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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하루 해가 민둥머리를 내밀어 수평선 너머를 온통 붉게 물들였다. 선장이 배의 고물에서 일출을 바라봤다. 뭍에서 지낸 기간보다 더 많은 세월을 바다에서 보낸 선장에게도 물과 불이 섞이는 아침 해돋이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아…."
선장은 부신 눈을 가늘게 뜨고 그저 옅은 탄성을 내뱉었다. 마포 송 여각네 선주노릇을 하다 개화군이 된지도 벌써 2년, 허울로 직급을 받고 병조선의 선장 노릇을 하고 있지만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 가늠할 수 없는 처지. 그런 자신이 하루살이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예전엔 조운이나 화물 운송에 종사하며 개화군을 겸했었다.
'잘 되겠지….'
작년 이맘때 해도에 들어가 개화군 수군에 편입된 이래 일체의 사적인 생활을 잊고 살아왔다. 갑갑한 마음이 들다가도 이렇게 솟는 해를 볼 때면 막연한 희망이 솟는 것이었다.
'이쯤이 얘기했던 장소가 맞는 듯 한데?'
백령도와 옹진반도를 사이를 질러 나온지도 한 식경. 백령도 서향 100리가 약속 장소라 하니 대략 이쯤일 터였다.
"선장님! 자건향(子乾向:북북서)에 배입니다요!"
선장이 이런 생각을 하는데 이물(뱃머리)쪽에서 앞을 살피던 견시수 수돌이가 외쳤다.
"11시 방향 말인가?"
"아,…예. 11시 방향…."
"어디…."
어느새 뱃전으로 옮겨온 선장이 천리경을 뺏어 전방을 살폈다.
"흠…, 당선(唐船)이 맞는 듯 한데…."
이십 리 길은 훌쩍 넘는 거리라 자세한 형상은 알 수 없어도 조선의 배가 아닌 것 같이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가봐야 알 듯 합니다요."
"수돌아, 가서 개성 행수와 권 대장님을 모셔오거라!"
"예!"
수돌이가 부리나케 선실로 내려갔다.
"키 고정하고 포수들을 준비시키게! 연기를 올릴 준비도 하고."
선장이 키잡이와 돛대지기에게 일렀다. 상갑판이 분주해졌다.
이제 붉은 티를 벗기 시작한 해를 등지고 배가 힘차게 나아갔다.
"배가 보이는가?"
아직 잠이 덜 깬 권기범이 눈을 부비며 뱃머리로 나왔다. 그의 부하들이 무장을 갖추며 뒤따랐고 개성 행수의 일행도 뒤이어 도착했다.
"멀어서 형체를 분간하긴 어려우나 조선배는 아닌 듯합니다요. 연안을 움직이는 조선배로 이렇게 먼 바다까지 나올리는 없을 테고 백령도나 인근 섬의 어선이라기엔 너무 큽죠."
선장이 설명했다.
"어디 한번 보십시다."
개성 상단의 행수 서문길이 천리경을 집어 들며 청했다.
"음…, 평소 거래하던 당선과는 다르나 당선은 당선입니다."
서문길이 눈에서 천리경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간혹 배를 바꿔 나오기도 하오? 조선 연안에 자주 출몰한다는 흔한 청국의 밀무역선은 아니오?"
권기범이 의문을 제기했다.
"글쎄요. 연기를 올려보면 무언가 답이 있겠지요. 물론 만만의 준비는 해야 하고요. 그럼 선장님 연기를 올려 주십시오."
행수 서문길이 미리 약조된 연기신호를 부탁했다. 미리 준비된 청동화로에 불씨를 넣으니 송진과 섶이 타올랐다. 안에 있는 마른 쇠똥과 솔잎이 타오르며 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배의 속도가 결코 느리지 않음에도 연기가 수직에 가깝게 오르는 까닭은 바로 쇠똥 때문이었다. 모분(毛糞)이라 하여 이리나 여우의 똥을 넣으면 연기가 흩어지지 않고 곧게 오르는 속성이 있어 봉수대에 비치하는 품목인데 조선에선 구하기가 힘들어 대개 쇠똥이나 말똥을 쓴다. 또 솔잎이나 담배 잎은 연기를 농후하게 하는 특성이 있었다.
피어오르는 연기 화로를 주기적으로 가죽부대로 막았다 열었다 하니 연기가 뭉게 뭉게 피어 올랐다.
"저, 저기도 연깁니다! 끊기는 주기가 우리와 같습니다."
아직 천리경으로 수평선께를 살피던 서문길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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