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집을 부숴 또 초가집을 짓는다

낙안읍성 초가집 신축모습 스케치

등록 2005.06.02 00:09수정 2005.06.0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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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음속의 고향집 같은 초가집, 낙안읍성은 150여 가구가 초가집이다.

마음속의 고향집 같은 초가집, 낙안읍성은 150여 가구가 초가집이다. ⓒ 서정일

헌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는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초가집이란다. 집주인 박동근(79)씨는 마당에서 열심히 용마름(짚을 대나무에 길게 틀어 엮은 이엉)을 짜고 있다. 아직도 초가집을 짓는 사람이 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낙안읍성에서는 고쳐도 초가집이요 새로 짓는다고 해도 초가집이다.


요즘 낙안읍성엔 집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100여년이 넘은 집들이기에 자연스레 낡고 헐어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박씨의 집처럼 이미 그 단계가 넘어버린 곳은 주춧돌을 다시금 놔야 한다. 허물고 다시 짓는 신축인데 올해는 이곳이 마지막이다.

a 돌의 모양새에 따라 기둥의 밑둥치를 다듬는 것을 그렝이 공법이라 한다.

돌의 모양새에 따라 기둥의 밑둥치를 다듬는 것을 그렝이 공법이라 한다. ⓒ 서정일

박씨는 신축하게 되었다는 통보에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사실 초가집이란 게 온갖 살아 숨쉬는 생물들의 보금자리 역할까지 하기에 때론 쾌쾌하고 너저분해 마을사람들은 은근히 신축을 바라는 눈치, 싱글벙글하는 박씨를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본다.

헌집은 순식간에 헐린다. 지붕을 걷어내니 두엄냄새가 난다. 그 속에서 안락(?)하게 살던 벌레들은 화들짝 놀라 혼비백산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참새들은 날아든다. 기둥이 뽑히고 벽체가 허물어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당 한쪽으로 집 한 채가 주먹만하게 차곡차곡 쌓인다.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초가집.

a 지붕의 중간보인 상량을 올릴땐 고사를 지낸다. 그리고 북어를 매달아 놓는다.

지붕의 중간보인 상량을 올릴땐 고사를 지낸다. 그리고 북어를 매달아 놓는다. ⓒ 서정일

집을 바르게 세우려면 무엇이 중요할까? 목수들은 두 가지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가지는 땅을 다지는 기초 작업이며 또 한 가지는 그렝이질이다. 평평하지 않는 바닥을 반듯하게 해야 한다는 것쯤은 상식, 하지만 자연석인 주초의 모양대로 기둥을 깎아야 하는 그렝이질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마디로 주초석의 생김새대로 기둥의 밑둥치를 다듬는 것을 말한다. 대쪽을 두 개 이어놓은 그렝이칼로 한쪽에 먹물을 먹여 돌의 모양대로 기둥의 하단에 본을 뜬 후 짜맞추는 것. 혹자는 지진 등 땅의 흔들림에 집이 견딜 수 있는 힘이 바로 이 그렝이공법 때문이라 한다.


a 벽체를 만들기 전에 지붕을 먼저 잇는데 농경문화에서 짚은 소중한 건축재료가 된다.

벽체를 만들기 전에 지붕을 먼저 잇는데 농경문화에서 짚은 소중한 건축재료가 된다. ⓒ 서정일

대부분의 초가집은 마루도리가 건물의 길이보다 짧아서, 앞에서 보면 사다리꼴을 이루고 옆에서 보면 세모꼴의 지붕면이 보인다. 이것을 우진각집이라 말한다. 지붕은 볏짚으로 엮는데 벼농사가 주가 되었던 우리네 삶에서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과학이 숨어 있다. 속이 비어 있는 볏짚은 공기를 머금고 있다. 때문에 여름에는 햇볕의 뜨거움을 덜어주고 겨울에는 집 안의 온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준다. 초가가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것이 볏짚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 흙으로 벽체를 만들지만 중간엔 대나무로 엮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흙으로 벽체를 만들지만 중간엔 대나무로 엮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 서정일

집의 뼈대는 소나무를 사용한다. 겉은 물렁하지만 그 속심에는 송진이라는 썩지 않는 성분이 있어 겉은 썩더라도 속심은 멀쩡하다. 오래된 집이라고 해도 지붕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뼈대 중 가장 중요한 중간 보를 상량이라고 하는데 고사를 지내고 올리는 게 상례, 그곳엔 어김없이 북어가 매달려 있다.

벽체 등은 흙으로 마감한다. 일반적으로 흙을 갤 때 짚을 넣거나 수수깡을 사용한다. 하지만 흙만으로 벽을 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나무를 심재로 사용해서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낮에 비추는 태양열을 받아 저녁에 방출하려면 적당한 두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기후가 여름에는 고온다습하고 겨울에는 저온저습하기에 여름에는 습기로 인해 불쾌지수가 높고 겨울에는 살을 에듯 춥다. 이런 기후에는 열기와 냉기를 차단해주는 단열 효과가 큰 자재가 가장 적합한데 흙은 충실하게 그 역할을 해 준다.

a 벽의 하단은 돌로 쌓고 흙으로 매꾼다.

벽의 하단은 돌로 쌓고 흙으로 매꾼다. ⓒ 서정일

오늘낼 사이에 청소만 하면 박동진씨의 초가집은 완성이다. 보름 전 헌집을 허물고 바닥을 다듬을 때의 황량함은 온 데 간 데 없다. 어디를 봐도 깔끔하고 우직하게 잘 생긴 초가집이다. 비록 산골마을에서 흙 반죽 손으로 해대고 끌, 망치로 미송 다듬는 그런 모습은 아니지만 초가집 짓는 모습은 현대인들에겐 정겹게만 느껴진다.

박동근씨 가옥은 어떻게 지어졌나?

▲ 문화재 관리업체에서 초가집을 짓고 있고 관리사무소 김형욱씨가 감독을 하고 있다.

1.기초공사

- 기준틀 설치 후(평면크기)전, 후, 좌, 우 위치 표시
- 터파기후 잡석 지정 위 4면에 합판거푸집 설치 후 강희, 잡석다짐 마감
- 자연석 주초 설치(중앙 중심 먹 확인) 수평 높낮이 보기

2.목공사

- 벌목->자귀질->먹줄치기->마름질->바심질
- 가설비계 및 가설 덧 집 설치
- 기둥세우기(다림 보기, 기둥하부 그렝이질)
- 대량 및 퇴량설치
- 처마도리->중도리 설치
- 동자주 세우기
- 대공세우기
- 중도리 걸기(상량 도리)
- 추녀걸기(우진각)
- 평연->말굽연 걸기
- 초평(평고대) 설치
- 수장재 설치(하방, 중방, 상방, 문선)
- 마루설치

3.지붕공사

- 처마머름 설치
- 살자 엮기
- 군새 깔기
- 알매흙다짐(보토)
- 강회다짐
- 초가 이엉 엮기->용머름 설치->새끼 엮기

4.미장 및 수장공사

- 자연석 토담설치(벽)
- 외 엮고 재사 벽 바르기(벽)
- 뼈대세우기(중깃>힘살->눌외->설외)->초벽->맞벽->재사벽마감
- 앙토재 사벽 바르기(연목사이)
- 파이프 온돌설치->몰탈(바닥 24m/m) / 서정일

덧붙이는 글 | 낙안읍성민속마을 http://www.nagan.or.kr

덧붙이는 글 낙안읍성민속마을 http://www.nag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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