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무슨 사술을 쓴게냐!"
송하령은 언무탁의 고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이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제야 안심이라는 표정이어서 언무탁을 더욱 어리둥절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녀가 미소를 띠며 대답하려는 순간 밖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아--악"
"윽---!"
비명소리는 한두 마디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 짧아서 여러 명이 내지른 소리였지만 한 명이 지른 비명과 같이 들릴 정도였다. 그제야 언무탁은 누군가가 온 것을 알았다. 잠시 송하령에게 정신을 집중하는 바람에 주위의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그의 눈에 쓰러진 두 흑의인의 머리끝과 발바닥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 바닥에서 그들의 용천혈을 뚫어버리고 천정에서 백회혈에 암기를 박은 것이었다. 그녀의 사소한 동작에 급히 뒤로 물러나느라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너무나 간단한 속임수에 너무 간단히 속아 버렸다.
그것은 그의 탓만도 아니었다. 송하령이 너무 태연했고, 자신이 있어 보였기 때문에 그녀의 손에 들린 화탄이 굉천뢰일 것이라 믿게 되었고, 주위에는 그의 수하들이 매복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도와줄 자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폭갈을 터트리며 송하령을 향해 쏘아갔다.
"이 죽일 년!"
위이잉---!
그의 주먹에는 참을 수 없는 노기가 담겨 있어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했다. 하지만 공격하는 언무탁의 주위로 두 개의 암기와 하나의 도, 그리고 머리를 박살내려는 위맹한 장력이 덮쳐 내렸다.
퍼--퍼--펑!
송하령을 죽이는 것은 나중 일이었다. 우선은 자신에게 파고드는 두개의 암기와 빛살 같은 도기, 그리고 위맹한 장력을 떨쳐내야 했다. 언무탁의 신형이 빛살처럼 움직이고, 그의 양 주먹이 허공에 희미한 권영을 구름처럼 만들어냈다.
"웬 놈들이냐!"
가까스로 암기와 도, 그리고 장력을 피해내고 자리를 잡은 언무탁의 주위로 어느새 실내에 나타나 공격을 퍼부었던 세 명의 인물들이 품(品)자 형태로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뜻밖에도 두칠(斗七)과 황원외(黃員外), 그리고 조국명과 함께 있던 백렴(柏廉)이었다.
"당신의 제삿날을 명년 오늘로 만들어 줄 사람들이지. 우선 주모(主母)께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댔으니 입부터 뭉개 주는 게 순서이겠고, 주공(主公)의 어깨를 쳤으니 팔을 으깨버리는 것이 두 번째겠지. 하지만 우리는 감사하고 있어."
말을 한 사람은 백렴이었다. 주모라는 말에 송하령은 얼굴에 홍조를 떠올리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조금 전 자신에게 전음을 보내 이 일을 처리하게 한 인물이다. 믿지 못할 뜻밖의 말이었지만 다른 선택이 이을 수 없었다. 훤앙한 모습을 갖춘 백렴은 전형적인 귀공자였고, 그의 음성은 낭랑하여 아무리 험악한 말을 한다 해도 시를 읊조리는 것 같이 들렸다.
"두형(斗兄)…?"
가까스로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싣고 있던 담천의가 두칠과 황원외를 바라보며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두칠은 가볍게 포권을 취해보였다.
"영주(令主)께서는 잠시 쉬고 계시길… 이 작자부터 손을 봐준 후에 인사를 드리겠소."
그 모습을 본 언무탁의 얼굴에 기이함과 경악의 표정이 스쳤다. 두칠이 말한 영주가 무슨 뜻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네놈들은 이미…?"
"이제 당신에게는 기회가 사라졌지. 아주 영원히 말이야. 내가 감사하는 것은 말이야… 당신이 왜 주공을 공격했는지 알면 일이 쉽게 풀릴 것 같거든. 천지회의 십이장로(十二長老) 중 하나인 당신이 왜 주공을 노렸을까?"
백렴의 태도는 언무탁의 생명이 이미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언제 언무탁이 이렇게 무시를 당해보았는가? 그는 참을 수 없는 노화를 터트리며 핏물과 함께 가래침을 뱉었다.
"미친놈들. 네 놈의 입부터 찢어놔야겠군."
언무탁은 말과 동시에 갑자기 백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늙은 생강이 맵다고 그는 이미 주위의 수하들이 모두 죽었음을 알았고,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세 명의 인물들이 절대 하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길(吉) 보다 흉(兇)이 많을 것이라 판단하고 일단 한 명씩 처치하려 한 것이다.
우웅---!
그가 다가들자 무시무시할 권풍을 일으키며 백렴의 얼굴과 가슴을 격타해왔다. 아예 일권에 죽이려 작정하고 펼친 것이라 강맹하기 작이 없었다. 백렴으로서는 빨리 피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헌데 백렴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쏘아오는 언무탁을 향해 오른손을 펼쳐 장력을 쳐내는가 싶더니 왼 손으로는 주먹을 말아 쥐고는 한 순간에 열세 번을 내 뻗었다.
위맹한 장풍은 주위 공기를 쓸어 휘말리게 하고, 언무탁의 쏘아오는 속도를 느리게 하였다. 동시에 그의 권에서는 붉은 빛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피처럼 붉은 기운이 구(球)를 이루며 언무탁의 권경을 향해 마주쳐 갔다.
쿠콰--쾅!
엄청난 폭발음이 일며 전각 전체가 뒤흔들렸다. 주위에 있던 탁자와 의자가 부셔지며 폭풍우에 휘말린 듯 사방으로 날라 갔다. 천정에서도 먼지가 우수수 떨어져 내려 자칫 천정이 무너질 것 같았다.
백렴의 신형이 두 발자국이나 밀렸다. 가슴의 기복이 눈에 띠게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 이번의 격돌에서 이득 본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한때 천하제일권이었던 언무탁과 엇비슷하게 대결할 인물이 얼마나 있을까? 더구나 백렴의 나이는 기껏 삼십대 중반이었다.
"으--음---!"
한발자국 물러 선 언무탁의 입에서도 침음성이 흘렀다. 그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물론 그는 담천의와의 일전에서 가슴뼈가 보일 정도로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미 피를 많이 흘린 상태에서 자신의 공력을 십성까지 운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주쳐 본 상대의 우위는 놀라울 정도였다.
"화권금장(火拳金掌) 악조량(岳操梁)과는 무슨 관계냐?"
악조량. 오른 손엔 금강장(金剛掌)을 익히고, 왼손엔 화홍권(火灴拳)을 연성했다던 인물. 신검산장에서 마노가 섭장천의 손에 죽었다고 말했던 인물이다.
"내 사부지. 하지만 별로 가르쳐주지 않아서인지 위력이 신통찮은 것 같군. 노인네가 섭노괴와 붙고 나서 한 오년 동안 빌빌하다가 돌아가셨거든."
과거 자전마창(紫電魔槍) 온후극(穩厚戟)에게 초혼령이 떨어졌을 때 그의 친구인 섭장천은 그의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 달려갔다. 그러나 천하제일인이었던 그도 초혼령을 막지 못했다. 마노와 도노, 그리고 악조량 때문이었다. 섭장천은 그 때 오른팔이 잘렸고,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천마곡에 갇혔던 것이다.
화권금장 악조량은 그 때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죽은 모양이었다. 섭장천까지도 자신의 오른팔을 떼어 준 것에 대한 대가로는 후했다고 한 말로 보아 악조량은 대단한 인물이었던 모양이었다.
언무탁은 시선을 돌려 두칠과 황원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네 놈이 사용하는 암기는 제철륜(蹄鐵輪)이로군. 그렇다면 마형귀(馬荊鬼) 두광(斗廣)의 제자가 분명하고, 저 자는 뇌흔도(雷痕刀) 운보(橒甫)의 제자인가?"
제철(蹄鐵)은 편자, 즉 말발굽을 말한다. 마노가 금적수사 부부를 살해할 때 사용하던 그 암기다.
"사부 겸 부친이지. 늙은이가 꽤 눈도 좋고, 눈치도 빠르군. 우리에 대해 금방 아는걸.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야."
두칠은 싱글거리며 발을 미끄러뜨렸다. 오래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백렴이 좌측으로 움직였다.
"이거 자존심 상해 참을 수가 있나. 늙은이 한 번 더 붙어 보자구."
백렴은 툴툴거리며 곧 바로 왼쪽 주먹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두칠의 손에서 두개의 제철륜이 허공을 갈랐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