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아파트엔 정말 '유비쿼터스'가 있을까?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51) - 아파트광고 유감

등록 2005.06.15 06:55수정 2005.06.1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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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의 상징이 된 드레스와 와인잔


"학창시절 우연히 차안에서 예쁘장한 갈래머리 여학생에게 반해 가슴이 설렜지만 부끄러움 탓에 말 한번 못 꺼냈던 시절…. 이제 나이가 들고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살다보니 불현듯 그때 그 시절 가슴 뛰게 했던 갈래머리 소녀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지금 ○○아파트에 살고 있더라…. 아! 역시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이브닝드레스로 성장을 하고 온갖 보석으로 치장을 한 여배우 모델이 나와 아파트 한바퀴를 돈다…."

도대체 이게 뭐 하자는 시츄에이션? 그래도 이 CF가 말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내가 학창시절 말조차 꺼내지 못할 만큼 너무 예뻤던 갈래머리 여학생이 있었는데 성인이 되어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알아보았더니 역시 (얼굴 반반한 값대로)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고 그 고급 아파트가 바로 ○○ 아파트라는 이야기 아닌가? 오마이 갓! 뒤집어서 말하면 얼굴이 반반하지 못한 사람은 고급 아파트에 오지도 말라는 이야기이다.

비단 이 CF만 문제가 아니라 요즘 아파트 CF들이 모두 약간은 정신나간 분위기들이다. 제각각 고급 이미지를 강조하다보니 이런 코미디같이 왜곡된 광고들을 정신없이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급 아파트 CF에 등장하는 모델은 지혜로운 주부의 이미지보다는 한결같이 이브닝드레스만 입고 와인잔을 들고 사교파티에 나가는 럭셔리한 모습들이다. 고급, 럭셔리를 표현하는 상징이 이브닝드레스와 와인잔 밖에 없는지 심히 개탄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또 다른 럭셔리의 상징, 유비쿼터스

그런데 최근 내 심기를 건드린 또 한편의 코미디 같은 아파트 CF가 있었다. 한 주부가 파티에 나갈 드레스를 고르기 위해 거울 앞에 섰다. 이 거울은 그냥 거울이 아닌 일명 요술거울, 버튼만 누르면 모니터가 되고 시뮬레이션 된 옷장 속 여러 벌의 이브닝드레스가 마치 인형 옷 갈아입히듯 주부의 몸과 매치(?)된 상태를 보여준다.


그중에 한 벌을 선택한 주부는 곧 그 이미지를 즉시 남편에게 전송한다. "나 어때?" 하고…. 장면은 바뀌고 문제의 그 주부는 아까 시뮬레이션에서 고른 그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남편과 팔짱을 끼고 자연스럽게 파티장에 입장한다. 그 후 등장해서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던 문제의 그 문장, '나만의 유비쿼터스 아파트'.

유비쿼터스라…, 대체 이 CF에서 왜 유비쿼터스가 들어가야 했는지 알쏭달쏭하다.


고급 아파트에 살면 유비쿼터스 환경이 저절로 굴러오나?

유비쿼터스란 라틴어로 '편재하다(보편적으로 존재하다)'라는 의미로, 사용자가 컴퓨터나 네트워크를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장소와 물건에 구애받지 않고 물건 속에 내정된 칩 하나로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 한마디로 언제 어디서나 장소나 유무선을 가리지 않는 개념이다.

그런데 마치 특정 아파트에만 유비쿼터스가 가능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아파트 CF는 도대체 뭔 속셈인가? 이미 장소(고급아파트)에만 한정을 둔다는 이야기는 유비쿼터스란 개념과 한참이나 동떨어진 개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CF처럼 드레스 시뮬레이션이 거울 속에 비칠 수 있는 것도, 남편에게 드레스 이미지를 보낼 수 있는 것도 모두 드레스와 거울 속에 부착된 전자칩과 전자칩 속 기능의 융·복합화(컨버전스) 기술, 이러한 것을 유무선 가리지 않고 송수신 할 수 있는 광대역 통신 덕분이지 아파트와는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광대역 통신과 컨버전스 기술의 일반화, 정보기술 기기의 저가격화 등 정보기술의 고도화가 전제되어야 되고 이러한 제약들은 고작 고급 아파트 네트워크 자체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보다 광범위한 범국가적인 문제들이다. 글쎄 뭐 보일러나 전자기기의 원격시동이 가능한 초기의 홈오토메이션 시스템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홈오토메이션 시스템도 아파트가 가구마다 그 기계를 기본적으로 설치해 주었을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요즘 분양되는 미래의 고급 아파트에 CF같은 상황이 벌어지려면 전자칩이 내장된 거울과 전자 페이퍼가 공짜로 설치되고 전자칩이 내장된 화려한 각종 드레스를 공짜로 주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정말로 주겠다는 이야기인가? 참 알쏭달쏭한 '시츄에이션'이구만….

결국 내가 보기에 이 아파트 CF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유비쿼터스라는 단어가 왠지 고급스러워 보이니까 그 단어만을 차용해서 수십 벌의 이브닝드레스를 가지고 있을 만큼 파티에 자주 나가는 주부의 고급 이미지를 최대한 강조하려 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싶다.

이상으로 나의 허무맹랑한 아파트 CF 관람기는 끝이 났다.

제발 이제 고급 아파트의 이미지를 위해 별 생각 없이 최신 IT 용어를 끌어들이는 것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나만의 유비쿼터스? 그러한 환경이 CF처럼 고급 아파트 하나 달랑 짓는 것으로 쉽게 가능하다면 각국이 그처럼 목을 매달며 왜 유비쿼터스에 매달리고 있겠는가를 곰곰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오늘도 TV를 보다보면 싫건 좋건 또다시 이런 고급 아파트 광고와 최소한 몇 번은 마주칠 것이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눈요기도 자꾸만 보면 신물이 나는 법, 보통 주부들이 일생에 몇 번 입을까 말까한 드레스를 걸치고 와인잔을 홀짝거리거나 파티에 나가는 이미지도 한두 번 볼 때 좋은 것이지 재탕 삼탕 우려먹으면 머리 속에 남는 것은 짜증 뿐이라는 걸 과연 광고 담당자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51)번째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51)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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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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