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총성이 이어졌다.
'탕, 타다다탕'
선실 총안구에 대기하고 있던 흑호대원들이 방포한 것이었다.
"갈고리 줄을 끊어! 전속 이탈! 배를 놈들의 후미로 붙여라!"
권기범이 선원들에게 외쳤다.
선원들과 흑호대원들이 황급히 갈고리 줄을 끊었다. 줄 셋이 끊기자 권기범 네의 병조선과 청국의 황당선 사이에 간격이 생겼다. 황단선의 측면에 두 개의 포구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았다. 검은 빛의 포 두 문이 쑥 선체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격군장! 노를 내려! 뒤로 빼라, 뒤로!"
선장이 정신없이 고함치며 선실로 내려갔다.
'탕, 타다다탕'
노가 내려지며 또 한 차례 일제히 발사되는 총성이 들렸다. 병조선 선실 총안구로부터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열려진 포구문을 향해 발사되었는지, 황당선의 포는 머리만 내민 채 아직 발사되지 않고 있었다. 흑호대원들이 갑판 난간 위에서 총을 겨누었으나 포구문 안으로 총알이 들어갈 만한 각이 나오질 않았다. 선실 안 총안구에서나 높이가 맞을 위치였다.
대여섯의 흑호대원이 우르르 선실로 뛰어 내려갔다. 그 중에 산총을 든 자도 둘이나 끼어 있었다.
'타앙-'
누군가 금세 장전을 마쳤는지 다시 한 발의 총성이 길게 울렸다. 아직 흑호대원들이 미처 도달하지 않았을 시간이었다.
포구문을 통해 황당선 포구문 안 쪽에서 시끌한 소리가 새어나오는 걸 보니 누가 맞기는 맞은 모양이었다. 간극을 노린 침착한 방포. 분명 동이의 솜씨일 거라 기범은 생각했다.
'펑'
'펑'
황당선 측면에 뚫린 두 개의 포구문을 향해 소포가 불을 뿜었다. 유산탄이 송판을 뚫고 때리며 바로 눈 앞에서 작렬했다. 그러나 사람 허리가 넘는 높이까지 위로 올라 위아래 각도와 좌우 방향을 사람의 손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게 한 포가(砲架)였으나 이 거리에서는 포구문 쪽으로 사각이 나오질 않았다. 포구문 위쪽의 삼판(목조선의 측면, 뱃전)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는지 저 쪽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노가 내려지고 병조선이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황당선에서도 노가 바삐 움직였다. 병조선은 포에 노출되지 않는 황당선의 고물 쪽으로 붙었고 황당선은 황당선대로 병조선을 조준하기 위해 몸을 틀었다.
'쾅'
병조선의 이물이 황당선의 측면을 다 벗어나지 못했을 무렵 황당선에서 포를 발사했다.
"이런!"
병조선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이 외마디 신음을 뱉었다.
그러나 요란한 소리에 비해 화연이 적었고 이쪽 배에 느껴지는 충격도 미미했다. 다행히도 뱃머리인 이물칸은 화물을 선적하는 곳이었으므로 관통되었다 해도 인명의 손실은 없었을 것이었다.
"나으리, 저 쪽은 기껏해야 불랑기(佛狼機)이거나 호준포(虎準砲)를 싣고 있는 모양입니다요."
권기범을 향해 이물 쪽의 소포 사수가 외쳤다. 꼭 권기범에게 알리려는 것보다는 배에 있는 사람들이 안도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하기 위한 배려인 것 같았다.
권기범도 안심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호준포는 두 자가 안 되는 길이에 구경이 한 치 닷 푼에 불과한 소구경 화포다. 여섯 냥(225g)의 화약을 넣고 무게 두 돈(7.5g)짜리 납탄 70여개를 쏘거나 철환 30여개를 넣어 쏜다. 하나의 납 탄환을 장전해 쏠 수도 있으나 위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또 불랑기 포라 하여도 구경이 작은 3호 이하의 것만 선재하였을 것이니 기껏해야 3자 이내의 길이에 구경이 두 치를 넘지 않을 것이었다. 그 정도라면 여남은 발 이상 맞아 줘도 배에 구멍이나 몇 뚫릴까 파선의 지경까지 가지는 않을 터였다. 문제는 조총과 다르게 삼판을 부수며 들어오는 관통력에 사람이 상할 수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겁먹을 것 없다! 저걸로는 우리 배에 생채기 하나 못 낸다. 보총수들은 자세를 낮추고 황당선의 포구문과 노창(노젓는 자리)을 조준하라. 소포는 유산탄을 고폭탄으로 바꾸어 방포하라!"
권기범이 독려했다. 어느 새 두 배는 다시 이십여 보 거리를 띄우며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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