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었다. 굳이 관할도 아닌 곳에서 생긴, 더군다나 조선인도 아니고 청국인의 시신에 관한 문제를 파고 들 것인가, 그냥 내 일을 볼 것인가. 관심을 갖자면 제법 시일을 소요해야 할 것이고 그냥 모른 체 하기엔 어쩐지 굵직한 일과도 연관이 있을 성 싶다. 조필두가 이처럼 망설이고 있는데 의원이 시신 여기저기를 유심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래저래 고민하실 필요가 없겠습니다. 사후투척이 분명합니다. 이자들은 둘 다 총상으로 죽은 자입니다."
"무엇이?"
조필두가 눈을 반짝이며 정현우 옆에 붙어 앉았다. 의생들이 시신의 옷가지를 살짝 들어올렸다.
옷에 손가락 하나가 드나들까 말까한 구멍이 나 있었다. 바닷물과 부패된 고름에 적신 얼룩 때문에 그 흔적까지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나는 좌상복부에 총환을 맞았고 다른 시신은 명치를 뚫렸습니다. 사인은 모두 한 발씩의 총환 때문입니다."
"그러면, 청국인이 조선해역에서 총상을 입었다. 그것도 둘씩이나? 밀수선 내에서 내분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조선의 상인에게 당한 것인가?"
"설마하니 청국 상인을 상대로 총질을 해댈 불한당이 조선 팔도에 있기나 하겠습니까요?"
우포청의 나졸이 옆에서 듣다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 소리 마라 이놈아. 근래에 기근으로 지 새끼를 삶아 먹은 자들이 있단 풍문도 파다한 때야. 배곯은 자가 재물에 눈이 멀면 청국 아니라 청국 할애비래도 이 꼴을 만들고 남음이 있음이야."
"흐흠. 아무튼 골치 아픈 노릇입니다요. 저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음이 가하겠습니다요."
어수룩해 보여도 이런 일에 수완이 붙은 티가 역력한 포청 나졸이 슬쩍 물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우리 목적은 이 일이 아니니 일단 사또께서 처리하시는 양을 보다가 처신하자꾸나."
조필두도 나졸의 의견에 동조했다. 조필두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 중간에도 의원의 하는 양을 흘끔흘끔 살폈다.
의생들이 거들고 정 의원은 무엇인가를 유심히 살폈다. 총환의 부위를 좌척으로 재는 양도 하고 시신을 뒤집어 뒷면을 살피기도 했다.
"무엇을 하는 겐가?"
조필두가 물었다.
"누가 되지 않는다면 좀 더 소상히 살펴보았으면 합니다만, 소인이 본래 이 방면에 관심이 많아온지라…."
정 의원은 그제야 조필두에게 다시 아는 체를 하며 청을 했다.
"그거야 자네 편할 대로기는 하지만 검시관이 오기도 전에 먼저 손을 대서야 되겠는가?"
현에서 나온 나졸들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얼버무렸다. 아무리 경포교라 하지만 엄연히 남의 관할에서 감놔라 대추 놔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려면 입쇼. 청국 시신이 떠밀려 왔다는데 이렇듯 조언을 아끼지 않는 분들이 계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요."
아까부터 조필두를 상대해 오던 현의 나졸이 얼른 나서 대답을 했다.
'군관 나부랭이 하나도 얼굴을 들이밀지 않는데 검시관은 무슨 얼어 죽을 검시관. 사또도 대충 시신이나 수습하고 귀찮은 일 안 생기기를 바라고 있을 텐데 뭘.'
현에서 나온 나졸은 사실 이들이 모른 체 하고 지나기를 바랐다. 가급적 난파한 배에서 그냥 떠밀려온 시신으로 처리를 해야만 귀찮은 일에 말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말은 그리 호기 있게 해놓고 슬며시 정현우 의원에게로 다가갔다.
"저, 의원님. 웬만하면 조용한 쪽으로다가 그러니까 저, 잡음이 없는 쪽으로다가…."
"알았네."
정현우 의원이 군말 없이 대답했다.
"이 자들은 난파하여 이곳까지 떠밀려 왔구먼."
그리고는 웃음을 머금은 채 안도할 만한 말까지 해 주었다. 나졸이 편한 얼굴이 되어 물러났다.
"저, 사령 어른. 누가 저 청국인들에게 총을 놓은 것입니까요?"
다시 구경꾼들을 막기 위해 나졸이 다가서자 나이 수굿한 보부상 하나가 나졸에게 물었다.
"예끼! 함부로 입방정 떨지를 말어, 무슨 살변여 살변은! 그냥 익사한 채 떠밀려온 것이라니까."
나졸이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으르렁 거렸다.
"아, 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시신을 살피고 있는 이들을 향한 보부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정현우 의원이 법물을 대략 챙겨 일어섰다. 의생들도 따라 나섰다. 정현우 의원의 안색이 어두웠다.
"뭐, 특별한 것이라도?"
조필두가 물었다.
"아닙니다. 딱히 사인이 총상이라는 것 밖에는…."
나졸의 부탁 때문인지 이번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흠."
조필두도 별 말이 없이 동행한 포청 나졸에게 다가갔다.
"해주의 감영에 머무르고 있는 이 종사관에겐 굳이 긴말 할 필요 없다. 하루 이틀 탐문이나 더 하여보고 우린 곧장 북상토록 하자꾸나."
나직이 귓속말을 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이 종사관 그 놈, 뭉개고 앉아 들이미는 탐보나 넙죽넙죽 받을까 제 힘으로 뭐 하나 하는 게 있습니까요."
포청 나졸도 맞장구를 쳤다.
"썩은 놈의 세상! 집안만 좋으면 능력이나 뭐나…."
조필두가 홧김에 말을 내뱉다 그만 뒀다. 혀에 담아 기꺼운 소리가 아니었다.
억울하면 남보란 듯이 출세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선 조금 더 잔인하고 조금 더 약아야 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조필두는 속으로만 뇌까리며 주먹을 쥐었다. 옹진현의 나졸들이 군례를 올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휑하니 갯바위를 내려갔다. 정현우 의원 일행도 총총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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