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횡성 간 시내버스박도
미루나무 가로수가 이열종대로 쭉 뻗은 신작로를 시골 완행버스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시골완행 버스는 길손이 갓길에서 손만 들면 아무 데서나 세워준다. 버스 안에는 언제나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다. 좌석 한두 곳은 스프링이 튀어나와서 바지를 찢기도 한다.
그 시골버스를 타고서 장에 간 어머니도 돌아오고, 군에 간 오빠도 휴가를 받아 돌아왔다. 어머니 장보따리에는 꽃신도, 치마저고리 감도, 고등어자반도, 구리무도 들어 있었다. 휴가 온 오빠의 가방에는 오빠가 어린 조카나 아우에게 주려고 아껴둔 건빵도 들어 있었다.
이 버스에는 사람만 타는 게 아니었다. 장날이면 마당새(닭)도 강아지도 타고, 마음씨 좋은 기사를 만나면 돼지새끼도 새끼줄에 묶인 채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장으로 가는 버스에는 곡식자루와 푸성귀뿐 아니라 계란꾸러미에다 왕골돗자리, 새끼타래 등 온갖 수공예품도 다 실려 나갔다.
해질 무렵 돌아오는 버스에는 장에 있던 물건은 다 실려 있었다. 지난날 시골완행버스는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시골사람들의 애환을 실어 날랐다.
이나마 버스라도 들어가는 마을은 제법 큰 마을이었다. 그렇지 못한 산동네는 장날이면 새벽밥을 먹고 나섰다. 그래서 장날 아침녘이면 골마다 길마다 흰옷 입은 사람으로 줄을 이었다.
차츰 길이 포장되고 자동차문화가 발달하자 웬만한 시골 산촌마을에도 하루에 한두 차례씩 버스가 들어왔다. 그러자 장에 가거나 면사무소에 갈 때 걸어가는 사람이 부쩍 줄어들었다. 대부분 시간 맞춰 버스를 타고 다니거나 하다못해 경운기라도 타고 다녔다.
교통의 발달은 사람들을 편케 하였지만 다른 면에서는 넉넉했던 시골 인심을 사라지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지난날에는 푸성귀를 장날에만 내다팔았다.
그래서 장날이 아닌 날에 딴 오이나 호박, 가지 등 푸성귀는 이웃 간에 나눠먹거나 서로 물물교환을 하였는데, 이제는 교통의 발달로 무시로 도시로 나가서 팔 수 있게 되니 한 푼이라도 현금화하는 게 생활의 한 패턴이 되고 말았다. 이웃 간 오고가던 거래가 점차 뜸해지자 자연히 인정도 메말라 갔다.
대중교통의 위기
여태 운전면허증이 없는 나는 안흥으로 내려온 뒤 자주 시골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제 강원도 산골 마을에도 흙먼지를 뽀얗게 날리면서 달리는 시골버스는 거의 없다. 웬만한 산마을에 이르는 오솔길조차도 대부분 포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