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114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8.03 08:07수정 2005.08.03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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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흑호대 조련장.
돌무더기를 쌓아 만든 돌담이 외곽으로 연해 있고 수십의 흑호대 조련병들이 매달려 있었다. 대개 사람 키 하나만 한 여염집 담장을 닮아 있으나 어떤 것은 제법 정교하게 쌓은 성벽도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게야! 그러고도 네놈들이 흑호대야? 냉큼 다시 해 봐!”


다섯 명이 하나의 오를 이루는 흑호대 편제에 맞춰 다섯 명씩 조련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오 하나가 성벽 앞에서 뭉그적거렸다. 그곳에 대고 지르는 조금산이의 소리였다.

“가장 가벼운 놈을 선봉으로 삼고 나머지 넷이 힘껏 밀어주란 말이야! 앞 엣 놈이 주춤한다고 멈추어 버리면 어떡하나!”

조금산이가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눅이 든 흑호대 조련병들이 장대를 들고 다시 뒤로 물러났다. 체구가 가장 작은 자가 앞에서 장대의 끝을 팔 아래 끼워 잡았고 나머지 네 명이 뒤에서 장대를 받쳐 들었다.

“헙!”

앞 선 자가 발을 굴러 신호를 하자 오 전체가 도움 닫아 뛰었다.


‘타다닥’
20여 보를 뛰어와 뒤의 네 명이 장대를 밀어 올리자 장대의 끝에 매달린 자가 성벽을 차고 오르며 기를 썼다. 그러나 네 길 넘는 성벽을 딛고 올라 겨우 한 꼭지 남겨 놓은 지점에서 멈춘 대원은 버둥거릴 뿐 성벽 위에 거뜬히 올라서질 못했다.

“이 바보야! 거기서 멈추지 말고 네 팔로 장대를 밀어서 올라서란 말이다. 장대 길이가 안 되는데 밑에 동료들이 더 이상 어찌 올리겠냔 말이다!”


조금산이의 호통에도 성벽에서 버둥거리던 대원이 결국 주르륵 미끄러졌다. 밑에서 받치던 장대도 우르르 무너졌다.

“너희 같은 놈들은 흑호대에 필요가 없어! 내일이면 다시 원래 부대로 돌려보내버리겠다. 어떻게 너희 같은 놈들이 뽑혀 예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조금산이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내뱉었다. 이제까지 수십 번 내뱉은 말이었지만 정작 내보낸 자는 없었다. 능력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본영과 수영 내에서 내로라하는 자들이 뽑혀온 터였다. 조련하는 자 중 누구도 자기와의 싸움에 져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자는 없었다.

“대총 나으리,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미끄러져 떨어진 자가 눈에 힘을 주며 간청했다. 미끄러지면서 돌 벽에 긁힌 앞가슴이 온통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소대장이라 부르렷다. 편제가 바뀐 지 언제인데….”

“소대장님, 한 번만 더….”

실패한 조련병들이 입을 모아 청했다.

“마지막이다.”
“고맙습니다. 소대장님!”

기회를 얻은 오가 다시 성벽에서 물러섰다. 이젠 다른 오조차 조련을 멈추고 이들을 지켜봤다.

“다시 말하지만 앞에 선 자가 벽을 두려워하지 말고 속히 딛고 오를 것이며, 마지막에 이르러 멈칫거리지 말고 팔로 마지막 도약을 하라. 또한 밑의 네 명은 장대 밀기를 끝까지 할 것이며 마지막에 이르러 튕기듯 최대한 장대를 밀어 올려야 하느니라!”

“예.”

조금산이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헙!”

선두 대원의 신호에 맞춰 도움닫기를 하는 오가 빠르게 움직였다. 네 명이 미는 장대의 힘을 발로 오로지 받으며 잽싸게 성벽을 타고 올랐다.

“으야압!”

이윽고 장대 끝의 대원이 성벽 위로 튕겨져 올라섰다.

“와아! 잘했다!”

구경하던 다른 대원들이 모두 환호했다.

“뭐 하느냐? 빨리 밧줄을 내려!”

조금산이가 다그쳤다.
정신을 차린 대원이 몸에서 밧줄을 벗겨 성벽 여장에 걸었다. 두어 자 간격으로 매듭을 묶은 줄이 내려오자 나머지 네 명의 대원이 달라붙었다. 온전히 두 팔의 힘만으로 매듭을 잡고 오르는 동작이 흡사 비호같았다.

“됐다, 잘 했다! 그리하면 되는 것이야!”

조금산이가 손뼉을 치며 치하했다.

“자, 다음은 다들 기와담장을 습련하거라!”

조금산이의 말에 모든 대원이 기와 담장이 세워진 곳으로 갔다. 크고 작은 담장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고 실제로 사용 중인 목조 가옥들이 제대로 지어진 곳으로 마을 전투를 습련하는 조련장이었다.

“이것이 양반가옥의 보통 담장이다. 담에 오를 때는 기왓장이 떨어져 내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며 마당 안으로 뛰어 내릴 때는 반드시 마름쇠가 뿌려져 있다는 생각을 하고 뛰어 할 것이다. 한 번 동작을 보도록 하여라.”

조금산이 말을 마치자 두 명의 조련관이 나섰다. 한 사람이 먼저 담장에 등을 대고 손에 깍지를 낀 채 서자 다른 하나가 가볍게 몇 걸음을 내닫더니 상대편 손깍지를 딛고 훌쩍 담장을 뛰어 넘었다. 아무렇게나 던져도 날카로운 철침을 세우는 마름쇠는 뒤가 구린 양반들이 종종 담 밑에 뿌려 놓는 수가 있었으므로 그걸 감안해 담장으로부터 먼 곳에 착지했다. 몸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가뿐한 동작이었다.

“지금 본 것은 빠른 동작으로 담장을 넘을 때이니라. 만약 담장 안의 상황을 모르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동작이 좋으렷다.”

조금산이의 말에 따라 다시 두 조련관이 섰다.
아까와 같이 깍지를 낀 자의 손에 발을 딛고 고개를 내밀어 내부 사정 파악이 끝나자 두 손으로 담장 기와를 짚고 훌쩍 넘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넘을 경우엔 한 사람이 올라서서 지금처럼 끌어올리면 쉽다.”

두 조련관 중 하나가 담장을 곧장 뛰어넘지 않고 담장에 선채 손을 뻗어 깍지로 받쳐 주었던 동료를 들어 올렸다.

“작은 토담들이야 낙법으로도 쉬이 넘을 수 있겠으나 이런 담들은 반드시 동료의 도움이 필요하다. 말이 없어도 처음 선 자가 담에 붙어 동료를 넘길 것이며 맨 끝에 담장을 넘는 자는 반드시 밑의 동료를 들어 올려 준 후 함께 내려서야 한다. 살았든 죽었든 동료를 버리고 도망 나온다면 그건 흑호대원이 아니렷다. 알겠느냐?”

“예.”

“헌데 문제는 이런 담장이 문제다.”

조금산이 조금 멀찍이 있는 크고 높은 기와담장을 가리켰다. 어른 키 셋이 넘는 담장은 담이라기보다 작은 성벽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 같았다.
흑호대 조련병들은 기가 질렸다. 조선팔도에서 저런 기와담이 있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임금이 머물고 있는 곳, 바로 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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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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