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은 4일 노무현 대통령이 연합정부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노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여권 수뇌부 모임인 '11인 회의'에 예고도 없이 참석해 현 상황을 '비상 사태'로 규정한 뒤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과 연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연정' 발언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는 우선 '시점' 때문이다. <서울신문>도 보도했듯이 노 대통령이 '연정' 발언을 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돼 열린우리당은 민노당과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부결 공조를 이끌어냈다. 오비이락 격인지는 몰라도 시간이 겹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노 대통령이 '연정' 발언을 한 자리가 열린우리당과 정부, 청와대의 핵심 수뇌들이 모이는 자리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참석자의 면면을 보면 이해찬 총리, 정동영 김근태 장관, 문희상 의장,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등 하나 같이 노 대통령과는 막역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 볼 때 주위를 살피지 않고 흉내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
이 것 외에 또 하나 기억을 되새겨야 할 게 있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 김효석 의원을 교육 부총리에 임명하려고 시도한 바가 있다. 비록 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되긴 했지만 필요하다면 정권의 한 부분을 떼어줄 수도 있다는 노 대통령의 정치 의식을 보여준 사례로선 부족함이 없다.
노 대통령의 이런 정치 의식은 여소야대 국회가 된 지금 더 강화됐을 수 있다. 문제는 '연합'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해서 '정책 공조' 수준에서 '연정' 구상으로 확장됐는가 하는 점이다. 또 그런 구상이 현실화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도 점검해야 할 대목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놓고 보면 연정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여권이 민주노동당과 연정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장관 자리 몇 개는 내줘야 하는데 그 일순위는 노동부 장관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요즘 들어 '재벌 공화국', '삼성 공화국'이란 말이 운위되는 배경에는 정부의 '재벌 봐주기' 또는 '재벌 밀어주기'가 있다. 노동 정책도 그 맥락에서 수립되고 있다. 노동계가 한사코 반대하는 비정규직법을 처리하겠다는 게 여권의 방침이다. 또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노조의 투쟁 방식을 '끝장내기식, 밀어붙이기식'이라고 비난한 것이 며칠 전의 일이다.
이런 흐름에서 볼 때 정부의 노동‧재벌정책과는 180도 다른 정책을 펼 민주노동당에 노동부 장관직을 내준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민주노동당 입장에서 볼 때도 상황은 부정적이다. 입각을 감행해 친노동 정책을 폄으로써 자신들의 색깔을 분명히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경제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게다가 노조의 잇딴 비리로 국민 여론도 식어버린 상태다. 명분도 실리도 잃을 게 뻔해 보이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굳이 '사꾸라' 논쟁에 휘말릴 이유는 없다.
그럼 민주당과의 연정은 어떨까? 여권의 입장에선 '오로지 개혁'인 민주노동당과의 연정보다는 정책적 부담이 덜 하고, 멀어져가는 호남 민심을 다잡을 수도 있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민주당의 '연정 거부' 사유가 될 수 있다. 한 때 열린우리당에 내줬던 호남 민심을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는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에 대문을 열어줄 이유가 없다. 더구나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통해 호남 민심을 굳힘으로써 정치 지분을 늘려야 하는 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겸상'을 할 리 만무하다.
노 대통령이 '연정'을 언급함으로써 민주당 내 동요와 이탈을 유도하는, 즉 제한적 연합을 구상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 김효석 의원을 교육 부총리에 임명하려다가 민주당의 반발로 무산된 전례를 감안하면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의 상황과 맞지 않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영입전을 펼쳤던 무소속의 최인기 의원은 결국 민주당을 택했다. 게다가 동요는 민주당 안에서가 아니라 열린우리당 안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고건 카드'가 언급되기 시작하면서 열린우리당 내 일부 호남 출신 의원들이 동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연정'의 조건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국회가 여소야대로 짜여 있기에 여권이 다른 정당과 공조를 해야 하는 상황임은 자명하지만 여권이 공조를 연정으로 확장시킬 만큼의 동력을 가졌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연정'을 언급했다. 왜일까? 막역한 지인들에게 밝힌 '희망사항'일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노 대통령이 지금까지 참석하지 않았던 회의에 '몸소' 찾아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걸린다. 다시 말해 '어떤 의도'를 갖고 던진 말로 볼 정황도 있다는 것이다.
해답은 어쩔 수 없이 '비공식 상황'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앞서 열거한 공식 상황으로는 '연정' 가능성이 극히 낮은데도 노 대통령이 굳이 '연정'을 언급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희망사항'이 아니라 '의지' 차원에서 얘기한 것이라면 '비공식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코멘트, 그리고 언론의 후속 보도를 지켜보면서 퍼즐 맞추기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