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201회

등록 2005.06.16 07:55수정 2005.06.1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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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의 일이 막중해."

함태감이었다. 기지개를 켠 환관들의 실질적인 수장이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큰 키에 조금 마른 듯 보이는 그는 조금은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자네를 천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기의 병문(昞汶)이나 이곳에 있는 다른 동료들은 그들이 잘 알고 있어 조사하는데 지장이 많을 것이야."

병문이란 연대부를 말함이었다. 상대부와 함께 함태감의 좌우 양팔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체격과 얼굴은 여자처럼 여리고 작았다. 하지만 그 꾀는 이미 함태감 뿐 아니라 상대부도 인정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래도 자네는 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또한 자네는 조사하고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는 따라갈 사람이 없지."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상대부는 공손히 함태감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위험한 일이 될지도 몰라. 조심하게."

달탄으로 떠나보내는 사신 일행에 상대부를 끼어 넣은 것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달탄을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자꾸 국경에서 발호하는 그들의 위협은 은밀했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었다. 이미 그들 사신 일행은 북경에 당도해 있었다. 그에 대한 답례도 아니었고, 특별히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최소한 소관의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습니다."

알고 있었다. 상대부는 환관 중 최고수였다. 어려서부터 함태감은 그를 눈여겨보고 배려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덕을 톡톡히 본 터였다.

"실질적인 책임자는 자네야. 열 명씩이나 자네에게 내 준 인원을 잘 활용해봐."

정식 사절의 수장은 예부(禮部)의 시랑(侍郞)이었으나 실질적으로 그들을 지휘하는 것은 상대부였다. 공식적인 자리에는 그저 시랑을 보좌하는 위치이겠지만 모든 중요한 결정과 지휘는 그가 할 것이었다. 더구나 함태감이 내 준 열명은 자신도 모르는 자들이었다. 언제 그런 인물들을 키워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예기를 몸 안에 감출 수 있는 고수들이었다.

"자네가 잘 알아서 하겠지만 특히 그들의 실세가 누군지 파악해 봐. 그의 성향이 어떤지도… 위험한 자라고 판단되면 일찌감치 제거해야 해."

"알겠습니다. 철저하게 조사하겠습니다."

"그들을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 그래도 명색이 예부시랑인데…."

이미 사신 일행은 출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오직 상대부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함태감이 일어나 상대부의 손을 쥐어 일으켰다.

"삼월이나 되어야 자네를 다시 볼 수 있겠군."

"다시 뵈올 때까지 존체만강하시길…."

상대부의 인사가 끝나자 옆에 있던 연병문이 공손히 인사를 한다.

"고생이 많으시겠소."

"자네가 자춘이라도 가끔 신경 써 주었으면 좋겠군."

"이미 대부의 가르침으로 소관보다 더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더이다. 지원만큼은 아끼지 않겠소."

"고맙네."

그는 다시 한번 함태감을 향해 공손히 읍을 하고는 뒷걸음으로 그 방을 빠져 나갔다. 달탄으로 향하는 사신 일행에 그가 끼어 출발한 것은 영락 칠년 정월 초사흘 미시 말이었다.

---------------
그들 두 사람은 쫓기고 있었다. 너무 깊숙이 들어갔던 것이 화근이었던 모양이었다. 선발된 자신들의 능력을 너무 과신한 탓도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안일한 생각도 역시 한 몫을 하였다. 강호에 이름을 내밀만한 문파와 무림세가들이 숙의하여 결정된 일이었다. 그것이 은밀하게 진행하여야 할 이 일을 비밀도 아닌 일로 만들어 버렸지만 그렇다 해서 이렇게 처참하게 당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일단 전서구를 숨겨두고 온 장소까지는 가야했다. 그리고 그들 일행이 죽어가면서까지 시간을 벌어주었던 일은 마쳐야 했다. 그들이 보고, 그들 일행이 본 이곳의 실상을 알려야했다. 이것은 무림을 위한 일이었고, 강호인 모두를 위한 일이었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죽어간 일행들은 모두 무림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죽어갔다.

보통 때 같으면 오리(五里) 정도의 거리는 차 한 잔 마실 시각이면 충분히 도착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들 두 사람은 그 짧은 시간이 마치 몇 날이나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부상은 입고 있었다하나 그들의 경신술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아직 뒤에서 쫓아오는 자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고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들은 십여 장 정도 앞에 저주의 글귀가 새겨져 있는 바위를 보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입곡자사(入谷者死)>

그 바위에는 그렇게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두 사람에게 살아서 천마곡을 빠져 나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일이었다. 들어오는 자는 죽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들어갔다 살아 나오는 중이었다. 그들의 속도는 줄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바위를 지나는 순간 그들의 눈빛이 마주쳤다.

안도의 빛이자 또한 상대가 무사하기를 서로 빌어주는 눈빛이었다. 동시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좌우로 방향을 틀어 서로 헤어져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똑같은 내용의 전서를 띄울 것이지만 두 사람 중 한사람만 성공해도 그들의 임무는 완수되는 것이다.

독고하운(獨孤河雲)은 멀어져가는 구양중(九陽仲)을 바라보았다. 모두 이십 사명이 투입되어 스물두명이 죽고 남은 유일한 두 명이었다. 자신도 그러했지만 구양중의 무위는 놀라울 정도였다. 구파일방의 이대제자 중 가장 뛰어난 자들로 이루어진 일행 중에서 그와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야 그래도 천하제일문이라는 철혈보 독고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몸이었다. 물론 구양중의 형인 구양휘가 천하제일검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무공수위가 자신과 버금갈 줄은 처음 대면할 때에는 아예 생각해보지도 않은 일이었다. 독고하운은 산등성을 오르자 입을 오무려 기이한 휘파람 소리를 냈다.

휘---익----!

짧은 소성(簫聲)이 허공을 향해 쏘아가자 잠시 후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해동청(海東靑) 한 마리가 회선을 긋더니 그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그의 팔로 내려앉았다. 철혈보가 이용하는 전서구다. 그는 급히 품속에서 조그만 밀지를 꺼내 또르르 말았다. 그리고 해동청의 발에 달린 금환(金環)에 끼고는 다시 묶었다.

"가거라!"

독고하운은 왼팔을 휘둘러 해동청을 날렸다. 해동청은 그의 주위를 한바퀴 돌더니 한두 번 기이한 소리를 내더니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누군가 주위에 있다!)

독고하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신은 기척을 느끼지 못했지만 해동청은 분명 위험을 느낄 때 하는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산 아래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날카로운 음을 발하며 두 줄기 암기 같은 물체가 그를 노리며 날아왔다. 이미 조심을 하고 있었던 터라 그는 빠르게 검을 뽑아 날아오는 물체를 튕겨냈다.

"혈폭비(血爆飛)…!"

그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튕겨낸 물체는 두 대의 혈폭비였다. 철혈보의 철혈대가 사용하는 독문무기. 철혈대라도 온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철혈보의 인물 중 장난이라도 자신에게 혈폭비를 쏘아낼 인물이 있을 리 없다.

"내용은 상세하게 적어 보냈나?"

냉랭하고 듣기 거북한 음성이었다. 이미 전서구를 날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모양이었다. 말과 함께 나타난 인물은 두 명의 중년인이었다. 그들의 짙은 회의(灰衣)를 입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번들거리는 두 눈은 광기(狂氣)가 어른거리고 보기만 해도 잔혹한 느낌이 드는 자들이었다.

"웬 놈들이냐?"

독고하운은 나타난 인물들을 보는 순간 곡 안에 있던 자들이란 사실을 알았다. 어느새 쫓아 온 것일까? 아니 쫓아 온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기다린 것 같았다. 어떻게 자신이 이곳에서 전서구를 날릴 줄 알았던가?

"뻔히 알지 않나? 네놈의 이름을 명부(冥府)에 올려놓은 사자(使者)인 줄은…."

말을 한 인물은 매부리코에 얇은 입술을 가진 자였다. 그는 손 모양의 갈고리가 양쪽에 매달려 있는 단봉을 들고 있었는데 윤기가 흐르는 녹광(綠光)을 띠고 있어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독고하운은 상대방들이 만만치 않은 인물들임을 느꼈다. 분명 지금 이 상황은 길보다 흉이 더 많을 것 같았다. 더구나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저들을 당해낼 수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틈을 보아 빠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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