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77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5.25 21:16수정 2005.05.2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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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놈들이 돌진해 온닷! 모두 꽉 잡아!"

절규하던 선원이 목청껏 경고했다.


[쿵-우드드득……]

"아악!"
"아구구구…."

배가 뒤집힐 것 같은 강한 충격과 뱃전 널판 뜯기는 소리가 동시에 전해졌다. 선창 안의 선원들과 능노꾼들이 튕겨져 나뒹굴었다. 병조선이 직접 들이받은 부위의 능노꾼은 노에 튕겨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뱃전이 뜯겨 파고든 널판에 옆구리를 찔린 선원도 있었다. 얇은 널판을 여러 개 덧대 만든 황당선은 통짜 송판을 엇지게 댄 병조선을 당해내지 못하였다.

"끙… 어서, 어서 일어나. 놈들이 들이닥칠 게다."

후안이 선창 구석에 쑤셔 박힌 채 겨우 몸을 추스르며 말했다.
넘어져 있던 씨아티엔도 몸을 추슬렀다. 일어서는 그의 오른손엔 박도가 쥐여 있었다.


"거우샹, 뭐해 어서 창을 잡아!"

씨아티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몇 사람은 발 빠르게 칼과 창을 쥐고 이물과 고물의 갑판 출구 밑으로 흩어졌다.


"갑판 밖으론 나가지 마라! 들어올 때를 노렸다가 치고 나간다. 여차하면 저 배를 빼앗아도 좋고! 자 힘내라!"

부두목 후안이 권총을 치켜들고 외쳤다. 여기저기서 무기를 들고 선창의 구석과 이물 칸, 고물 칸 등으로 스며들었다. 총을 쥔 자들은 장전을 마치고 선창 통로에서 갑판 출구를 겨냥하고 기다렸다.

비록 최신식의 구리 뇌관식 총은 아니더라도 영국 보병이 1840년대까지 사용하던 부싯돌 점화식 머스킷을 쥔 자가 여남은 명이 넘었다. 구식 중국제 조총을 쥔 자도 거의 열 명이었다. 창칼을 든 전투병을 제외하더라도 어설프나마 무장을 한 능노꾼이 스물이 넘으니 엄청난 인원이 선창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제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이 안에 들어서면 끝장이다. 놈들이 들어오면 축차적으로 소모시킨 후에 뛰쳐나간다!"

부두목 후안이 용기백배해서 소리쳤다.
씨아티엔도 박도를 두 손으로 치켜들고 이물 쪽 출입구 밑에 숨어 기다렸다.
창을 든 능노꾼들은 출구를 조준하고 있는 총병들 뒤에 섰다.

"거우샹, 멋있게 한 건 하는 거야!"

씨아티엔이 창을 들고 맞은 편 선창 벽에 은폐해 있는 거우샹에게 말했다.

"씨아티엔, 넌 참 좋은 친구였어."

잠시 쳐다보는 거우샹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삐그덕]

갑판에서 선창으로 오르는 출구 덮개가 열렸다.
총병들이 방아쇠에 손을 걸어 놓고 잔뜩 긴장했다. 후안은 사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한 번 발포한 후 재장전하는 시간이면 삽시간에 적들이 선창안으로 밀려들어올 것이었다.

"잠시 기다려라. 몇 놈이라도 들어서거든 일제 방포한다!"

이물 측과 고물 측 총병들이 모두 듣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이물 측 총병들이 마른 침을 삼키며 바짝 긴장한 채 기다렸다. 그러나 출입문만 반쯤 열린 채 아무도 들어서는 이가 없었다.

[통통통… 피쉬이~]

열린 출구로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웬 대나무 통만 계단으로 굴러 떨어졌다. 도화선 타는 연기와 매캐한 화약 타는 냄새. 씨아티엔은 짧은 찰나에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거우샹, 피해! 모두 엎드려!"

씨아티엔은 소리를 지르며 잽싸게 이물 돛대 뒤로 뛰었다. 영문을 모르는 나머지는 어리둥절한 채 눈만 꿈먹거렸다. 거우샹도 선창 벽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피해, 이 바보야! 저건…."

[꽈앙-]

말을 마치지 않아 요란한 폭압이 이물 칸 전체를 휩쓸었다. 엄청난 폭풍이 일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아악!"
"끄악"

실내에서 터진 폭음으로 귀가 멍해진 뒤였지만 처절한 비명소리는 씨아티엔에게 또렷이 전해졌다.
연이어 고물 쪽에서 들려오는 폭음 소리. 분명 이물 칸에서 터진 것과 동일한 소리였다.

"아…."

이물 돛대 뒤에 몸을 가린 씨아티엔이 고개를 내밀었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폭발물이 터진 이물 칸은 아비규환이었다. 폭약이 터진 자리의 선창 바닥은 뜯겨진 채 널판이 흩어져 있고 천정 멍에와 선창 벽 여기저기에 날카로운 삼각의 철파편이 우묵이 박혀 있었다. 깨어진 뒤주에선 흰 쌀이 흘러 내렸다.

아직 허연 화약 연기가 빠지지 않아 이물 칸 안의 상황을 한 눈에 볼 수는 없었지만 선창에 있던 열 대여섯의 인원 중 반 수 가까운 사람이 처참한 몰골로 널브러져 있었다. 멀쩡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들도 어딘가를 찢긴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자가 많았다.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한 눈으로 서 있을 따름이었다.

"바보야… 이건 갑판에서… 터졌던 그 폭약이란 말이야."

선창 벽에 코를 박고 엎어져 있는 거우샹을 보며 울먹거렸다. 거우샹의 배 아래로 거무튀튀한 것이 피 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거우샹, 죽지마 이 녀석아! 어서 눈을 뜨란 말야!"

씨아티엔이 뛰쳐나가며 거우샹을 향해 소리쳤다. 한 달음에 달려가 거우샹의 뒷덜미를 잡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맥을 짚어 볼 겨를도 없이 질질 끌기 시작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그래도 칼은 놓을 수 없어 한 손으로 끌자니 힘에 부쳤다. 거우샹이 끌린 흔적대로 붉으죽죽한 자욱이 남았다.

[통통… 피시이이~]

다시 이물 칸 선창 안으로 대나무 통이 날아들었다.

"모두 피해, 뒤로 빠져요. 어서!"

아직도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이던 사람들이 씨아티엔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너도 나도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더러는 총을 내던지고 황급히 이물 칸 밖으로 내달았다. 씨아티엔이 겨우 거우샹을 끌며 이물 칸을 벗어났다고 하는 순간 폭음이 들렸다.

[꽈광, 꽝]

동시에 두개의 폭약이 터졌다. 널판 튀는 소리가 도리깨질 소리처럼 이물 칸을 진동했다. 몇 개의 파편은 이물 칸 문짝을 뚫고 튀어 나왔으나, 힘을 다 했는지 가까운 천정과 멍에에 맥없이 박혔다.

"으으…."
이물 칸 안을 빠져 나온 총병들과 선원들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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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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