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음악의 유일한 지침서, <악학궤범>은 어떤 책? | | | 음악, 무용, 국문학, 복식사, 과학사, 미술사 등 귀중한 자료 | | | |
| | ▲ ‘연구실’의 음악이론 중 ‘12율명’을 해설해 놓은 것이다. 음악이론은 음률의 생성 방법, 12율, 5성, 악조, 율관 등 음악의 기초 이론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 | <악학궤범(樂學軌範)>은 조선 음악의 유일한 지침이 된 악전(樂典)으로 9권 3책으로 이뤄졌다. 1493년(성종 24) 왕명에 따라 예조판서 성현(成俔)을 비롯하여 무령군(武靈君), 유자광(柳子光), 신말평(申末平), 박곤(朴棍), 김복근(金福根) 등이 엮은 악규집(樂規集)이다.
다음은 ‘디지털 악학궤범’ 개발에 직접 참여했던 이숙희 국립남도국악원 학예연구사가 소개한 <악학궤범> 내용이다.
<악학궤범>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이 문헌의 역사성, 궁중 행사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의 종류와 내용, 공연에 수반되는 악기와 의물 그리고 복식(형태, 재료, 색채, 규격, 제작방법)까지도 함께 기록해 놓은 내용의 실용성, 그 이전부터 전승되어 오는 전통문화를 내면화 해놓은 문화사적 의의 때문이다.
전 세계 음악사(音樂史)에서 <악학궤범>과 같은 형식과 내용을 갖춘 악서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학궤범>의 진면목을 밝히기 위해 그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세계음악사에 <악학궤범> 같은 형식과 내용을 갖춘 악서(樂書) 없다
먼저 음악 부문에서 음악이론과 각 공연에 따른 악대제도, 악기편성, 악기, 악보, 악조, 악곡의 종류, 악곡의 가사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 놓았다. 현재는 ‘궁중’ 혹은 ‘왕실’이라는 실체가 없어졌지만, 그 음악 문화는 전승되고 있다. 따라서 조선조 음악문화를 제대로 전승하기 위해서는 <악학궤범>을 필수적으로 참고해야 하며, 조선시대에도 내내 그렇게 해왔던 일이다.
무용 부문을 살펴보면, 고려시대 정재와 조선초기 새로 창제한 당악정재와 향악정재를 모두 수록해 놓고 있다. 각 춤의 안무도, 무용수들의 등장과 퇴장, 무용의 반주음악, 춤추는 절차, 창사의 종류와 가사, 무용에 사용하는 의물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고려시대 정재가 조선초기에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또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알 수 있다.
국문학과 국어사의 측면에서도 <악학궤범>은 중요한 연구 자료이다. 각종 음악의 가사와 창사의 가사를 통해 15세기 악장(樂章)문학을 연구할 수 있으며, “내 님을 그리와 우니다니 山 접동새난 이슷하요이다”와 같은 고려가요 가사 기록에 사용된 문자는 15세기 한글 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
<악학궤범>은 복식사의 측면에서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악학궤범>에는 연주자와 무용수들이 착용하는 복식을 모두 기록해 놓았고, 직물의 종류, 문양, 색상, 치수를 밝혀 놓았을 뿐 만 아니라 형태를 기록해 놓음으로써 현재도 재현 가능하게 해 놓았다. <악학궤범>은 조선초기 복식사 특히 연주복 변천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자료이다.
<악학궤범>이 가지는 과학사의 의의는 악기와 의물의 제작 재료, 규격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는 악기 제작에 사용하는 나무의 종류가 오동나무, 밤나무 등 몇 종류로 제한되어 있지만, <악학궤범>에는 약 80여종의 악기재료가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악기 재료를 통해 15세기 당시 수종(樹種)을 파악할 수 있고, 당시 자연환경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또 악기와 의물, 그리고 복식의 치수를 기록해 놓았는데, 악기와 의물에는 영조척, 복식에는 포백척을 사용하였다. 이와 같은 척도를 통해 15세기 도량형을 추정할 수 있다.
<악학궤범>의 미술사적 의의는 색채와 문양에서 찾을 수 있다. <악학궤범>에는 악기, 의물, 복식 등의 재료와 색채 등에 대한 설명이 있고 그 형태를 그려놓았다. 악기, 의물, 복식에 사용된 색채는 우리나라 전통 색채 혹은 15세기 색채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악기, 의물, 복식 등에 그려진 문양은 우리나라 전통문양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다만 색채의 경우 명칭만 있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악학궤범>은 음악, 무용, 국문학, 복식사, 과학사, 미술사 등 귀중한 자료
조선조는 예악사상을 사회 문화 제도의 바탕으로 삼았고, ‘고악(古樂)’을 가장 이상적인 음악으로 여겨 주나라 제도를 따라 악제를 따르고자 했으며, 당송(唐宋)의 제도를 수용함으로써 그것을 실현하였다.
그러나 그 음악에 담긴 사상은 ‘중화(中和)사상’이며, 그 원리는 ‘자연’ 혹은 ‘자연의 법칙’이다. 고악이 유교 음악사에서 전범(典範)이 되는 이유는 인간심성을 바르게 하고 사회를 교화하는 공효가 있기 때문이고, 이것은 음악 자체가 가지는 가치와 그 음악을 운용한 통치자의 능력, 이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중화’는 古樂 즉 교화의 공효가 있는 이상적인 음악이 되게 하는 조건으로서, 음악 그 자체가 중화의 속성이 있으며, 자연을 바탕으로 해야만 중화의 기(氣)를 얻는다. ‘자연’이란 인위적인 것의 반대 개념으로, 첫째는 물질적 의미의 자연이고, 둘째는 이치적 측면의 자연 즉 자연의 법칙 이다. 물질적 자연은 자연물 자체를 의미하고, 이치적 자연은 음양, 5행, 8풍, 8괘, 10간, 12지, 12차, 24절기, 28수 등 자연의 법칙을 의미한다.
<악학궤범>의 음악이론, 음악 무용의 구성원리, 악기, 의물, 복식 등의 형태와 색채 등은 이와 같은 ‘자연’ 혹은 ‘자연의 법칙’이 적용되어 있다. 이와 같이 <악학궤범>은 사상사(思想史) 면에서도 참고해야 할 문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악학궤범>이 현대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기록의 내용과 방법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데 있다.
(자료: 이숙희 국립국악원 연구원 제공)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