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여당 아닐 수도 있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연정' 발언과 '노심'

등록 2005.07.05 09:16수정 2005.07.0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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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왜 연합정부 얘기를 꺼냈을까? 이에 대해 신문은 내각제 개헌을 염두에 둔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제’를 점치고 있지만 대다수 신문은 조기숙 청와대 홍보 수석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도 포함돼 있다’고 한 말을 토대로 내각제 개헌을 유력한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연정’의 구체적 내용이 ‘결선 투표제’인지 ‘내각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보다는 노 대통령이 왜 개헌 논의에 불을 지필 발언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대다수의 신문은 4.30 재보선 참패로 여소야대 국회가 조성된 후 노 대통령이 위기 의식을 느낀 것 같다고 보도하고 있다. 노 대통령 스스로 현 상황을 ‘비상 사태’로 규정했고, 조기숙 홍보 수석도 “대통령이 총재직을 내놨지만, 야당은 단결하고 여당은 와해되는” 위기 국면이 조성됐다고 말한 점을 근거로 상황 반전용으로 개헌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 반증도 많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후 1년 2개월 동안 여소야대 국회에서 국정을 운영해왔다. 지난해 4.15 총선 전에는 여당 지도부에게 “한 석 많고 적음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대야소 국회가 조성된 후에도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국가보안법을 처리하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여대야소 국회에 대한 실망감, 여소야대 국회에 대한 맷집을 충분히 축적한 사람이 노 대통령이며, 따라서 여소야대 국회는 곧 위기라는 상황진단은 엄살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런 의문은 두 가지 사실이 보태지면서 더 증폭된다. 우선 시점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집권 기간 동안의 정치 일정을 밝히면서 책임총리제를 시행하다가 2006년에 개헌 논의를 시작해 2007년에 개헌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의 정치 일정표에 비춰볼 때 연정 발언은 최소한 6개월, 최대 1년을 앞당긴 것이다. 여권 내부에서 개헌 논의가 나올라치면 레임덕 현상이 조기화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억누르던 과거의 태도에 비춰 봐도 너무 빠르다.


또 하나. 왜 하필이면 내각제인가? 개헌과 관련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내각제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해온 방안이다. 그래서인지 정치권도 내각제보다는 대통령 4년 중임제나 정‧부통령제를 선호해왔다. 그런데도 조기숙 홍보 수석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언급하면서 내각제 개헌 논의의 물꼬를 손수 터줬다.

의문이 꼬리를 무는 상황에서 특정한 결론을 도출하기란 쉽지 않다.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하는 데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은 조기숙 홍보 수석의 말이다. 파문의 진원지가 됐던 지난달 24일 ‘11인 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언급한 ‘연정’은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과의 연정이었다. 그런데 조기숙 홍보 수석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도 포함될 수 있다”고 범위를 넓혔다. 조기숙 홍보 수석이 이 말을 한 시점은 노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직후다. 그런 점에서 조기숙 홍보 수석이 ‘오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발언이라고 보는 게 순리이다.

조기숙 홍보 수석은 대연정 발언과 함께 “대통령이 총재직을 내놨지만 야당은 단결하고 여당은 와해되는 국면이 생겼다”는 말도 덧붙였다. 누가 보더라도 야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을 겨냥한 말이다.

두 가지 말을 기계적으로 조합하면 “여당이 와해된 국면이기 때문에 한나라당과의 대연정도 모색할 수 있다”가 된다. 이 지점에 이르니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보낸 편지가 떠오른다. 지리멸렬, 중구난방의 당 상황을 질타하면서 기강과 규율을 강조한 그 편지 말이다.

<한겨레신문>은 바로 이 지점을 주목하고 있다. “4.30 재보선 패배 이후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이 당 지도부는 물론 청와대의 권위까지 무시하며 중구난방 현상을 보이고 있어, ‘선을 넘을 경우 더는 열린우리당이 여당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게 <한겨레신문>의 해석이다.

<한겨레신문>의 이런 해석을 따른다면 노 대통령의 연정 발언은 양수겸장의 성격을 띤 것으로 분석된다. 열린우리당이 최후통첩성 경고를 수용해 당 기강과 규율을 잡는다면 민주당이나 민노당과의 공조를 통해 국정을 운영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열린우리당에 연연해하지 않고 초당적 국정운영도 불사할 것이라는 얘기다. 여소야대 상황, 즉 ‘내 편’과 ‘네 편’의 많고 적음이 노 대통령의 고려 사항이 아니라 ‘편의 질’에 더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조기숙 홍보 수석이 공조와 연정을 단기 과제와 중장기 과제로 나눈 뜻이 뭔지, 또 왜 갑자기 내각제 개헌을 시사하는지도 대략 알만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밑그림이다. 밑그림이 채색과정을 거쳐 완성되기까지에는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초당적 국정 운영에 한나라당이 일사분란하게 호응한다는 보장도 없고, ‘선’을 넘은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이 두 눈 멀쩡히 뜨고 지켜보기만 할 것이란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또 그것이 정계 개편을 염두에 둔 것인지 여하에 따라 국민 여론도 유동적으로 흘러갈 것이다.

연정 발언을 둘러싼 정치권의 복잡미묘한 몸놀림은 이제 겨우 초입 단계에 들어섰다. 아직은 유동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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