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흔(郭痕)의 소식은?"
금색으로 수놓은 자포를 입은 중년인의 물음에 영목은 고개를 숙였다.
"어제 항주 외곽에서 끊겼습니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기이하게도 이번 일은 자신의 손을 벗어난 느낌이었다. 살천문에서 수행하는 일이 자신의 손을 벗어났다고 하는 것은 문제였다. 그는 살천문의 총타수였고, 그것은 다른 문파의 총관이나 같은 위치였다. 문파의 내외사를 모두 총괄하는 지위로 손바닥을 보듯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왜…?"
곽흔은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완벽하게 귀환하고 있었다. 그가 표식을 남기지 않았다면 자신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였다. 헌데 그 표식이 끊겼고, 보고는 의외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죽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흔적으로 보아 중상을 입었을 것이란 보고입니다."
자포인의 굵은 검미가 치켜 올라갔다. 외곽이라고는 하나 항주는 자신들의 영역이다. 그런 곳에서 문파의 형제가 공격을 받는 일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중상을 입었다면 곽흔은 더욱 빨리 귀환했거나 최소한 도움을 청하는 음호라도 남겼어야 하지 않은가? 헌데 자신의 표식도 남기지 않고 행방을 감췄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겠나?"
문주의 지적은 정확했다. 청부를 수행 중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그런 경우에는 죽더라도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법칙이었다. 하지만 귀환 중에 있는 자가 귀환 장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중상을 입었다면 도움을 청하는 것이 당연했다. 쫓기더라도 최소한 음호라도 남겨 도움을 구해야했다.
헌데 곽흔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문파와 연락조차 끊어 버린 것이다. 쫓기다 죽은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샅샅이 뒤졌음에도 그가 죽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계속 조사 중에 있습니다."
변명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보고하는 영목 역시 이미 당분간 그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정황은 그 스스로 잠적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잠적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한평생 살수로 살아온 자였다. 그가 스스로 잠적했다면 아무리 살천문이라도 그를 찾아내는데 꽤 오랜 시일이 걸릴 터였다.
"자네는 이 일에 두 번이나 실수를 하는군."
영목은 머리가 쭈뼛 서고, 등골이 오싹해 짐을 느꼈다. 문주의 목소리는 아주 낮게 가라 앉아 있었다. 그것은 그의 노기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했다. 살수세계에 있어 문주는 곧 생사여탈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죽으라면 죽어야했다.
"속하가 우둔하여…."
영목의 말이 끝나기 전에 문주가 말을 끊었다.
"조사를 당장 중지시키도록. 곽흔이 왜 스스로 연락을 끊었을까?"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살수에게 있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은 곧 고향이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그들은 조직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자들이었다. 청부를 수행하는 일은 대개 고독한 일이었지만 청부가 없는 경우에는 자신들의 안식처가 바로 조직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조직을 떠난다는 의미였고, 그것은 곧 조직을 배반하는 일이었다. 한평생을 조직에 몸담고 있었던 곽흔같은 인물이 조직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그가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이번 일을 마친 그 때에 개봉에서 귀환하지 않고 떠나야 했다. 아무래도 화북지역은 살천문의 힘이 완전하게 미치는 지역이 아닌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론은 한가지였다.
"속하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한 본문 다른 형제라 하더라도 그를 제거할 이유가 없습니다."
곽흔이 위험을 느끼고 연락을 끊었다는 것은 본문의 형제들 중 누군가가 그를 공격했다는 말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자신을 제거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연락을 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피를 나눈 형제라 하더라도 피치 못해 해를 끼칠 수 있는 법이지. 자네는 어제 황임의 행방을 알고 있는가?"
부문주 황임. 문주는 역시 부문주를 의심하고 있는 것일까? 결국 부문주를 제거하실 생각일까? 이미 전대문주의 음영은 걷어버렸고, 완벽하게 통솔하는 입장에서도 부문주가 존재함으로서 문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생긴 것일까?
부문주 황임은 전대문주였던 부친이 차기문주로 현 문주를 지목하자마자 술과 계집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지 않은가? 폐인이 되다시피 하면서 문주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처럼 행동해오지 않았던가? 문파에 대한 일에는 거의 간섭하지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어제 아침에 서호(西湖)로 가신다고 나가신 후 오늘 오후에 돌아오셨습니다."
황임이 나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었고, 요사이 재미 들린 춘야루(春夜樓)의 동기(童妓)를 데리고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서호에 갔다 온 사람의 신발에 검은색 흙이 묻어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셈인가?"
검은색 흙이라면 탄(炭)이 섞인 흙을 밟았다는 말이다. 서호 근처에는 탄이 섞인 흙은 찾아볼 수 없다. 의심을 했더라면 유심히 보았을 것이지만 그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문주는 누군가에게 조사를 시켰다는 말이었다.
"…!"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이 일은 부문주가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았다. 청부를 받은 것도 그였고, 문주께 보고하지 않도록 은연중 말을 건넨 것도 그였다. 그제야 영목은 문주가 왜 이리 말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나가 보게."
문주의 이 말은 경고였다. 이곳을 다시 들어 올 때는 이 일에 대해 확실한 내용을 파악하여 보고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목숨을 내놔야 한다. 살수세계에 있어 두 번의 실수까지 용서를 했다면 세 번이란 기회는 아예 없는 것이다. 영목은 돌아선 문주의 등에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는 그곳을 나섰다.
음호를 남겨야 했다. 곽흔이 볼 수 있도록 그가 사라진 곳에서부터 그가 은신해 있을 곳으로 예상되는 장소라면 어디든지 음호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직이 그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는 음호 말이다. 최소한 자신에게 연락을 줄 수 있는, 또한 곽흔이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선을 내세워야 했다.
살천문의 문주. 우교(偶矯)는 영목이 나간 후 고개를 저었다. 영목은 꼼꼼하고 치밀한 자였다. 이 정도 말을 해주었으면 이제 이 일의 진상을 캐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은 답답해왔다. 어렴풋이 예상했던 그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전대문주이자 자신의 사부. 당신의 아들을 제쳐두고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한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과 버금갈 정도의 능력을 가졌고, 살천문 내의 인물들도 차기문주는 황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황임을 마다하고, 한때 살천문을 떠났던 자신을 불러 문주자리를 내 준 것은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의혹이었다.
자신이 생각하지 않았던 곡절이 있을 터였다. 과거 어느 한 시점에서 벌어졌던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그의 막연한 추측은 점차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이제 황임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시기였다. 동생처럼 생각해 오던 터였지만 그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빨리 처리하는 것이 나았다.
(황임… 차라리 네가 실수한 것이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사부의 마지막 부탁이 그의 목에 가시가 되어 걸리고, 가슴에 응어리를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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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천의는 다음날 오시(午時)가 되어서야 봉취루를 나섰다. 그는 정말 취해있었다. 그는 그곳을 갈 때 지독하게 술 냄새를 풍기며 갔다. 그리고 그곳을 나올 때도 지독하게 술 냄새를 풍기며 나왔다. 다른 점은 그가 들어갈 때는 술을 먹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가 나올 때에는 정말 취해다 못해 술에 전 상태였다.
또 한 가지 다른 것이 있었다. 그곳에 갈 때는 인피면구를 쓰고 남의 이목을 피해서 갔지만 나올 때는 본래의 얼굴로 남의 이목을 피하지 않고 나왔다. 그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제 세상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비칠거리는 걸음걸이는 똑같았지만 나올 때는 진짜 취해서 비틀거렸다. 밤이 새도록 마시고, 그 다음날 오시가 되도록 계속 술을 마신 사람이라면 취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더구나 술 상대가 자신의 형제와 같은 사람들이라면 취하고도 싶을 것이다.
그는 술이 취해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면서 지나가는 행인과도 부닥쳤으며, 고래고래 악을 쓰기도 했고, 노래도 흥얼거렸다. 담장을 잡고 술을 토하기도 했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기도 했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이슬이 콧물과 함께 그의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그를 은밀하게 뒤쫓는 자들은 많았지만 그는 의식하지 않고 청화원으로 들어갔다. 그가 취한 것은 분명했고, 그 뒤에서 그를 욕하는 단 한사람이 있었다.
(저 자식 미친 놈이구만. 저런 놈을 왜?)
개봉의 독안개였다.
(제 55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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