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22회

등록 2005.07.15 07:49수정 2005.07.15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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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놈들… 합공할 셈이냐?"

무의식 중에 뱉은 말이었다. 담천의를 공격할 때 자신의 수하들이 합공했다는 사실을 벌써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당황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미 나타난 인물들을 내심 대략이라도 파악해 보자, 두 명이라면 몰라도 세 명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대들이었다. 더구나 부상을 입은 몸으로 이미 점차 기력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사실 병기를 익힌 것보다 권이나 장을 익힌 인물들에게 치명적인 약점은 권이나 장이 공력을 쉽게 소모한다는 점이었다.


언무탁은 백렴을 공격을 맞받아치지 못하고 몸을 뒤틀며 날아오는 제철륜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제철륜의 무서움을 익히 알고 있던 까닭이었다.

"미친 늙은이 같으니라구… 비겁…? 비겁은 개나 물어가라고 해. 우리는 무인(武人)이 아니야. 초혼령이 발동되면 우리는 그저 인형일 뿐인지. 아니 남들은 그러더군. 귀신이라고… 우리는 그저 초혼령의 명령에 죽고 사는 귀신일 뿐이야."

슈우우----!

백렴은 여전히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가 투덜거린다고 해서 그의 공격이 멈춰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른 손을 빠르게 뒤집으면서 삼장을 쳐냈다.

퍼--퍼-- 펑--


그의 공격을 급히 틀어막는 언무탁은 일순 뺨을 스치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뜨뜻한 액체가 뺨에서 흘러나와 목을 적셨다. 두칠의 제철륜이 그의 뺨을 스친 것이다.

"빌어먹을… 약속대로 저 늙은이의 입을 뭉개란 말이야. 뺨이 아니라니까…!"


백렴은 쉴 새 없이 지껄였다. 어떻게 공력을 운용하면서도 쉴 새 없이 떠들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두칠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이며 그의 두 팔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허공을 휘저었다.

"입을 뭉개는 건 네가 할일이지 내일이 아니잖아. 나는 저 늙은이 어깨 하나만 떼어내면…."

두칠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제철륜에 의해 언무탁이 주춤하는 사이 지금껏 움직이지 않고 있던 황원외가 일순 움직이자 언무탁의 오른팔이 잘려지며 허공에서 피를 뿜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백렴의 공격을 막고, 두칠의 제철륜에 신경쓰다보니 움직이지 않고 있던 황원외에 신경쓰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일격필살의 일도는 움직이자마자 베어갔던 것이다. 황원외는 관외이흉과의 승부 후에 한층 더 높은 깨달음이 있었는지 그의 도는 살기나 예리함마저 감추고 있었다.

"젠장…. 내 할일이 또 없어졌구만."

두칠이 투덜거리며 언무외의 좌측으로 파고드는 순간 비틀거리는 언무탁의 입을 향해 백렴의 권이 작렬했고, 피와 함께 허연 이빨들이 허공에 튀었다. 그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로 두칠의 제철륜이 박혔다.

"허--억---!"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가슴과 등, 그리고 입에서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나왔다. 한때 천하제일인의 자리를 넘보았던 이혼권 언무탁은 너무 쉽게 무너졌다. 몸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어느 정도 버텼을 테지만 이미 가슴뼈가 드러날 정도로 부상과 공력을 소모한 상태에서 대항하기엔 세 사람의 합공은 너무나 가공했다.

언무탁의 눈에는 아직도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불신의 기색이 서려있었다. 그동안 너무 틀어박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옛말대로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자연스런 이치일까? 혼미해지는 그의 귀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죽이지 말랬잖아."

여인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질책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죽이지 않았어. 그래도 주공께 무례했으니 한 팔은 잘라야 하고, 주모께 욕을 해댔으니 그 방정맞은 입은 짓뭉개놔야 하잖아. 괜찮아. 아직 숨은 붙어 있을 걸?"

대답한 사람은 백렴이었다. 그곳에 들어 온 여인은 단사(彖辭)로 그녀의 홍의는 얼룩진 피로 더욱 붉게 보였다. 그녀까지 들어오자 네 남녀의 얼굴에는 지금까지의 장난기가 가시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그들은 담천의 앞에 나란히 부복했다.

"천선위(天璇衛)의 위장 백렴이 초혼령주를 뵈오."

천선(天璇)은 북두칠성 중 두 번째에 위치한 별로 도가(道家)에서는 거문성(巨門星)이라 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에서 복(福)을 준다는 별이다. 이어 두칠은 천기위(天璣衛), 황원외는 천권위(天權衛)의 위장으로 복명했다.

"창문에 돌을 던지고 비명을 질렀던 여인은 누구요?"

"저희 형제였습니다. 영주의 위험을 감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죽었소?"

"저들은 이십 명이 넘었습니다. 다행히 죽은 아이와 함께 있던 아이가 무사히 연락을 주어…."

단사의 대답에 담천의는 기대고 있던 기둥에서 스르륵 미끄러지며 주저앉았다.

"나는 또 한 사람에게 목숨의 빚을 지게 되었군."

그는 자책했다. 누군가 자신을 노릴 것이라 생각했어야 했다. 그가 기습을 당하고 누군가가 희생되었다면 그는 빚을 진 것이다. 단사가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용서를 빌었다.

"속하들의 불찰이 주공과 주모께 심려를 끼쳤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초혼령주의 안위는 그녀의 책임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옥형위는 북두칠성의 다섯번째 있는 별로 도가에서는 염정성(廉貞星)이라 일컫는다. 북두칠성의 중심을 잡아주는 별로 임금이 권력을 가지게 하는 역할을 하는 별이다. 그녀는 이마로 바닥을 찧고 있었다. 자칫 모양새로 보아 자신의 신체 어딘가에 해를 가할 태세였다. 담천의는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무공을 익혔으니 내 한 몸 능히 지켜야 하나 그러지 못하였으니 오히려 부끄럽소. 그만두시오."

"균대위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이 우선하고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엄격한 곳입니다. 주군을 지키지 못하면 속하들 역시 살아있음이 부끄러운 법. 속하들까지 죄인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아마 부친을 지키지 못하고 죽게 만든 그 일을 여전히 후대의 업보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담천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는 무인이오. 더구나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일을 수치스런 일이오. 앞으로도 역시 마찬가지일거요."

그 말에 단사는 바닥에 머리 찧는 동작을 멈췄다. 상명하복이 우선이라면 따라야 하는 것이다.

"두형!"

두칠은 변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황원외 역시 변해 있는 것 같았다.

"황형과 함께 저 자와 쓰러진 여인에게서 뭔가라도 건져주겠소? 전에 말했던 내 방식대로 말이오."

담천의의 말은 몽화를 만났던 다관에서 두칠에게 하겠다고 한 고문방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한쪽 손을 자르기 시작해서 사지를 자르는 아주 간단하고 무식한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존명! 영주께서는 걱정하지 마시길…."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언무탁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황원외가 담천의를 한번 더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그것을 본 담천의가 옆에 서 있던 송하령에게 나직이 말했다.

"내 옷 좀 주시겠소."

이미 담천의는 탈진한 상태였다. 그는 혼미한 정신을 추스르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가 정신을 잃지 않고 견디는 것은 강인한 정신력 덕이었다. 송하령이 빠르게 움직이며 담천의에게 옷을 입혔다. 꼼꼼했지만 그 속도는 매우 빨랐다.

"백렴이라 하셨소? 나를 부축해 이곳 유곡의 거처에 데려다 줄 수 있겠소?"

옷을 걸치자마자 담천의는 유곡의 거처로 향하고 싶었다. 유곡, 몽화는 분명 한 가지 요구를 했었다. 자신에게 위험이 닥치면 몽화 자신도 위험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 그 때 와 달라고 했다. 그는 약속을 지켜야 했다.

"명을 받드오이다."

백렴이 그의 오른쪽을 부축하자 단사가 재빨리 탈골된 담천의의 왼쪽 어깨를 맞추었다. 하지만 일부 뼈가 상했는지 왼쪽어깨는 퉁퉁 부어 있었다. 그녀 역시 담천의의 왼쪽을 부축했다. 그들이 실내를 벗어나기도 전에 언무탁의 비명소리가 고막을 찢고 있었다.

담천의의 뒤를 따르는 송하령의 눈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사랑하는 이가 얻은 힘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언무탁의 공격에 사랑하는 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녀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시간을 끄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고막을 파고드는 전음을 들었을 때 그녀는 긴가민가했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믿을 수가 없었고, 더구나 자신이 황당하게 쓰러져라 외치면 두 흑의인이 쓰러질 것이라고 하는 데에는 오히려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시키는대로 자신이 그렇게 상황을 만들어 가기는 했지만 그런 결과가 오지 않는다면 더욱 위험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 완벽했고, 담천의로부터 어렴풋이 들었던 균대위의 힘은 너무나 엄청났다. 십이지신(十二支神)을 뜻하는 천지회의 십이장로 중 한명인 언무탁이 저리도 맥없이 당할 정도라면 균대위의 힘은 정말 소문대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이 그녀는 너무 기뻤다.

(제56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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