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부시지 않아도 너를 눈부시게 할래

<방학특강>풀잎과 이슬, 그리고 거미줄의 상상력

등록 2005.08.09 09:27수정 2005.08.0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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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숲 속의 도서관 전경 -전남 순천시 주암면에 자리한 컴엔시 친환경 농업교육장

숲 속의 도서관 전경 -전남 순천시 주암면에 자리한 컴엔시 친환경 농업교육장 ⓒ 안준철

지난 8월 8일부터 11일까지 3박4일동안 순천시립도서관이 주최하는 <숲속의 독서캠프>가 순천시 주암면에 자리한 컴엔시 친환경농업교육장에서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학생 100여명을 대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어린 학생들과 숙식을 함께 하고 있는 이 행사에서 저는 첫날 강의를 맡아 아이들에게 시에 관한 얘기해 주고 왔습니다. 그 내용을 <방학특강> 형태로 정리해 봅니다... 기자 주

♠시, 하나

이슬

이슬은 풀잎에 달려
반짝이는 것인 줄만 알았네.
음식 쓰레기 들고
젖은 풀밭 길 헤쳐 가느라
발뿌리가 흥건해질 때까지도
나는 알지 못했네.

이슬도 이슬 나름
반짝이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오뉴월 땡볕에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도
상추랑 아욱이랑 부추랑
푸른 잎들이 남아 있는 것은
반짝이지 않고 뿌리로 내려간
이슬 때문이라는 것을.

◎감상

이슬은 풀잎에 달려 반짝일 때가 가장 아름답지요. 그래야 이슬답지요. 그런데 어느 날 음식 쓰레기를 버리러 밭에 갔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이슬도 이슬 나름 반짝이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그럼 반짝이지 않고 뿌리로 내려간 이슬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땅 속에 스며들어 사라지고 말았겠지요. 그 대신 남새밭 푸성귀들이 푸릇푸릇해졌겠고요. 풀잎에 달려 반짝이는 이슬도 아름답지만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 뿌리로 내려간 이슬이 더 아름답지 않나요?


a 길가 꽃밭

길가 꽃밭 ⓒ 안준철

♠시, 둘

풀잎과 거미줄

다음 세상이 있다면
나는 풀잎이 되고 싶다.


흔하디흔한 빗방울도
반짝이는 보석이 되게 하는.

나는 눈부시지 않아도
너를 눈부시게 하고
나는 반짝이지 않아도
너를 반짝이게 해주는.

다음 세상이 있다면
나는 거미줄이 되고 싶다.
어두운 풀숲 그늘 속에도
반짝이는 것들이 있다고 말해주는.


◎감상

사람은 누구나 반짝이는 삶을 살고 싶어 하지요. 너 거미줄이 될래? 아니면 반짝이는 이슬이 될래? 하면 당연히 반짝이는 이슬이 되고 싶어 할 거예요. 하지만 ‘나는 반짝이지 않아도 너를 반짝이게 해주는’ 거미줄 같은 삶을 꿈꾸어보는 것도 좋을 듯싶어요. 하긴 거미줄에 달린 이슬이 반짝이면 거미줄도 덩달아 반짝이고 말지요. 연극에서도 조연과 단역들의 역할이 크다고 하지요. 그들 덕분에 주연배우가 돋보이기도 하는데 누구나 주연만 맡으려고 고집을 부리면 안 되겠지요. ‘나는 눈부시지 않아도 너를 눈부시게 하는’ 그런 꿈을 여러분도 꾸어보지 않을래요?

a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 ⓒ 안준철

♠시, 셋

세상 조촐한 것들이

비온 뒤
세상 조촐한 것들이
잎새마다 빗방울 하나씩 달고
눈부셔하고 있다.

길 모서리, 혹은
돌 틈새에서 자란
세상 보잘 것 없는 것들이
흔하디흔한 빗방울 하나에
온 몸을 반짝이고 있다.

혼자서는 쥐뿔도 빛날 게 없어
서로 서로 눈부셔 하고 있다.


◎감상

세상에 흔하디흔한 것이 풀이고 빗방울이지요. 그것들 하나하나는 볼품이 없지만 풀잎과 빗방울이 함께 어울려 있으면 어떤 보석보다도 더 영롱하고 찬란하지요. 그런데 혼자서는 쥐뿔도 빛날 게 없어 서로 서로 눈부셔 하고 있는 것이 풀잎과 빗방울만일까요? 그래요.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요. 아무리 평범한 사람도 좋은 짝을 만나면 서로 서로 눈부신 사랑을 나누게 되니까요. 그 결실로 소중한 생명을 얻게 되기도 하고요. 평범한 사물이나 풍경이 시인의 상상력을 만나 한 편의 시가 되는 것도 같은 이치네요.

a 느티나무와 정자-정자에 앉아 아이들이 쓴 주옥 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느티나무와 정자-정자에 앉아 아이들이 쓴 주옥 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 안준철

나도 시인이 될래요

위에 소개한 세 편의 시는 관찰과 상상력을 통해서 써진 시들이에요. 관찰도 하나의 중요한 체험이지요. 거기에 평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랄까, 생각이랄까 하는 것들이 작용하여 시가 된 것이지요. 그것을 작가의 세계관이라고 해요. 그런 것 없이 그냥 머리에서 뚝딱 만들어내는 시는 아무리 그럴 듯하게 보여도 좋은 시라고 말할 수 없어요.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니까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시를 쓰는 사람이 먼저 감동을 받아야 해요. 그 감동의 순간을 잡아 언어로 옮겨 쓰면 남을 감동시키는 좋은 시가 되지요. 그런 체험도 없이 좋은 시를 쓸 생각은 아예 마세요. 자, 이제 여러분 차례에요. 주어진 제목과 관련하여 여러분을 감동시켰거나, 아니면 어떤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게 했던 기억들을 더듬어 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한 편의 시로 엮어보세요.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

a 자연을 관찰하는 두 아이

자연을 관찰하는 두 아이 ⓒ 안준철

♠학생 작품, 하나

작은 풀
-백송이

콘크리트 작은 틈 사이로
빼꼼이 고개 든 작은 풀.

흙에서 많은 햇살을 받으면서
커다랗게 자란 풀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작디작은 풀.

이 작은 풀을 닮은 한 사람.

땡볕 아래 옥수수 밭에서 일하시다가
“할머니 저 왔어요!” 하면
빼꼼이 고개 드시는 우리 할머니.

a 낡은 담장 위에 핀 강아지풀

낡은 담장 위에 핀 강아지풀 ⓒ 안준철

♠학생 작품, 둘

거미줄
-김다가치우리

우연히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걸 본적이 있다.

빠르고, 정교하게
한 몇 백번은 해본 것 같은 선수처럼

거미줄이 팔이나 다리에 걸렸을 땐
잘 풀리지도 않고 짜증나지만

거미가 애써 만든 걸
내가 없애버려서
미안하다.

a 푸른 자연과 어우러진 아이들

푸른 자연과 어우러진 아이들 ⓒ 안준철

♠학생 작품, 셋

먹구름
-이혜민

우리는 모두 먹구름을 나쁘게 생각하지만
자연은 다르게 생각하지.
풀은 먹구름을 양식 주는 사람으로
꽃은 먹구름을 샤워장으로 말이야.
우리가 먹구름을 두렵고 무섭게만 생각하면
먹구름이 우리에게 천둥 번개를 내리치고
우리가 먹구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먹구름이 우리에게 무지개를 선물로 준단다.
우리 모두 비 오는 날 함께 달려보지 않을래?
엄마에겐 혼나지만
내 마음만큼은 맑게 갠 하늘처럼
밝아질 수 있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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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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