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87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6.09 22:00수정 2005.06.1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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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감영 뒤뜰.
환도를 들어 정면 대도(大蹈)전후 베기를 끝낸 후 앞발을 당겨 엄지만 바닥에 대고 범견적세(汎見賊勢)를 취하던 군관 윤석우의 칼끝이 심하게 흔들렸다.

"영중, 영일 형제의 족적을 놓쳤다고…?"


아직 자세를 풀지 않은 채였다. 옆에서 자초지정을 읊던 일송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송구스럽습니다. 나으리."

"그게 말이 되느냐? 송구스럽다니? "

윤석우가 서서히 굽혔던 무릎을 폈다. 애써 평온을 유지하려 했으나 어딘지 균열이 가 있는 음색이었다. 벗은 웃통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면목이 없습니다. 보름을 넘게 주막 앞에서 감시하였으나 워낙 인마(人馬)의 출입이 무상 하옵기로 등짐처럼 체바구니 안에 실려 내갈 줄 예측을 하지 못하였나이다. 아침에도 그들의 기척을 느낄 수 없어 황급히 밤사이 빠져나간 소몰이꾼들의 행적을 쫓았으나…."


"끙… 일송이 네가 어찌 그런 실수를…."

윤석우가 말을 해놓고는 입을 다물었다.
단 한번 상상을 해보지 않았던 곽 포교의 실수도 직접 경험한 처지가 아니던가. 지옥불구덩이에서도 살아남을 것 같던 그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걸 직접 수습한 게 바로 자신이었다. 하물며 곽 포교를 그리 만든 자들에게 일송이 눈속임을 당한 것쯤이야….


"그래, 그래서 아무런 단서를 잡지 못하였느냐?"

윤석우가 마음을 진정하고 차근히 물었다.

"영변까진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였사옵니다. 다만 영변 지나 대거리에서부터는 소몰이꾼들의 향방도 김 포졸 형제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별수 없구나. 나와 네가 직접 나서야겠다. 영변 일대와 그 인근 광산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 이미 한통속인 게 명백해졌으니 묵현의 그 주막집을 급습해서라도 행방을 알아내야 한다. 늦으면 김 포졸 형제와는 연락이 끊기게 될 것이야. 그들의 목숨도 장담치 못할 것이고.

말귀 알아듣는 포졸 대여섯을 평복차림으로 준비시켜 기다리고 있으라. 난 관찰사 영감께 재가를 얻도록 하겠느니라."

윤석우는 이것저것 지시하며 웃옷을 주섬주섬 챙겼다.

"나으리. 관찰사 영감께는 방금 손님이 드는 듯 하였습니다요."

"손님이?"

"권, 병자, 무자 쓰는 역관이 제 아비 되옵고 소생은 기범이라 하옵니다."

감영의 동헌인 대동관에서 권기범이 넙죽 엎드려 인사를 올렸다.

"이미 역매나 대치로부터 날 보고 싶어 하더란 소린 들었네. 어디서 광산을 하고 있다고?"
관찰사 박규수는 반가운 기색을 보이면서도 사람의 품성을 꿰뚫는 예리한 눈으로 권기범을 훑었다.

"그러하옵니다."

"자네 소갤 하는 걸 듣자하니 식견이 탁월하고 재기 발랄한 재목이라 하던데, 그 친구들이 그리 극찬을 하는 위인이라면 날 만나 청탁이나 넣자고 찾은 것은 아닐 터이고…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보자 하였느냐?"

친우가 소개한 이니 내게도 벗이라는 듯 대해 주고는 있으나 아직 경계를 풀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두어 달 전 안주에서 있었던 포교 살변과 마두산에서 있었던 접전 때문입니다."

"무어? 그래 무슨 내막이라도 알고 있느냐? 그 자들이 누군지도?"

박규수가 단숨에 물었다. 기대에 잔뜩 부푼 목소리였다.

"외람되게도 저와 동처하는 자들이 그리 하였습니다."

"무엇이!"

권기범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에 박규수가 다시 소스라쳤다.

"허면, 자수를 하고자 이곳에 온 게냐?"

"그것은 아니옵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뵙고자 하였습니다."

"무에야? 이런 발칙한! 게 아무도 없느냐!"

박규수가 동헌 밖을 향해 소리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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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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