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문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필요하다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123] 전방 GP 총기난사 사고 지켜보며

등록 2005.06.27 18:12수정 2005.06.2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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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나 이제나 변하지 않는 말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하여 최전방을 지키던 병사들이 적군도 아닌 아군, 그것도 한 내무반의 동료의 수류탄과 총탄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입이 닫아지지 않는 일이었다. 이들 8명의 병사들의 유해는 사건 발생 일주일 뒤인 지난 25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으레 사후 약방문격으로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인 사후 대책이 나오고, 부대 상급 지휘관 몇 사람이 징계 또는 보직 해임되는 선에서 마무리돼 왔던 게 그간의 관례이었다. 그리고 세상은 곧 이런 일을 묻어버린다. 이번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나 역시 전방에서 군복무를 하였기에 이 사건을 접하고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동안 자제해온 것은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구천을 헤매는데 자칫하면 누가 될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삼갔다. 이제 장례식도 끝났으니 다음 세대와 나라를 위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서 붓을 들었다.

해방 60년을 맞으면서 사회 모든 분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는데도 여태 그제나 이제나 요지부동으로 변하지 않는 말은 돈 있거나 ‘빽(배경)’이 좋은 집 자제는 군에 가지 않거나 가도 후방 안전지대에 근무하고 전방에는 돈 없고 백 없는 병사들만 지킨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병사가 ‘빽’이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내가 근무했던 1960대 말에도 그랬다. 내 소대원 40명 중에 대도시 출신이거나 대학 재학 중에 입대하였거나 대졸 출신은 몇 되지 않았다(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대학 진학률이 낮았다). 전방 말단 소총소대에는 집안 배경 좋고 학벌 좋은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런 군사문화는 지금도 별반 나아지지 않나 보다.


a 전방 소총 소대장 시절의 필자(1969년 겨울, 서부전선 최북단. 강 건너편이 북한의 관산포다)

전방 소총 소대장 시절의 필자(1969년 겨울, 서부전선 최북단. 강 건너편이 북한의 관산포다) ⓒ 박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들은 대부분 군복무를 앞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리라. 국민의 의무인 병역을 ‘어떻게 마쳐야 할까’로. 나도 군복무를 앞두고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 무렵 졸병으로 군에 입대하면 매 맞는다는 얘기, 배를 곯는다는 얘기, 집에 돈을 갖다 써야 된다는 얘기들로 나는 그 세 가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학훈단을 지원하여 정말 운 좋게 육군 보병장교로 임관하였다. 그래서 전방 소총소대장으로 소정의 군복무를 힘들게 마치고 전역하였다.


매 맞기 싫어서 장교로 군에 갔지만 후보생 시절에도 전방 소대장 시절에도 상급자에게 여러 번 구타당했다. 장교도 그랬는데 하사관이나 일반 병들이야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그 무렵에는 ‘군대’ 하면 ‘빳다(매)’를 연상할 만큼 강압적 수단은 군 내무생활에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침대 각목, 곡괭이자루, 탄띠, 심지어는 LMG(기관총) 총열로 두들겨 팼다. 그리고 기합이라고 하여 하급자에게 육체적인 숱한 고통을 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때문에 후송되거나 지체장애자가 된 병사도 적지 않았다.

이 구타야말로 일제의 잔재로 식민지 백성들을 두들겨 패서 지배했던 악습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다(하기는 창군 주역이 일군이나 만군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말로는 설득이 되지 않는 합리성이 없을 때, 상급자는 하급자들을 매나 기합으로써 지배하였던 전근대적 군사문화였다.

내 어렸을 때 자식을 훈련소로 보낸 부모들이 면회를 갈 때는 떡을 하거나 닭을 잡아서 갔다. 면회 날이나마 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해서였다. 요즘은 자유급식으로 배곯는 병사들이 없다고 하여 크게 개선된 걸로 알고 있지만 왕년의 용사들은 열 사람에 여덟아홉은 ‘군대’하면 ‘춥고 배고팠던 추억’일 게다.

어느 나라 군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라고 불러놓은 병사들을 굶주리게 한다는 말인가.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데려다 놓았으면 배를 곯리지 않는 게 최소한의 나라가 해 줘야하는 도리요, 양심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 군대는 그렇지 못한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그 유명한 ‘국민방위군사건’이 그렇고, 그 뒤에도 그런 부정은 끈질기게 이어져 왔다.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꿔야

지난날의 잘못된 군사문화 얘기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이제는 우리 나라도 병역과 군사문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먼저 나는 어느 나라나 평화 때에도 나라를 지키는 군인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임을 밝히면서 현재 우리 나라 병역 및 군사문화 난제를 푸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꿔야 한다. 현실을 모르는 대안이라고 펄쩍 뛰면서 내 사상을 검증하려는 분도 있을 게다. 하지만 감옥에 가도 총을 잡을 수 없다는 청년이나 이에 준하는 이에게 강제로 총을 쥐어주면 불상사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 시점에서 당장 모병제는 실시가 어려울 게다. 그래서 그 과도 과정으로 국가는 현역 사병들의 대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최소한 하사관 수준의 급료를 지급), 그 복무기간에 합당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재원 마련이 문제인데 그것은 지도자가 남북협상을 통하여 서로가 대규모 감군케 하거나 다른 별도의 방법으로 마련하면 된다.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게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몫이다.

둘째, 병영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부당한 권위나 폭력으로 군림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나라가 필요해서 불러 모은 젊은이를 진정으로 대접해주고 그들을 감동시켜야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애국심과 충성심을 기대할 수 있을 거다. 국가나 군 지도자들이 병사들의 발을 닦아주는 그런 자세가 아니고서는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치고 싶은 나라가 될 수 없다.

셋째, 정치 지도자는 지금의 남북 대치를 푸는데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내가 현역에서 복무할 때도 가장 괴로웠던 점은 총구의 대상이 동족이라는 점이었다. 어느 날 고지에서 포대경으로 북을 바라보니까 거기서도 흰 옷 입은 백성들이 모내기를 하고 날마다 들려오는 대남방송도 같은 말이라는 점이었다. 차라리 총구 밖 대상이 이민족이었다면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거다.

남북 고위층은 서로 만나면 악수를 나누고 술잔을 부딪치지만 피차 졸병들은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처럼 총구를 맞대고 올빼미처럼 밤을 지새우면서 눈에 핏발을 세우지 않는가. 더욱이 요즘은 아무나 금강산에 다녀올 수 있고, 개성공단까지 출퇴근하는 시대인데 아직도 냉전 이데올로기로 적개심을 불어넣는다면 병사들은 엄청난 심적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나의 이 대안 제시를 현실을 모르는 이상론이라고 여길 분이 많을 거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런 방향으로 반드시 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야 한다. 그 이상을 현실화시키는 게 정치 지도자들이 할 일이다. 그런 마음가짐과 자세가 안 된 사람은 제발 정치 일선에 나서지 말라. 지금보다 오십년 뒤, 백년 뒤를 생각하면서 오늘의 병역문제, 군사문화의 실마리를 풀자.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올랐던 인터뷰 기사를 모아서 도서출판 '새로운사람들'에서 <길 위에서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엮었습니다. 애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올랐던 인터뷰 기사를 모아서 도서출판 '새로운사람들'에서 <길 위에서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엮었습니다. 애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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