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신부 울리면 안 돼요, 잘 살아요"

자진출국 약속하고 결혼식 올린 이주노동자에게

등록 2005.05.03 19:34수정 2005.05.0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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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지금 공항인데요. 이제 베트남 가요."
"아! 벌써 가는 거예요?"
"네, 비행기 표가 오늘밖에 없어요."
"그래요. 홍삼 옆에 있어요? 다시는 신부 울리면 안돼요. 잘 살아요. 잘 가요."
"네…."

출근길에 베트남인 황반민(이하 민)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지난 4월 24일(일) 산본의 한 뷔페식당에서 결혼한 새신랑입니다. 민은 결혼식 당일 자신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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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끝나고 폭죽 ⓒ 고기복

그가 그렇게 말했던 것은 결혼식 바로 전날까지 화성에 있는 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되어 강제출국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혼식 날짜를 잡고, 결혼준비를 같이 하던 민이 강제출국당할 지경에 이르자, 신부가 될 홍삼은 눈물만 흘릴 뿐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더욱이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베트남인이 출입국 단속에 걸리자 민을 비롯한 동향 친구들의 회사와 거주지를 출입국직원들에게 말하여 단속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다시 단속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결혼식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 건, 출입국 직원들이 단속에 걸린 이에게 '밀고를 강요'하는 반인권적인 방법을 동원해 단속에 나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가인권위에서 인권침해 여부가 있는지 조사에 들어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의 조사에 희망을 걸고 있던 민은 강제출국 되더라도 결혼은 꼭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결혼예정 사실을 말할 때, 불법체류자인 예비신부의 이름 대신, 거짓으로 합법체류자의 이름을 댄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조사를 진행했던 국가인권위 담당자나 법무부 체류심사과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가 정말 얄미웠습니다. 조사 사실을 알고 있던 저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만 말하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거짓 답변을 한 그로 인해 맥이 탁 풀리는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이틀 전 민의 결혼 사실에 대해 알고 있던 법무부에서 '결혼은 인륜지대사인데, 불법체류자라 할지라도 신원보증만 된다면 결혼식은 하도록 조치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결국 결혼식 하루 전날인 23일에, 5월 6일 이전에 자진 출국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민은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법무부 직원이 민을 데리고 나왔을 때, 그는 기름때가 잔뜩 묻은 작업복 차림이었는데, 여전히 풀려난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저는 "결혼식에 신부가 둘이겠네?"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그러자 민은 일을 어렵게 만들었던 자신의 실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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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보호소에서 나오던 날 ⓒ 고기복

법무부 직원이 떠난 후, 두 사람과 함께 가까운 병원에서 몸무게를 잴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울에 올라선 민을 보며 예비신부가 하는 말이, "7kg가 빠졌어요. 옛날에 65kg였어요"라고 말을 하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홍삼도 5kg가 빠졌다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웃겨 보려고 "다이어트 참 수월하게 하네"라고 말을 하면서도 5일만에 그렇게 살이 빠지기까지 마음이나 몸이 편치 못했을 두 사람을 보며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많은 동료 베트남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결혼식 당일, 결혼식장에서 만난 민과 홍삼은 어제의 꾀죄죄한 몰골은 전혀 없고, 행복을 설계하는 여느 신랑신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된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신랑신부에게 신혼여행은 어떻게 할 건지 물어 보았습니다. 민은 "컨테이너"라고 짧게 답을 했습니다. 사실 5월 6일까지 일시적으로 체류가 허락된 민에게 신혼여행은 과분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허가된 체류시한을 사흘이나 앞두고 떠나는 민을 보며, 신원보증을 섰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홀가분하면서도, 결혼한 지 열흘도 안 돼 헤어져야 하는 새신랑신부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 저의 심정을 이해하는지 민은 묻지도 않은 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홍삼, 곧 베트남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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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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