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216회

등록 2005.07.07 07:57수정 2005.07.07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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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휘가 술잔을 내밀고, 세 사람에게 차례로 술을 따라 주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밤이 새도록 마셔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술잔을 비운 구양휘가 넌지시 말했다.

"이곳에 구거사도 계시네."


"알고 있소."

"만나 볼텐가?"

담천의는 잠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 우선 우리끼리 취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렇군."


별로 만나고 싶은 기색은 아닌 것 같았다. 구효기 역시 굳이 원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고 하였으니 강권할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그의 말대로 우선은 자신들끼리 어울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구양휘 역시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소제는 이제야 신세를 알게 되었소. 왜 본가에 그런 참화가 일어났는지 말이오."


그들 세 사람의 얼굴에 떠오른 의혹스런 표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담천의는 천천히 술을 마시며 지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었다. 사귄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었더라도 형제처럼 생각되는 것은 담천의 뿐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그들은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명을 건국하면서 감춰져있던 비사(秘事)였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도 결국 궁금증은 남았다. 누가 담가장의 혈사에 직접 손을 썼느냐는 것. 그것을 밝히기 위해 그가 움직이고 있음도 알았다.

"형님들께서 소제를 도와주셔야 하겠소."

그 말에 구양휘는 표정을 고치며 물었다.

"자네는 나를 형제라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소. 그렇지 않았다면 형님을 찾아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요."

"그렇다면 도와달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야. 자네 일이 곧 내 일이고 우리들 일이기 때문이지."

광도는 언젠가 형제간에는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구양휘의 말 역시 같은 뜻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고 허공에서 술잔이 부딪쳤다. 그리고 반 시진 후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며 담천의가 자리를 비웠다. 어디를 가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그가 말하지 않은 다음에야 물을 필요는 없었다.

--------------
복잡한 미로였다. 그저 문 하나 없이 벽으로 된 좁은 회랑(回廊)을 몇 번이나 돈 끝에 그는 기묘한 곳으로 안내되었다. 기묘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안내된 곳이 여인의 규방(閨房)이었고, 훤히 비치는 천이 늘어진 곳에는 한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김이 오르고 있는 나무 욕조 속에는 아름다운 여인의 나신이 물을 찰랑이고 있었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여 순결한 처녀는 아닌 듯 보였지만 목욕하는 중에 외간 남자를 들이는 것은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번거로운 이목을 피하고자 이리로 모셨으니 개의치 마시길…."

전음이었다. 그녀는 진짜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욕조에 꽃잎을 띄었는지 붉은 색이 어른거렸다. 육향과 함께 꽃향기가 실내 가득 퍼지고 있었다.

"단사(彖辭)요?"

역시 전음으로 물었다.

"그 의자에 앉으시지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올 줄 알았다는 거요?"

"마노라 불리는 두(斗)어른께서 두 번이나 전갈을 주셨습니다."

가느다란 목선과 둥그런 어깨선이 아름답다.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욕정을 일으키지 않을 사내가 얼마나 있을까? 담천의는 천이 늘어져 있는 바로 옆의 의자에 앉으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물 밖으로 언뜻 언뜻 나타나는 그녀의 육봉과 유실이 고혹적이었다.

"나를 도와줄 수 있겠소?"

"공자는 초혼령을 가지고 계시지 않나요?"

"가지고 있소."

"초혼령의 위력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또한 초혼령을 가질 권리가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명령을 하시면 과거와 같지는 않을지라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오?"

"두 어르신께서 두 번째 전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공자께서 원하신다면 당신들은 나설 수 없지만 우리들이 나서서 도와드리는 것은 상관하지 않겠다고요. 몇 군데 연락을 했고, 우리는 결정을 보았습니다."

젊은 세대. 아마 과거에 움직였던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키운 후인들을 말함이었다. 과거의 그들은 아직 명분이 쥐여지지 않았으니 움직이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 후인들이야 비원의 구속에 완전히 매일 바는 아니었다.

마노가 새삼스레 그들에게 연락을 해 그들이 나서는 것까지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마 적극적으로 도와주라는 말과 같을 것이었다. 자신들이 나서야 하지만 나설 수 없는 입장이다 보니 그런 궁여지책을 생각했을 것이다.

"결정…?"

"초혼령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 시각부터 공자는 초혼령으로 저희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촤르르---

물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이것은 뜻밖이었다. 아마 마노는 개봉의 난전과 용화사에서 벌어졌던 일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담천의 홀로 헤쳐 나가기에는 너무 벅차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위험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탁자 위에 죽통(竹筒)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굵은 대나무 통을 볼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이대오위(二隊四衛)의 조직구조와 수장, 그리고 주요 인물들의 명단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저희들이 사용하는 음호와 사용방법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다 기억하셨으면 없애십시오."

담천의는 죽통의 마개를 열어 그 안에 둥글게 말려있는 종이를 꺼냈다. 그 양은 꽤 많았다. 초혼령, 아니 균대위의 조직은 이개대(二個隊)와 오개위(五個衛)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개는 위(衛)가 움직이지만 상대의 인원이 많거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일이라면 대(隊)가 나서게 된다. 군문 조직을 변형한 것 같은 조직이었다.

"아쉽게도 아직 이대(二隊)는 아직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대의 수장과 주요인물은 그곳에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총 열다섯 명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두칠과 황원외의 이름도, 장안의 황가마장에 있다던 장삼이나 지금 목욕을 하고 있는 단사의 이름도 기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대(二隊)의 명단은 누락되어 있었다.

"단사… 그대도…?"

그때였다.

촤르르---

물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며 여인이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완벽한 나신에 걸려있는 물방울들이 불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옷가지를 걸치지 않았다. 나신인 그대로 그녀는 한 점의 거리낌도 없이 담천의 앞에 서더니 절을 올렸다.

"옥형위(玉衡衛) 위장(衛將) 단사가 초혼령주를 뵈옵니다."

이개대 오개위의 이름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위(位)의 이름을 따서 지은 모양이었다. 아마 균대위의 목적이 황실을 보호함이고, 북극성(北極星)은 예로부터 황제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 터. 군성옹북(群星擁北)이라 하여 수많은 별들이 북극성을 향해 떼지어 따른다는 이 자구(字句)는 황제를 향해 많은 군신(君臣)과 문사(文士)가 모여든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만 보아도 분명했다.

"알…알겠소.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소."

말은 하였지만 어디에 시선을 둘지 난감했다. 부드럽게 출렁이는 가슴과 아랫배의 체모는 시선을 돌려 안 본다 해도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유혹적인 향기는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처음으로 군신의 예를 받는 자리에 알몸이라니…. 더구나 상대는 여자였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 가장 적나라한 것이 나체라면 가장 솔직한 표현 역시 나신이었다. 그녀는 고의로 자신의 나신을 드러내고 있는지 몰랐다.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 빠른 시간 내에 믿음을 줄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난감한 가운데서도 그의 하초가 꿈틀대는 것으로 보아서 그는 사내가 분명했다. 너무나 고혹적이었다. 눈을 아무리 돌리려 해도 그 역시 사내. 그런 상태에서 반시진 정도 말을 나누다보면 상대 여인의 몸 구석구석을 보지 않으려 해도 보게 마련이다. 충분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담천의는 그곳을 쫓기듯 나섰다. 더 이상 그곳에 있었다면 그녀를 범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곳을 들어갈 때와 나오는 지금과는 천양지차였다. 그는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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