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하모 꽃게 아입니꺼"

<음식사냥 맛사냥 15> 쫀득쫀득 혀끝에 착착 감기는 '꽃게찜'

등록 2005.04.18 16:15수정 2005.04.2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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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아 쫀득쫀득한 감칠맛 끝내주는 꽃게찜 ⓒ 이종찬


노오란 꽃을 매단 봄동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사월. 남녘바다가 꼭꼭 숨겨놓은 보석 같은 구산 앞바다로 가는 길은 마냥 즐겁다. 쪽빛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이리저리 휘어지는 산길.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연분홍 진달래와 하얀 꽃잎을 함박눈처럼 휘날리고 있는 벚나무.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손만 내밀면 금세 한 손에 잡힐 것만 같은 섬과 섬. 하늘이 흘리는 핏방울처럼 붉은 꽃송이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동백. 노오란 꽃술을 헤집고 연초록 잎사귀를 뾰쫌히 내밀고 있는 개나리. 물 빠진 갯벌에 호미를 들고 앉아 바지락를 캐고 있는 아낙네들. 깁다 만 그물 옆에 쌓인 스티로폼에 다닥다닥 붙은 홍합과 굴.

속살 같은 갯벌을 활짝 펼쳐놓고 저만치 물러난 남녘바다. 언뜻 언뜻 내비치는 수평선에 섬을 걸어둔 채 찬란한 윤슬을 톡톡 터뜨리고 있는 남녘의 봄바다. 언제 바라보아도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바다. 그 고운 바다가 코앞에 바라다 보이는 작은 어촌 한 귀퉁이에 '꽃게찜과 찹쌀 동동주'란 간판이 걸려 있다.

이 집이 바로 마산에서 꽃게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게찜 전문점 '보리수'다. 차를 10여 대 주차할 수 있는 이 집의 널찍한 앞마당에는 목련과 동백, 봄동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다. 빠알간 동백꽃이 뚝뚝 떨어진 마당에 차를 세우고 보리수 들머리로 다가서자 미역이 휘감긴 스티로폼에 다닥다닥 붙은 홍합과 굴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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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빠진 갯벌에서는 바지락을 캐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바쁘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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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이 휘감긴 스티로폼에 다닥다닥 들러붙은 홍합과 굴 ⓒ 이종찬

"그기에 붙은 굴 하나 따 드리까예? 오늘 아침에 갯벌에서 금방 건져낸 거라서 굴이 싱싱하고 맛이 참 좋을 거라예."
"그래도 돼요?"
"이게 다 사람이 먹기 위해서 힘들게 건져놓은 거지, 무슨 전시용입니꺼? 쪼매 기다리이소. 굴은 따서 물에 살짝 씻어 묵어야지, 그냥 묵으모(먹으모) 짜서 못 먹어예."


이 곳에서 8년째 꽃게찜 조리를 하고 있다는 주인 박경숙(54)씨.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굴을 서너 개 깐 박씨가 건네주는 생굴을 입에 넣자 이내 입안이 향긋해지면서 바다를 통째 씹는 것만 같다. 아니, 몇 번 씹기도 전에 그냥 목구멍을 타고 꿀꺽 삼켜진다. 생굴이 사라진 입 속에는 혀끝을 감도는 달착지근한 뒷맛이 향기롭다.

생굴을 몇 개 더 까먹고 식당 안으로 들어서며 박씨에게 꽃게찜과 찹쌀 동동주를 시키자 '꽃게찜은 오래 기다려야 합니더'하며 주방으로 사라진다. 잠시 주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박씨가 찹쌀 동동주 한 주전자와 파전, 맛깔스럽게 보이는 김장김치, 홍합조림을 순서대로 상 위에 올린다.

찹쌀 동동주로 마른 목을 축이고 김장김치를 한 젓갈 입에 물자 잘 익은 김장김치가 혀 끝에 착착 달라붙는다. 주방에서 열심히 꽃게찜을 만들고 있는 박씨에게 이 집 김치맛의 비결이 뭐냐고 묻자 그저 남들이 쓰는 양념에 무친 김장김치를 땅 속에 파묻었다 꺼내 먹는 것뿐이라며 손님이 원하면 팔기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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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찜 전문점 '보리수'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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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좋은 홍합조림. ⓒ 이종찬

찹쌀 동동주와 함께 집어먹는 홍합조림도 쫄깃쫄깃 씹히는 게 맛이 아주 특별하다. 이 집 홍합조림은 구산 앞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홍합을 햇살에 잘 말렸다가 게장처럼 간장에 오래 조려 만든다고 한다. 이 집 홍합조림은 크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홍합을 사용하지 않고 엄지손가락만한 어린 홍합을 쓰는 것이 맛의 비결.

"봄철 하모 꽃게 아입니꺼. 특히 요즈음에는 꽃게가 속살이 꽉 차 있고 게딱지 속에 노오란 알까지 들어 있어 맛이 정말 끝내주지예."
"꽃게는 어디서 가져옵니까? 이곳 앞바다에서 꽃게가 잡히는 것은 아닐 테고."
"그야 당연히 서해안에서 잡히는 꽃게지예. 요즈음 이른 새벽 마산 어시장에 나가모 서해안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꽃게가 많아예."


찹쌀 동동주를 마시며 1시간쯤 기다리자 드디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푸짐한 꽃게찜(3~4인분 4만원)이 상 한가운데 턱 놓인다. 아까부터 꽃게 자랑에 입에 침이 마를 정도인 박씨는 꽃게의 살은 이렇게 발라먹어야 한다며 칼집이 들어간 꽃게 다리를 들고 옆으로 슬쩍 비튼다. 이내 하얗게 삐져나오는 속살.

군침이 절로 돈다. 박씨가 건네주는 꽃게의 속살을 입에 물자 혀 끝에 착착 감기는 게 씹으면 씹을수록 쫀득쫀득한 감칠맛이 끝내준다. 토막 낸 꽃게 다리 사이 사이에도 손님이 속살을 쉬이 빼 먹을 수 있도록 칼집을 넣어놓았다. 다리가 길게 달린 꽃게 몸통을 하나 들고 속살과 함께 먹는 숙주나물도 매콤하면서 뒷맛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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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꽃게찜의 특징은 숙주나물과 방아잎을 쓰는 데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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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잡히는 꽃게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알이 배어 있어 맛이 더욱 좋다. ⓒ 이종찬

하얀 쌀밥 위에 하얀 꽃게 속살 한 점 올려놓고 한 입 가득. 하얀 쌀밥을 먼저 입에 떠넣고 꽃게 다리를 입에 문 채 쪽쪽 소리를 내며 꽃게 속살을 빼먹는 맛도 정말 기막히다. 게다가 꽃게살을 빼먹은 꽃게 뚜껑에 밥과 홍합조림, 숙주나물을 비벼 한입 넣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 뒤 박씨에게 꽃게찜에 웬 숙주나물이냐고 묻자 꽃게찜에는 콩나물보다 숙주나물을 넣어야 맛이 좋단다. 그리고 꽃게의 비린 맛을 없애기 위해 청주 몇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보다 방아풀을 넣어야 꽃게 특유의 깊은 맛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꽃게찜을 만들 때 꽃게를 삶은 물에 찹쌀가루를 풀고 미더덕과 봄미나리를 넣는 것은 기본.

"이곳 마산에서는 꽃게찜을 만들 때 대부분 콩나물을 쓰지예. 아마도 숙주나물과 방아풀을 넣어 꽃게찜을 만드는 집은 우리 집 하나뿐일 거라예. 아귀찜이나 미더덕찜을 만들 때는 콩나물이 좋지만 꽃게찜에는 콩나물보다 숙주나물이 궁합이 딱 맞아예. 하여튼 우리 집에서 꽃게찜을 한번 먹어본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찾아오데예."

꽃게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이 적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먹어도 결코 살이 찌지 않는 음식이라고 말하는 박씨. 박씨는 "꽃게는 봄과 가을에 주로 잡지만 가을 꽃게는 산란을 해버린 때여서 맛이 별로"라고 귀띔한다. 그리고 숫꽃게보다 암꽃게가 훨씬 맛도 좋고 값도 거의 2배 정도 비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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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이 적어 다이어트에 좋은 식품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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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이 꽉 찬 꽃게, 보기에도 먹음직스럽지 않습니까. ⓒ 이종찬

이 집 꽃게찜에는 암꽃게만 쓴다는 박씨. 값이 턱없이 싼 것은 거의 중국산이라고 말하는 박씨는 꽃게에 대한 지식 또한 많다. 박씨는 "요즈음 같은 봄철에 잡히는 꽃게는 단백질과 아미노산, 키토산이 풍부해 비만과 고혈압에 좋은 것은 물론 뼈를 단단하게 하고 스태미너까지 강하게 해준다"며 얼굴을 살짝 붉힌다.

봄을 맞아 꽃게가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맛이 가장 좋은 때다. 이러한 때, 가까운 시장에 나가 서해안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꽃게를 사서 꽃게찜을 한번 만들어보자. 꽃게찜을 만들다가 꽃게가 두어 마리 남으면 냄비에 된장을 풀고 꽃게 된장찌개도 한번 끓여보자. 그렇게 조리한 꽃게 다리를 입에 무는 순간 온 가족이 먹는 재미에 포옥 빠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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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식당 앞마당에 피어난 동백의 꽃빛이 너무도 곱다.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마산-경남대-수정-구산-구복 가는 길-군령마을 -보리수(055-222-2466)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마산-경남대-수정-구산-구복 가는 길-군령마을 -보리수(055-222-2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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