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골과 화개골,녹음과 옥계수에 안긴다

장마 뒤 도시를 박차고 나갈 사람들을 위하여

등록 2005.07.15 02:37수정 2005.07.1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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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면 폭발하듯 피서를 떠날 도시인들을 생각하며 피아골과 화개골에 가봤다. 산이나 계곡은 바다와 함께 2대 피서지 중 하나다. 계곡은 산에서 나는 수많은 물줄기들을 모아 강을 거쳐 바다에 이르게 한다. 산-계곡-바다는 자연의 생명순환 동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볼거리 이야깃거리 많은 지리산 계곡


이런 '거시적'인 생각을 하며 계곡에 들면 계곡의 물소리가 훨씬 장엄한 맥박으로 들려올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피아골과 화개골의 절정에 이른 녹음, 그리고 비온 뒤 불어난 물줄기는 도시인들의 '시멘트 문명' 스트레스를 받아주기에 넉넉한 관용과 완충력을 갖추고 있는 듯 보였다.

a 피아골

피아골 ⓒ 최성민

피아골과 화개골은 가까이 있으면서 지리산의 계곡 가운데 가장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이다. 높이 1915m의 지리산, 산이 큰 만큼 중산리계곡, 칠선골, 백무동계곡, 뱀사골, 피아골, 화개골, 화엄사계곡, 심원골, 대성골, 대원사계곡 등 수많은 계곡을 품고 있다. 가장 긴 계곡은 칠선계곡과 대원사계곡이라고 한다. 피아골은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화개골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서 각각 들어간다.

'피아골'이란 이름은 예전 빨치산과 토벌군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격전을 벌인 데서 유래된 것이라고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골 안쪽에 있는 직전(농작물인 피의 밭)마을의 이름에 관계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피아골 단풍'이 '지리산 10경'의 하나여서인지 피아골은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러나 봄 진달래, 여름 녹음, 겨울 눈 덮인 호젓함도 좋다. 연곡사를 지나 3km 쯤 가서 민박마을에 차를 두고 표고막터까지 약 2km의 오솔길(등산로)을 걸어가 봤다.

쇠를 가는 듯한 매미소리, "욱적- 욱적-" 하고 우는 매미소리 등 너댓 가지의 매미와 풀벌레소리가 길 아래 계곡물 소리와 화음을 섞고 있다. 그 '여름의 울림'은 약간 호들갑스럽기도 하여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일상을 일깨우는 각성제는 될 듯하다.


a 피아골 옥계수

피아골 옥계수 ⓒ 최성민


피아골은 이웃에 있는 화개골에 비해 고요하다 할 정도로 한적하다. 길은 잘 포장돼 있으나 차는 어쩌다 오간다. 피아골 양쪽엔 옴팍한 곳마다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 집들이 밤에 불을 켜면 마치 스위스 인터라켄에 온 듯하다. 워낙 높고 큰 봉우리들에 기대어 아득하게 들어선 마을 집들이라 불빛이 별빛처럼 보인다.

a 피아골 마을

피아골 마을 ⓒ 최성민


화개골은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어서 예전 장터의 기능이 활발했을 때는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섞이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화개장터>라는 유행가에도 그런 말이 나오고 지역차별과 관련하여 화개장터의 입지가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끌기도 했을 것이다.


남도대교가 영호남 골 메울까?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의 어우러짐'의 상징(?)으로 2년 전엔가 위용이 당당한 '남도대교'가 화개장터 앞 섬진강에 가로질러 세워졌다. 경상남도와 전라남도가 함께 돈을 들여 세운 것이라고 했다. 구례군 간전면, 광양시 다압면 쪽과 화개장터를 잇는 다리이다.

a 남도대교

남도대교 ⓒ 최성민


남도대교를 세우고, 광주와 대구가 결연을 하고 시민대표(?)들이 오간다고 해서 '골'이 쉽게 메워질까? 그렇다면 남북통일이 된 만큼이나 감격스러울 것을. 그런 '소박한' 노력이야말로 눈물겨운 것이고, 지금처럼, 아니 예전처럼 또는 앞으로도 언론인, 지식인, 운동권이 문제의 원인과 소수에 의한 음모(?), '가해와 피해의 왜곡구조'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한 풀릴 수 있는 문제일까?

여행길에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구? 지리산과 백운산을 누를 듯한 남도대교의 자만심을 뻔히 보면서 화개장터에 서서 이런 생각이나 어떤 상념이 들지 않는다면 그를 진정한 여행객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남도대교 덕에 정감있는 우리 토속 '화개줄나루'만 사라져 버렸다.

십수년 전에 화개골이나 화개장터를 다녀갔다가 요즘 화개골에 와서 화개장터의 정취를 찾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장터골은 한 집 건너 식당, 두세 집 건너 여관이고(좀 과장하면) 온천사우나도 생겼다. 장터골 다리 건너편에 새로 시장터를 마련해 놓긴 했다.

쌍계사 들머리 근처엔 십년 전에 호텔이나 콘도용으로 짓던 거대한 시멘트건물이 있는데 부도가 난 건지 짓다만 채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한 마디로 화개골은 무척 활력이 넘쳐서 좋지만 '관광 상업주의'의 기승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a 화개골 십리벚꽃길

화개골 십리벚꽃길 ⓒ 최성민


원래 화개골은(지금도 그렇지만) 지리산 여러 골짜기 중에서도 구경거리와 이야깃거리, 산에서 나는 것이 풍부해서 가장 살만한 골짜기였다. 이 골짜기에 절과 암자가 100개나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 뿌리는 상업주의 홍수에 휩쓸려가지 않아, 쌍계사와 칠불사가 건재하고 화개장터에서부터 칠불사에 이르는 길 곳곳에 차밭과 이름에 아취가 절절 넘치는 전통찻집들이 여행객을 맞아준다. 그리고 그 길목에 있는 십리벚꽃길의 우람한 벚나무의 울창한 이파리가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한여름의 녹음 그늘을 지어준다.

a 화개골

화개골 ⓒ 최성민


운치있는 모암마을 흔들다리

화개골 중간쯤 용강마을엔 예전에 대밭이 울창해서 겨울에 되새떼가 몰려들곤 했다. 되새떼라면 한낮에는 먹이를 찾아 흩어지고 석양 무렵 대밭 잠자리에 일제히 돌아오면서 한 30분 동안 날렵한 발레리나들 동작의 떼춤(군무)으로 화개골 하늘과 골짜기를 온통 시커멓게 채우던 그 작은 새들(영화 <취화선>에도 되새떼의 군무 장면을 썼더군) 말이다. 그러나 언제인가 마을사람들이 똥싸는 게 귀찮아서 대나무들을 베어버린 뒤론 오지 않는다. 그 세계적인 자연생태 관광거리가….

a 모암마을 가는 다리. 새로 만든 시멘트 아치형 다리이다.

모암마을 가는 다리. 새로 만든 시멘트 아치형 다리이다. ⓒ 최성민


용강마을 건너편엔 모암마을이 있다. 늘 급물살이 내려오는 개천 건너 모암마을로는 그림같은 흔들다리가 놓여 있었다. 관광객이 보기엔 재미있고 앙증맞은 다리였겠지만 마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건너다니기엔 불편했겠기에 그 옆에 거대한 시멘트다리를 세웠다. 아치형으로 멋까지 부렸다.

한편으로, 마을사람들의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문화재감인 그 흔들다리를 그대로 두고 쓴다면 관광객의 눈길을 훨씬 끌어 주민소득에 큰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흔들다리는 지금 아치형다리 옆에 하릴없이 걸려있다.

a 예전에 쓰던 모암마을 흔들다리

예전에 쓰던 모암마을 흔들다리 ⓒ 최성민


a 화개골 차밭에서 기계톱으로 찻잎을 깎고 있다.

화개골 차밭에서 기계톱으로 찻잎을 깎고 있다. ⓒ 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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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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