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칠하였다는 황금빛 화실 지붕박도
- 가장 즐겨 그리는 화제(畵題)는 무엇입니까?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입니다. 곧 현실과 비현실, 그리고 눈이 있기에 보지 못하는 세계를 그리고자 합니다. 낮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밤의 세계와 같은 것입니다.”
- ‘예술’이란 무엇입니까?
“‘삶’, 그 자체입니다. 삶의 사명감이라고 할까, 삶의 방정식이라고 할까요. 제 스승이신 김옥진 선생님께서는 '예술은 대상의 모방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물의 정기를 빼 담은 신성(神聖)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박 화백은 원주에서 살다가 좀 더 넓은 공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 황산마을로 내려 왔다. 막상 이 마을에서 살고 보니까 공교롭게도 당신이 태어난 해남의 고향마을과 흡사한 점이 많다고 했다.
마을이름이 ‘황산마을’로 똑같고, 고향에도 이곳에도 미륵불과 미륵산이 있으며, 고향에는 연(蓮) 방죽이 있는데. 이곳에도 연(蓮)을 뜻하는 하정(荷亭, 박 화백의 호)이 있다고 하면서 싱긋 웃었다.
- 예술가에게는 평생을 이끌어주는 분이 있다는데, 박 화백은 어느 분입니까?
"바로 제 어머니입니다. 돌아가시면서도 태몽이야기를 하시면서 제가 잘 되라고 비셨어요."
어머니를 화제로 한 그림이 두 점 있는데, 한 점은 표구상에 가 있으나 다른 한 점은 화실에 있다기에 거기로 가서 잠시 감상했다. 화제가 ‘어머니의 강’이었다.
마라톤으로 시련 극복
- 청소년 시기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마라톤을 하였습니다. 마라톤을 하면 심장은 뛰지만 머리는 맑아지고 정신 통일이 되더군요. 광주 역에서 송정리 역까지, 산수 오거리에서 무등산 산장까지가 저의 단골 코스였습니다.”
- 그림으로 생계가 됩니까?
그는 직설적인 대답 대신에 인문과학(문학 철학 미술 등)이 외면당하는 현실을 아파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문화민족입니다. 국악 특히 판소리 하나만 봐도 보통 뛰어난 예술이 아닙니다. 서양이 자랑하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우리 나라의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국보 제78호, 제83호)'과 견주어 보면 게임이 안 됩니다.
이런 위대한 문화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현대에 와서 물질에 너무 얽매여 있어요. 물질은 수단이어야 하는데, 그만 목적이 돼 버린 듯해요. 사람들이 진리나 행복을 안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밖에서 찾으려고만 하니까 사회에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가 횡행하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