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닭죽 한 그릇
인조는 무기고였던 곳에 온조왕의 사당에 제단을 차리고 흐느끼는 소리로 제문을 읽어 나갔다. 예조판서 김상헌이 일전의 제사가 미진하니 다시 제사를 지낼 것을 주청한데 따른 일이었다.
“…삼가 조선국왕 이종(인조의 본 이름)이 아뢰옵니다. 나라가 병란의 화를 입어 궁핍한 산성에 의지하여 있으니 굽어보시어 대왕의 은덕으로 국란을 극복할 힘을 주소서.”
멀리서는 장판수가 시루떡을 잡고 울분을 삭히고 있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해야 하네? 밖에서는 오랑캐들에게 당하고 안에서는 저런 벼슬아치들에게 당하고 말이네! 좋아! 저희 놈들이 우리 아니면 어찌 되는가 두고 보갔어!”
말인 즉 그러했지만 하급 무관에 불과한 장판수가 병사들에게 태업을 지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김류, 홍서봉등의 재상들은 척화를 주장한 적이 언제냐는 듯 노골적으로 항복할 것을 주장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김상헌 등의 척화대신들은 펄펄 뛰며 반대했다.
“내 차라리 목숨을 내어놓을지언정 오랑캐들에게 항복을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김류와 홍서봉은 인조에게 청해 정명수, 마부대, 용골대에게 뇌물까지 바치는 일까지 행하며, 좋은 모양새로 항복을 할 방안만을 찾을 뿐이었다. 원군은 고사하고 양식마저 떨어져 가는 남한산성에서 더 이상 희망이란 없어 보였다.
“장 초관 게 있소?”
옷은 풀어헤친 채 거적때기를 덮고 구석에 누워 잠든 장판수는 자신을 찾는 소리에 몸을 떨며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섰다. 홧김에 부실한 식사조차 하지 않은데다가 정월의 찬바람은 장판수의 모습을 더욱 초췌하게 만들고 있었다.
“누구래?”
장판수가 얼굴을 찡그리며 보니 긴 팔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자신의 뒤를 계속 밟는 것이 미워 한기원과 시루떡을 시켜 똥통 속에 쳐 넣은 내관이었다.
“그때 바닥이 생각보다 깊지 않아 그리 깊숙이 빠지진 않았소이다.”
장판수는 모른 척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무슨 소린지 원.”
“내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어 왔소이다.”
장판수는 대꾸도 않은 채 다시 누워서 거적때기를 덮으려 했지만 내관은 발로 이를 밟고서는 내어주지 않았다. 장판수는 버럭 화를 버럭 내며 일어서려 했지만 이번에는 내관의 발이 순식간에 위치를 바꾸어 장판수의 가슴을 걷어찬 후 밟아 버렸다.
“난 어명을 받들고 일을 하는 중이오. 무례한 행동을 계속하면 그냥 있지 않겠소.”
“이, 이 불알도 없는 자식이….”
장판수는 일어서려 버둥거렸지만 내관의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곳에 교서관에 있던 무수리가 와 있어 행궁의 잔심부름을 시키기 위해 데려갈 것이오. 그 무수리가 뭔가 다른 얘기를 한 적이 없소?”
“없어, 아니 있어도 말 안한다. 이 망할….”
내시는 장판수의 가슴을 밟은 발을 주욱 올려 목을 밟았다. 장판수는 얼굴이 붉어진 채 목이 죄어 캑캑거렸다.
“정말?”
장판수는 대답대신에 온 힘을 쥐어짜 가래침을 내받았고 이는 내관의 얼굴에 정통으로 붙어 버렸다. 화가 난 내관이 발에 더욱 힘을 주려는 찰나 뒤에서 병사들이 이를 보고 놀라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오?”
내관은 발을 내려놓은 뒤 놀란 병사들을 사이를 헤치고 나가면서 숨을 헐떡이는 장판수에게 소리쳤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자넨 결코 무사하지 못할 걸세!”
장판수도 지지 않겠다는 투로 악을 쓰며 소리쳤다.
“마음대로 하라우! 내 결단코 이번일은 도로 갚아 주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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