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202회

등록 2005.06.17 08:03수정 2005.06.1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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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하운은 그런 판단이 서는 순간 신형을 빛살처럼 날리며 두 인물을 향해 검을 쓸어갔다. 가문의 독문절학 중 천룡출해(天龍出海)였다. 오룡(五龍)의 무학 중 검룡(劍龍)이라 불리던 기인의 검법 아홉 초식 중 네 번째 초식을 펼친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이 채 준비를 하기도 전에 펼친 것이어서 그 위력은 더욱 놀라웠다.

"헛....!"


매부리코 인물의 입에서 다급성이 튀어 나오며, 그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제법 약은 놈이군. 하지만 안되지."

그 인물은 독고하운의 공격을 피하면서 가지고 있던 기이한 단봉을 흔들어 검을 튕겨내더니 단봉 양끝에 달려 있는 손 모양의 갈고리를 날렸다.

'휘리--링-- 쇄액---!'

손 모양의 갈고리는 사람의 손과 같았다. 끝이 예리한 그것은 기이하게도 살아있는 것 마냥 손가락을 움직이며 허공을 떠 다녔다. 눈에 보이지 않은 가는 실에 매달려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그 놀림이 너무 정교해 독고하운은 막기 급급했다.


'타--당---!'

어께를 찍어 오던 손 갈고리를 쳐내며 신형을 허공에 떠올렸다. 그 순간 아래쪽을 향해 쏘아 오던 또 하나의 손 갈고리가 스치며 무언가 그의 발에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감기는 듯한 느낌에 발목을 빼내기 위하여 발을 쳐내는 순간 그는 발목에서 느껴지는 맹렬한 고통에 고개를 숙였다.


'써--억---'

자신의 오른발이 발목부터 잘려나가며 피를 뿜었다.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퍼--퍽---'

검으로 쳐냈던 손 갈고리가 그의 심장에 박히며 그의 신형이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득해왔다. 너무나 순식간에 너무나 허망하게 당했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하지만 이미 숨을 쉬기 어려운 그의 귀로 다시 음산하고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억울한가 보군.... 죽기 전에 알아둬. 이건 구음쇄골조(九陰碎骨爪)야."

강했다. 정말 상대는 강했다. 구음쇄골조가 뭔지 알 수도 없었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당할 것이라곤 당해보고도 믿지 못 할 정도였다. 아무리 하루 반나절을 쫓기며 지쳤다 하더라도, 부상을 당한 후 출혈로 인해 자신의 내공을 칠할 이상 발휘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너무나 허망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의혹은 자신이 이곳에 당도하기도 전에 죽일 수 있었으면서도, 그리고 전서구를 날리지 못하게 할 수 있었으면서도 왜 전서구를 날릴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냐는 것이었다.

무슨 이유였을까? 분명 그들에 대한 모든 것을 기재해 놓은 것이라 생각 못 할 바도 아니었는데....하지만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이미 죽은 자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

"스물세 명 째 인가?"

구음쇄골조로 독고하운을 죽인 사내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사내가 말을 받았다.

"스물네 명째 인지도 모르지. 헌데 자네..."

".......?”"

"두 명 만큼은 죽이지 말라던 곡주에게 어떻게 변명하려고 그러나?"

곡주는 분명 구양중과 독고하운을 죽이지 말고 붙잡아 오라고 했다. 하지만 매부리코 사내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다는 듯 독고하운을 죽였다. 발목이 잘리는 순간 그만두었다면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묻는 사내가 얼굴에 한줄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구음쇄골조를 든 중년인이 음산한 살소를 흘렸다.

"어차피 이 자든 구양중이든 죽여야 해. 곡주는 아무리 보아도 딴 생각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염원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지금 이용당하기는 해도 끝까지 그렇게 당하지는 않을거야."

"자네...?"

"우리의 첫 번째 염원이 무엇인가? 바로 철혈보의 놈들이라면 개, 돼지까지 모두 몰살시키는 것이 아니냔 말일세. 이 놈을 잡아 그들의 발목을 묶어 두겠다는 생각은 곡주가 가지고 있는 졸렬한 생각이야. 구양중 역시 구양휘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그럴수록 우리에게 불리하지."

"그의 생각인가?"

"물론.... 그는 이곳에 오지 않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더군. 스물네 명의 내력과 용모파기까지 자세하게 적어 보냈지. 곡주에게 보낸 것 외에 따로 대군(大君)께 보내왔네."

"대군께서도 자네와 같은 생각인가?"

"물론이지. 자네에게 연락을 하시지 않았나?"

"연락하셨네."

"그런데 아직 자네는 결정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어차피 그들은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건가? 그들에게 이용당해 우리의 염원은 간 곳없이 죽어가야 한단 말인가?"

"반드시 그렇다고만 생각할 것은 아니네."

"자넨 참으로 어리석군. 우리에게 있어 첫 번째 관문은 인성(人性)을 자제하는 것이지. 자네는 그것부터 우리와 달리 그들을 닮아간 것이군. 자네는 겨우 구년 만에 그들에게 동화되었단 말일세."

매부리코 인물의 힐책에 중년인은 입을 다물었다. 갈등이 일고 있었다. 어차피 힘으로 굴복당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본래 하고자 했던 염원은 아직 버리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던 어린 시절부터 배워 온 가치관을 한 순간에 허물 수는 없었다. 더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미 굳어 버린 관념을 바꿀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미 중년인은 마음이 흔들린 상태였다.

힘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힘으로 굴복 당했다면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굴복하기 싫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것이었다. 헌데 굴복당하고 나서 십여 년이 흐른 이제 와서 그들의 뒤통수를 치자는 것인가? 그래도 욕을 할 수 없었다. 철들기 전부터 같이 자라고 같이 커 온 동료였다. 그들의 생각이 반드시 틀린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의 말이 끊겼다. 생각은 많고, 할 말도 많았지만 아직 결정하지 못한 중년인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시체나 회수해 돌아가기로 하세."

그는 천천히 독고하운의 시신 쪽으로 다가갔다. 모든 시신을 회수하라는 것은 곡주의 명이었다. 아마 스물두 개의 관을 준비한 것으로 보아 장례라도 치루어 주려는 것일까? 이제는 두 개의 관을 더 준비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중년인이 시체를 안아 들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독고하운의 검을 집어 들고 있었던 매부리코 사내가 중년인의 등에 검을 박았다. 너무 느닷없고 예상치 못한 일이라 그는 아무런 방비를 하지 못했다.

'푸욱--'

검은 그의 등을 파고들어 가슴으로 삐죽 튀어나왔다가 다시 그의 목을 반쯤 베고는 멈췄다. 그리고는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이쪽도 좋겠군."

말과 함께 또 다시 엎어지고 있는 중년인의 허벅지와 아랫배를 검으로 그었다. 하지만 당하는 자의 입에서는 어떠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고통스런 표정도 없었다. 단지 의혹에 찬 절망감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왜.....왜.....자네가....?"

"자네는 우리 일을 망치게 할게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곡주에게 알릴 가능성이 다분하지. 더구나 얼마나 그럴 듯 한가?"

매부리코 사내는 검을 들어 자신의 어깨까지 그었다.

"독고하운의 본신 실력은 너무나 놀라웠다. 그는 곡 안에서 자신의 본신실력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은 오히려 당할 뻔 했다. 아니 자네가 당하고 나 역시 당할 뻔 했다. 그래서 죽일 수밖에 없었다. 사로잡을 수는 없었다. 어떤가?"

그럴 듯한 변명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몸에도 상처를 낸 모양이었다. 중년인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아득한 가운데 그는 점차 의식을 놓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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