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보다도 단 휴식을 아쉬워하면서도 순식간에 70여 명이 열을 지었다. 군장을 제자리에 풀고 총을 걸어 놓은 무리가 짚그늘막 안에 좌정했다. 조련관이 여섯 치 가량 길이에 두어 치 지름이 되는 대나무통을 손에 들어 보여 주었다.
"이것이 발화통이라는 것이야. 구조는 간단하다. 통 안이 반근의 화약과 이런 쇳조각으로 꽉 채워져 있다."
조련관이 창끝을 부러뜨려 놓은 것 같은 삼각형의 쇳조각을 보여주었다. 크기는 엄지손톱보다 조금 컸다.
"뚜껑을 열면 이렇게 닷푼 가량 튀어 나온 돌기가 보여, 이 돌기가 바로 보총의 공이와 같은 역할을 하느니라. 이 돌기 밑에 뇌홍이라는 발화장치가 들어 있어서, 요렇게 뚜껑으로 딱 내리치면 화약을 묻힌 심지가 대나무통 외벽을 타고 넷을 헤아릴 짬에 타들어 가는 게야. 그러니 그 전에 집어 던져야 한다. 이걸 그 때까지도 손에 쥐고 있다간 어찌 되는지 알지? 제 몸 하나 죽어 없어지는 것은 섧지 않겠으나 애꿎은 동료들까지 골로 가게 한다면 그 무슨 원통함이겠는가."
"우하하하…, 저 말씀은 아마 만득이 자넬 일컬음일세."
이 말에 앉아 있던 조련병 모두가 웃음바다가 됐다.
"던질 땐 요렇게 잡고, 힘껏, 이렇게 던져 주는 된다. 가급적 멀리 말이지. 그리고 던질 때는 우리 편이 놀라거나 상하지 않도록 '발화통'이라고 크게 소리 질러 주어야 한다. 이놈이 크기는 이래도 쇠편이 튀는 거리가 근 열 보가 넘으니 재수 없다간 제가 던진 발화통에 제가 다치는 수가 있음이니. 항상 엄폐물을 확보하고 던지든가, 아니면 죽도록 멀리 던지는 수밖엔 용빼는 재주가 없다. 다만 조심하여야 할 것은 절대 경사지에서 위를 향해 던지지는 말 것이야. 그랬다간 이 놈이 굴러 내려 밑에 있는 아군을 몰살할 터이니. 다들 잘 알겠는가?"
"예!"
조련병들이 대답을 하면서도 웃음을 머금은 채 만득이를 쳐다 보았다. 만득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 염려 붙들어 매! 안 던지면 안 던졌지 그리는 안 한다니까!"
좌중이 까르르 웃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많이 적응된 분위기였다.
"자 각자 흙을 넣은 대나무통으로 조작법을 익혀라."
뚜껑을 달고 무게까지 제대로 맞춘 연습용 발화통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맨 먼저, 왼손에 이렇게 쥐고 뚜껑을 돌려서…."
"저, 조련관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요."
조련관이 설명을 하는데 만득이가 질문을 던졌다.
"무엔가?"
자세를 취하다말고 조련관이 대꾸했다.
"저는 왼손잡이온데 오른 손에 쥐고 따면 안 될런지요?"
좌중이 푸하하 웃었다.
"이런…, 네 편한대로 하거라."
조련관도 할 말을 잊은 듯 어색한 표정만 지었다. 열 명씩 나와 연습용 발화통을 들고 실제 절차와 똑같이 한 후 투척했다. 삼십 보 앞에 있는 스무 자 지름의 구덩이에 정확히 넣는 것이 목표였으나 다섯 중 그 거리까지 나간 것이 겨우 셋이요, 그나마도 정확히 구덩이 안에 떨어진 것은 고작 하나에 불과했다.
"조급해 하지 말고, 너무 힘을 주지도 말 것이며 편히 던지거라!"
조련관이 호통을 쳤다. 다시 두 차례를 내리 던져 습련한 후 다음 줄이 나섰다.
"뚜껑 따고!"
"뚜껑 따고!"
조련관의 외침에 일제히 복명하며 연습용 발화통의 뚜껑을 열었다.
"점화!"
"점화!"
뚜껑의 돌기로 발화통의 뇌관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투척!"
"투척!"
열 개의 발화통이 휘리릭 날았다.그 중 하나는 십오 보도 날지 못하고 떨어진 반면 여섯 개가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오호, 이 쪽 분대는 밥값을 하는 자가 많구나? 구덩이 안으로 넣은 자 앞으로!”
"조련병 오판개!"
"조련병 오또판개!"
"조련병 김영중!"
"조련병 김영일!"
"조련병 유금항!"
"조련병 이칠복!"
여섯 명의 조련병이 관등성명을 대며 앞으로 나섰다.
"그래 너흰 뜀박질할 때부터 알아봤다. 사격만 잘 하는 줄 알았더니 재주가 많구나. 너희만 다시 한 번 해 보거라."
다시 한 차례 던졌으나 6개의 발화통이 모두 구덩이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너희 여섯은 더 할 게 없으렷다. 거리를 더 띄우고 따로이 습련을 하도록 하여라."
독사눈 조련관이 이들을 열외 시켰다. 그리고는 그 매서운 독사눈으로 땅딸보 만득이를 치켜보았다. 만득이가 잔뜩 얼어붙었다. 예정한 거리의 반도 날아가지 않은 발화통의 주인이 바로 만득이였다. 또 점심을 못 먹는가 싶어 뜨끔했다.
"내일부터는 실제 발화통을 던져 볼 것인즉, 그 때까지 이십 보 거리를 넘기지 못하면 발화통을 맡길 수 없다. 조련을 마칠 때까지도 발화통을 던지지 못하게 되면 자넨 실격이다. 실격된 후엔 이곳에 남아 급사노릇을 하게 되리니 그 때까지 알아서 처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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