리거나 차별하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 서정일

"반듯하든 꼬부라지든 삐틀어지든"

두 사람 모두 장애를 갖고 있기에 그들의 손과 발을 대신해 주고 있는 박미경씨의 동생 박승호씨, 매형의 손재주에 탄복을 한다면서 나무의 모양새에 따라 다양하게 작품을 만들어내는 임씨의 독창성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며 만들어 놓은 장승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세심하게 설명해 준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자연을 거스르는 게 없다. 곧고 바른 나무는 기품이 있고 위엄 있는 장승으로, 휘어진 나무는 해학적인 장승으로 승화시킨다. 곁가지 또한 꼬마 장승을 만들거나 솟대로 이용하는데 쓸모없는 나무도 임씨의 손을 거치면 모두 훌륭한 작품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동헌에도 있고 프랑스에도 있습니다"

손재주가 좋기에 낙안읍성 곳곳에 임씨의 목공예 작품은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특히 얼마 전 한불 120주년 기념으로 프랑스 랑트에 순천동산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한편에 임씨의 장승도 세워진다면서 비록 하나의 목 공예품 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장승이란 물건은 다르다면서 그것은 우리나라의 '혼'과도 같아 프랑스에 한국인의 정신을 심는다는 게 여간 뿌듯하지 않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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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만든 장승앞에서 사진촬영에 협조를 해 주는 임병주씨, 언어장애를 갖고 있어 한마디 말을 나눌 수는 없었지만 눈으로 마음으로 충분한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 서정일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비록 언어 구사가 자유스럽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박미경씨는 또박 또박 얘기를 한다. 그녀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이라도 하는 듯 '아이들'이라는 단어를 몇 번씩 사용한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장애인으로 한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일반인들은 모른다는 말을 덧붙일 땐 눈에 핏기가 어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나은 편이라면서 생각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남편을 생각할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면서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을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도대체 장애란 뭘까? 그리고 우리사회에서는 그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원래 이 체험 장이 길가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구석진 곳으로 밀려났지요."라고 말하는 박씨는 장애인의 날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쏟아져 나오는 각종 행사와 정책들이 그저 공허하게만 느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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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때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작업장에서 보낸다는 임병주씨. 곁가지들을 모아 자그마한 장승을 만들고 있다. ⓒ 서정일

4월 20일은 잊고 지나치기 쉬운 장애인의 날이다. 나무의 생김새에 맞게 잘 다듬어 아름다운 장승으로 승화시키는 낙안읍성내 목공예체험장의 주인 임병주, 박미경 부부. 날 때부터 장애를 안고 살아가지만 얼마나 마음에 사무쳤으면 나무를 다듬으면서도 별나게 생겼다고 버리거나 차별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독특한 부분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아이들이 그것을 만져보고 느껴보고 색깔 또한 자유롭게 칠하도록 한다.

"반듯하든 꼬부라지든 삐틀어지든"이란 말을 되뇌면서 임씨가 만든 장승 하나를 추켜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볼에 대보니 비록 나무지만 체온을 갖고 있는 듯 따뜻하게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낙안읍성
http://www.nagan.or.kr

덧붙이는 글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낙안읍성
http://www.nag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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